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論
우리나라에서 兩性平等이 제도적으로 실현되고 女性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여져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家庭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던 女性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등 가정 밖으로 활동영역을 확산시키기 시작한 것도 100년전 近代化가 시작된 것과 軌를 같이 하고 있으며 남녀간 평균 교육 년수가 같아진 것은 근대화가 시작된지 1世紀 가량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였다
현대 사회에서도 남녀간에 賃金 隔差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就業을 하여도 전문 직종이나 고위직, 경영자로 진출하는 것이 남성에 비하여 制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敎男而不敎女’라 하여 女性의 교육기회가 원천적으로 封鎖되어 있고, 사회 활동이 극도로 제약되어 있던 조선 중기에 女性이기에 받아야 했던 거대한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 女性에게는 시창작이 근원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閨房이라는 밀페된 공간에 幽閉된 속에서도 이러한 억압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지함 속에 있을 때에 창작의 자유를 통해 각성을 하고 자각하며 한 女性이 아닌 한 인간으로의 삶을 살면서 文名을 떨친 女性이 있었다는 것이 필자에게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였으며 이것이 許蘭雪軒의 生涯와 作品 世界에 대한 연구를 하도록 한 동기가 되었다.
本稿에서는 許蘭雪軒이 살았던 사대부 본위, 남성 위주의 문화 체계였던 조선 중기사회의 특징과, 許蘭雪軒의 身分 背景과, 가족관계, 成長과 배움, 出嫁와 그후의 생활 등 許蘭雪軒의 生涯를 考察하여 이것이 許蘭雪軒의 작품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고자 한다.
許蘭雪軒의 生涯 연구와 병행하여 女性으로서 삶의 모습과 고민과 불만, 다른 여자의 처지에 대한 관심 등 許蘭雪軒의 詩世界를 槪括하고, 특히 남편과의 원만하지 못하였던 애정, 肉親의 수난, 자식을 잃은 所懷 등을 표현한 작품을 「閨怨」, 「效崔國輔體」, 「寄夫江舍讀書」, 「送荷谷謫甲山」과 「寄荷谷」, 「哭子」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시에 표현된 喪失과 挫折, 기다림의 詩世界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Ⅱ. 豫備的 考察
1. 許蘭雪軒이 살았던 時代의 時代的 背景
조선 왕조는 사대부 본위의 사회제도, 남성위주의 문화 체계였다. 따라서 女性의 사회활동은 물론, ‘敎男而不敎女’라 하여 女性에게는 교육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는 女性들의 학문은 婦道에 엇난다고 배척당하였으며 이는 明․淸代에 “女性은 재능이 없는 것으로 덕을 삼는다”라는 말과 一脈相通하고 있다. 곧 女性은 시문을 일 삼아서는 안될 뿐 아니라 이를 힘쓰면 폐해가 많다고 하였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女性들은 언문이나 익혀 언문이나 읽고 內簡에나 통용하는 것으로 문자 생활을 영위하였음으로 여류 한문학은 발흥할 수 없었다.
그러나, 許蘭雪軒이 살았던 시대 (1563-1569)는 명종과 선조때로 조선조에서 가장 문화가 찬란히 꽃피었던 시대였다. 시문학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운문학의 전성기였다. 삼당시인 백광훈, 최경창, 이달 등이 활동하였으며 이들 중 이달은 許蘭雪軒의 스승으로 許蘭雪軒의 詩世界에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에 성리학의 대가로는 서경덕, 이황, 이이 등이 있고 시조에는 송순, 황진이, 임제 등의 서정주의와 낭만주의가 어우러져 꽃을 피웠고, 가사에는 정철과 박인로가 우국주의와 자연주의에 탐닉하였으며, 문장에는 심흠과 이정구, 글씨에는 한호와 양사언 등이 있어 문운이 화려하게 자리잡아 태평성세를 누렸다.
許蘭雪軒은 문학이 순수문학으로 꽃피고 있었을 때 살았던 시인이었다.
許蘭雪軒이 살았던 시대가 비록 문운이 크게 융성하던 시기라 하여도 ‘敎男而不敎女’라 하여 女性에게 배움의 기회가 제약되었던 시대인 조선조 시대에 여류 문학가, 그중에도 여류 한문학의 등장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적 배경을 갖게 된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한글로 씌여진 閨房가사와 같은 閨房 한문학은 등장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제약으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바깥 활동이 가능하며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할 수 있는 女性들인 기녀 계층만이 제한된 범위나마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류 한문학 작가는 송도 기생 黃眞伊, 부안 기생 梅窓, 첩이었던 李玉峰으로 주로 비천한 신분의 女性들이었다.
위의 논문은 2008학년도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논문으로 2007년 8월에 작성된 것임.
이어지는 내용은 첨부파일을 보기 바랍니다.
이 논문 작성에 자료 제공과 조언을 해주신 허준구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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