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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단상

아줌마들의 싸움, 미친 여자 소동

 

(1) 아줌마들의 싸움

 1959년 초등학교 4학년 시절 1년간 살았던 양구 남면 적리라는 동리는 연대본부 후문 쪽에 위치하였는 데 군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은 마을인데도 당구장도 있고, 막걸리를 파는 술집도 있고(그때는 막걸리 집에도 아가씨들이 있었음)

다방까지 있었다.

장사꾼에 농사꾼, 군인가족들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엉켜서 살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팔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다보니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내 친구인 기행이는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아이였다.

 

여름날 밤에는 술주정과 더불어 심심치 않게 싸움이 일어났다.

인애라는 다섯살 쯤 된 여자 아이가 있었는 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다.

그 아저씨가 술주정을 하면 동리가 시끄러웠고 마을의 구경꺼리가 되었다.

그 아저씨는 양기가 입으로만 올라왔는지 완력을 행사하지는 않고 마누라에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다. 아줌마는 같이 소리를 지르고.....

아저씨는 그러면서 술을 더 가져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이웃집 아줌마는 쌀뜨물을 가져다 주었는 데 아저씨는 쌀뜨물을 막걸리인 줄 알고 벌컥벌컥 들이키곤 하였다.

 

아저씨의 술주정은 자주 있는 구경거리였고

가끔씩 있는 아줌마들의 싸움이 재미있었다. 이 싸움은 주로 낮에 벌어졌다.

기억나는 싸움으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아줌마의 싸움이었는 데

한 아줌마의 아이가 물총으로 물을 다른 집의 방문에 발사를 하고 도망을 갔다는 것인데

이를 항의하는 아줌마와 자식을 변호하는 엄마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

둘은 머리를 꺼들고 엎치락 뒤치락 레슬링을 하는 열전이었는 데 옷이 찢어져서 가슴이 드러나는 등 치열한 싸움이었다.

동리 아줌마들이 나와 말리고 사이가 떨어진 두 아줌마는 입으로 싸웠는 데

한 아줌마가 "그래 너 아이가 있다고 행세니? 내가 아이가 없다고 깔보는거니?"  하면서 섪게 울었다.

이것으로 싸움은 막을 내렸다.

집에 물총을 쏘았다고 나무란 여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평소 잠재되어 있던 아이가 없는 열등감이 분출되어 섪게 울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검정개 구로

 볼거리가 없는 부대 앞 시골 마을, 아이들의 눈을 끄는 신기한 볼거리가 하나 나타났다.

구로라는 검둥이 개였다. 이 개는 진주양복점이라는 군인들의 군복을 수선해 주는 가게의 아저씨가 기르는 개였는 데 여느 똥개와는 달랐다.

진주 양복점의 아저씨는 마누라도 없고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분으로 구렛나루 수염이 시커멓게 얼굴을 덮고 있는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분이었다.

그가 사랑을 투사하는 존재는 검정개 구로였다.

구로는 훈련을 받은 개였다.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재주도 넘었다.

목에 장바구니를 걸어 주고 돈과 메모를 해서 넣어 주면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이를 신기하게 구경하였다.

어떤 때는 개가 밥을 먹는 것을 본 적도 있는 데 아저씨가 구로에게 흰밥에 계란을 깨서 비벼 주는 것을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보았다.

 

여름이 거의 다간 어느날 아저씨는 곧 이사를 간다고 구로를 팔았다.

구로가 팔려 가는 날 아저씨는 구로를 안고 엉엉 울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하는 데도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로의 목을 껴안은채 구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구로는 어디론가 팔려 갔는 데 며칠 후 그곳을 도망쳐서 다시 아저씨에게 왔다고 한다.

아저씨는 어디론가 이사를 갔고 그뒤로 구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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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친여자 소동

 모내기 농번기가 끝난 6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어느날 아이들이 운동장(양구 광덕 초등학교) 구석에 모여서 돌을 던지고 있었다.

운동장 축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어느 여자가 욕을 하고 있었고 그 여자를 향하여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있었는 데 그 여자는 미친 여자라고 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그 미친 여자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

신작로에 잡동산이를 모아다가 쌓아 놓고 살림을 차리기도 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여자의 나이는 40세라고 하였다.

그런데 40먹은 아줌마라고 할 수 없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하루는 그 여자가 미류나무위에 올라간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나무를 잘 오르지 못했는 데 그 여자는 아이들도 오르기 힘 든 미류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에 부대에 들어갔다가 군인들에게 쫒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군인들이 후라쉬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며 쫒아 오고 있었는 데 도망치는 미친 여자가 얼마나 잘 뛰는지 군인들도 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동리에서 저지레도 저질르고 다녔다.

개울 건너에 큰 댁이 있었는 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일하러 가신 사이에 미친 여자가 큰댁에 들어가서 큰어머니의 옷을 꺼내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담뱃대까지 물고서 마루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큰어머니께서 집으로 들어오시다가 얼마나 놀래셨겠는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정문과 후문 동리를 돌아다니면서 크고 작은 저지레를 치자

아랫 동리에 있는 충남상회라는 큰 가게에서 배달을 하는 청년이 그 여자를 다른 마을로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이 청년이 미친 여자를 꼬여서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면 팔랑리까지 올라갔다.

한 이십리 되는 길인데 그 동리에다가 미친 여자를 내려놓고 쏜살같이 자전거를 달라셔 내려 오는 길인데 임당리쯤 오자 뒤에서 '으이쌰 으이쌰' 하는 구령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짐바리를 붓잡고 구령을 부르면서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다시 동리로 돌아왔고 한동안 저지레를 치면서 다녔는 데 여름이 다갈 무렵부터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이 알고 와서 데려갔다고 한다.

몇달 뒤 그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지금 계산하여 보면 우리 동리에 와서 소동을 벌리던 때가 임신 4개월 정도일 때인데 임신중인 마흔살의 아줌마가 어떻게 그런 힘을 발휘하였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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