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다.
당시는 4월 1일이 새학년도 시작이었으니 4학년때 3.15부정선거가 있었고,
3월 말경 학생 시위가 시작되어 5학년에 올라간 4월에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한 것이다.
당시 양구 시골에 살던 나는 이런 정치적인 의미를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당시를 생각하여 보면 4.19기 일어날 조짐이 충분히 있었다.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담임 선생님은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이승만대통령과 이기붕선생을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하라고 교육을 시켰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은 2.1로 통일하자였다.
기호 2번인 이승만과 기호 1번인 이기붕을 정부통령으로 뽑자는 이야기인데
어린이들을 통해서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이 방법은 1972년 유신헌법과 1980년 제 5공화국 헌법을 강요할 때 교사를 동원하였던 방법의 원조가 되는 방법이다.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대통령을 홍보하는 영화 상영이 있었다.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시골에서 라디오도 없이 살던 우리에게 영화는 가장 좋은 볼거리였다.
학교 운동장에선가 영화상영이 있었고, 지금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장면이 생각 나는 데, 하나는 일본군이 행진을 하는 데 대열에 서있던 청년 이승만이 북을 치는 일본군 병사의 북을 발로 걷어 차버리는 장면과 감옥에 들어 가 있는 장면이다.
3월 15일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선거기 있었고 어른들과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선거가 끝난 후 집에 들리신 큰아버지는 무척 분개하신 목소리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당시 집안의 구조가 안방에 손님이 오셔도 나가 있을 곳이 없었던지라 방안에 앉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 데 큰아버지는 선거가 엉터리라고 분개하시는 것 같았고 흥분한 큰아버지의 말씀을 누가 들을까봐 조심을 시키시는 것 같았다.
4월이 되어 5학년을 올라가며 나는 광덕초등학교에서 이웃에 있는 원당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여기서 나중에 고등학교 동기까지 되는 정효섭이와 김도영이를 만난다.
4월이 되면서 시골에까지 서울에서 학생들 데모가 일어나서 학생들이 총에 맞아 죽는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담화문이라는 것이 붙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하야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렇지만 이것이 갖는 정치적인 의미를 당시로서는 어린 우리가 알 까닭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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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시골에는 사람들을 분개하게 하는 소문이 또 하나 돌았다.
성난 군중들이 이기붕의 집을 처들어 갔는 데, 냉장고에서 수박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4월에 수박이 나왔다는 것에 대하여 분개한 것이다. 춘궁기가 있었던 당시 일반 백성들 중에는 굶주리는사람들도 많았는 데 봄에 냉장고 속에 수박을 넣어 놓고 먹는다는 것은 큰 위화감을 불러 일으킨 사건이었다.
내가 집안에 냉장고를 들여 놓은 것은 그 후 20년도 더 지난 82년이었고, 처음 냉장고를 구경한 것도 몇년이 지난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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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철을 가리지 않고 채소와 과일을 먹게 되었다.
심지어는 몇천 킬로미터 바다 건너 온 과일도 먹고 있다.
밖에서 회식을 할 때면 한 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때가 있다.
이때마다 4.19후 이기붕의 집 냉장고에서 수박이 나왔다고 분개하였던 어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짧은 시간동안에 우리나라가 참으로 많이 발전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린 시절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세상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누가 우리들 중 과반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살고, 내 차를 운전하여 이동하고, 컴퓨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였을까?
앞으로의 변화속도는 지금까지의 변화속도보다 몇배는 빠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허덕거리면서 흉내라도 내면서 뒷북이라도 치면서 살았지만 앞으로도 이것이 가능할까?
너무 빠른 변화속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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