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보관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일기는 1965년에 쓴 일기다.
일기를 매일 기록하지는 못했고 중단된 시기도 있고 보관되지 않은 것도 있으나 지금까지 60년가까이 일기를 썼다.
수년 전 또는 수십년 전 일기를 읽어 보면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나의 생각과 감정, 판단과 선택, 그때의 판단과 선택이 현명하였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2000년부터는 컴퓨터에 일기를 쓰고 있다.
이와 함께 농사일기를 같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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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15일
처조카인 양호의 첫딸 돌이다.
서울 용산 전우회관에서 돌 잔치를 했다.
뷔페 식으로 음식을 차렸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였다.
양호네와 유선네 규호네 모두 모였다.
생일의 주인공인 성채는 처음 집는 것이 만원짜리 지폐였다.
모두 웃었다. 곰인형에 덕담을 써넣었다.
처남과 조카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아내는 춘천에 먼저 내려 갔고 나는 막내 처남 집에 가서 잤다.
민호가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사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기쁨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하였는 데,
아기때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 데 잘 자라서 의사가 되게 되었다.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잘 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한다.
주님께서 아들에게 많은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에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할 책임도 있다.
이제 위의 두 아이들은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주었다.
밑의 두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이 영광은 외할머니의 기도와 할머니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자식들을 교육시키신 바탕위에서 가능하였다.
주님 아들이 의사고시에 합격하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利를 탐하는 의사가 아닌 환자를 긍휼이 여기고 도와주는 의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2월 7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걸친 한문과 부전공 자격연수가 2월 4일 모두 끝났다.
늦은 나이에 한문을 공부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였지만 전부터 관심이 있는 분야라 흥미가 있기도 하였으며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기업체에서도 입사때 한자능력을 테스트한다고 하니까 한자에 대한 기초 능력은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한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급수 공부를 시작한 것이 지난 2002년 가을이었다.
2급(2500자)은 쉽게 합격을 하였으나 1급의 합격은 쉽지를 않았다.
4번의 도전 끝에 지난해 12월 1일 1급에 합격하였다.
한문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부전공 연수가 있게 되었다.
전공과목이 관련 교과도 아니고 과학과목의 시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신청자가 적은 관계로 운이 좋게 연수에 지명이 되어 자격 연수를 받게 되었다.
연수 후반기에 한자 문화의 원류가 되는 공자 유적지를 견학하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중국 산동성 지역을 관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해외 여행과는 원래 인연이 멀었다.
나랏돈으로 여행을 하던 초기에는 젊었다고 IMF 직전 국가의 지원에 의한 해외 여행이 종료될 무렵에는 나이가 많다고 해외 여행에서 제외가 되었다.
뒤늦게 내돈을 내고 가는 여행이지만 기회가 있어 신청을 하였고 난생 처음 여권이라는 것도 발급을 받았다.
그간 생활에 여유가 없어 가족들과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터라 같이 고생을 하고 산 아내와 같이 가기로 하였다.
2월 16일
오랫만에 일기를 씀.
그간 연수를 받느라 컴퓨터를 대하지 못하였던 것도 이유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였다.
학교에 출근하여 과학실 정리 작업을 하였다.
권종비와 김성준이를 불러서 했는 데 두어시간 일을 하고는 집으로 갔다. 혼자서 기구를 정리하였다.
집에 와서 삼겹살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아들이 사귀는 여자 친구를 만났다.
둘이 4년을 넘게 사귀고 있고, 교회를 나온 것을 보면 마음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 녀석은 그 아가씨에게 아주 마음을 빼았기고 있다.
이제 둘의 관계를 인정하고 결혼을 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아들이 장성하여 이제 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모를 떠날 시기가 왔다.
우리는 이전 세대로 새세대에게 그 자리를 물러 주어야 한다.
기쁘면서도 인생의 삶의 단계에 대한 생각을 하여 본다.
2월 21일(토)
아들의 졸업식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24년간의 학교 생활(군대 포함)이 끝나게 된다.
임형석 교감 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이 오늘이지만 졸업식 관계로 조퇴를 하고 강대에 갔다.
안집 아주머니와 박목사님 사모님, 큰 처남의 댁, 큰 처형과 둘째 처형 내외가 왔다.
한헌학장의 주도로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모든 졸업생에게 각 교실별로 수여하는 상장도 있었다.
아들은 해부학 교실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학사모를 쓴 것을 보니 대견하였다.
자식을 교육시키는 부모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이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자라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풍족한 뒷받침을 하여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점심식사를 혁종이가 운영하는 신신 전골나라에서 하였다.
큰댁 형님 내외와 봉준모와 동윤이가 왔다. 점심식사를 하고 모두 헤어졌다.
졸업식을 축하하여 준 사모님과 안집 아주머니께 특히 감사하는 마음이다.
큰댁 형님과 안집 아주머니, 대진 목사님 사모님, 봉준이네 등이 격려금을 주었다. 감사한다.
둘째 딸의 졸업식도 있었다. 보육교사 교육원을 다니느라 애썼다.
둘째 딸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어제는 퇴근을 하면서 둘째 딸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보육교사로 취업되어 출근하기로 하였는 데 염려가 많이 된다.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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