본문 바로가기

어린 시절의 단상

땅 속에서 캐어낸 석유 초롱 속에는 무엇이?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지 얼마 안되는 봄이었다.
당시에는 4월 1일이 새학년의 시작이라 아마 4월 중순이나 하순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양구 남면 가오작리에 사는 우리 또래들은 몇녀석이 모여서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노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50년대 말의 궁핍한 시골이라 놀이 기구 하나 없었고, 전기도 들어 오지 않았던 시절이니 바깥 산과 들이 놀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학급 반장이던 대장인 한길이(지금 서울 암사동에서 목사를 하고 있음)의 지휘하에 5-6명이 떼를 지어 다니며 놀았는 데, 뱀을 잡는 것이 가장 비중이 큰 놀이였다. 당시 우리는 뱀은 사람을 물어 죽이기도 하고, 약한 개구리를 잡아 먹는 나쁜 동물로 씨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뱀이 무척 많았고 땅꾼도 직접 잡아다가 파는 경우는 있어도 잡은 뱀을 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잡은 뱀은 팔려 가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여야 했다.
우리들은 뱀이 많을만한 곳을 찾아 갔다. 뱀이 눈에 띄면 대장의 '사격'이라는 명령하에 뱀에게 돌을 집중적으로 던져서 뱀이 움직이지를 못하게 한 다음 돌격 명령에 따라 몽둥이로 뱀을 두드려 패서 완전히 죽인 다음 삽으로 땅을 파고 뱀을 묻어 주는 방식으로 하루에도 몇마리씩 뱀을 잡고는 해로운 동물을 박멸하여 좋은 일을 한 것처럼 의기 양양하였다.

봄이 되어 겨울잠에서 막 깨어 나온 뱀들은 우리의 눈에 띄기만 하면 오랜 겨울을 난 보람도 없이 돌과 몽둥이에 희생되어야만 하였다.
그날도 우리 악동들은 전과 같이 뱀을 잡아 죽인 다음 땅에 묻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삽날 정도의 깊이를 팠을 때 삽끝에 무엇인가 금속성이 나면서 부딛히는 물체가 있었다. 우리는 조심하여 땅을 팠고 궁금증을 가지고 흙을 제거하고 땅속에 있던 물체를 꺼내었다.
겉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보니 그것은 군인들이 사용하는 석유 초롱(스피어깡이라고 불렀음)이었다.
이런 스피어깡을 5-6개를 캐었다.

문제는 그 통속에 무엇이 들었는가였다. 살살 흔들어 보니 들어 있는 내용물이 액체는 아닌 것이 틀림이 없었다.
뚜껑을 열어 보면 되는 데 겁이 나서 열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무엇이 들었을까 추측을 하여 보았다. 무슨 보물이 들었을 것이라고 하는 녀석도 있었고, 보물이 들었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약속을 하였다.
어른들에게 알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녀석 하나가 뚜껑을 열겠다고 하였다.
쇠붙이 근처에는 가지도 말라는 엄명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나는 겁이 나서 언덕을 너머 피하였고, 용감한 녀석은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나처럼 뒤로 물러났던 녀석들도 모두 앞으로 가서 보았다.

통 속에는 샛노란 빛깔을 한 콩이 가득 들어 있었다. 통 속 모두에는 콩이 가득 들어 있었는 데 큰 보물을 기대하였던 우리는 모두 실망을 하였다.
어느새 어른들이 몰려 왔다.
어른들은 콩이 너무 오래 묵어 사람이 먹을 수는 없고 사료로 써야 하겠다고 하였다. 며칠 후 우리 모두에게는 몇권의 노트가 배급되었다. 콩값이었다.

훗날 철이 들어 생각을 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재구성된다.
양구는 6.25때 격전지였다.
1950년 북한이었던 양구는 9.28로 서울이 수복되고 북한군이 물러나자 대한민국 땅이 되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이 후퇴를 하게 되자 다시 북한군에게 점령되게 된다. 이때 피난을 가게 된 콩임자는 가져 갈 수 없는 콩을 군인들이 쓰던 석유 초롱(스피어깡)에 넣고 땅속에 묻었다. 피난을 갔다 와서 식량으로 삼을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1년부터 1953년 휴전될 때까지 양구는 피아간의 격전장이었고 1953년 휴전이 되고 수복이 된 후에도 콩 임자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1.4후퇴때 희생되었거나 아니면 양구가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땅 속에 묻힌 콩은 이렇게 8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당시에는 갓난 아기였던 초등학교 4학년 꼬마들에 의하여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
그때 콩을 캐었던 친구들 대부분은 그곳을 떠났다.

공무원으로 농촌 지도소에 근무하다가 명퇴를 한 하섭이가 고향을 지킬 뿐,

대장이던 한길이는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완하는 애들 교육 때문에 춘천으로 온 후 지금은 원주에 정착하였고,

나와 2차에 걸쳐 큰 싸움을 하였던 장하는 교문리에 살고 있다. 진수와 정호, 호병이는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다.
그때의 친구들이 그립다.

2005. 7. 5

'어린 시절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국수에 대한 단상  (0) 2013.09.07
문둥이와 거지  (0) 2013.09.03
억세게 재수 좋은 날  (0) 2013.08.26
냉장고와 수박  (0) 2013.08.26
아줌마들의 싸움, 미친 여자 소동  (0) 201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