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극을 제외하고는 드라마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빠지지 않고 시청하여 뉴스를 기다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는 동안 토막토막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줄거리 전개는 도식적이라 가끔씩 부분부분 보았지만 극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여 마지막 회는 처음부터 시청하였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변화되고 있는 결혼과 가족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금기를 깨뜨리며 변화된 가족제도를 인정할 것을 강력하게 극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 연속극을 시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결혼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결혼은 총각과 처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그렇지 않은 예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혼 남녀의 결혼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고, 재혼 남자와 초혼 여자의 결혼이 그 뒤를 이었다.
초혼인 남자와 재혼인 여자의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인가 초혼인 남자와 재혼인 여자의 결혼이 그 반대의 경우를 상회하게 되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금순이와 그의 동서 모두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자로 재혼이지만 당당하게 초혼인 남자, 그것도 조건이 괜챦은(?) 남자와 재혼하고 있다.
이는 결혼에 있어서 초혼이냐 재혼이냐를 따지지 않고 당사자간에 좋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식의 결혼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의 위축이다.
극중에서 재희의 어머니는 재희와 재혼녀인 금순의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결국은 자식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이를 수용한다. 요즈음 대부분의 다른 드라마 역시 이런 도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시류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시대가 지나갔고 부모는 자식의 결정을 수용하고 혼례를 주관하는 역할만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끝으로 변화된 가족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로 이루어지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가족 이외에 여러 가지 다양한 변형 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호주제 폐지와 친양자제도 실시는 더 이상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부계 가족제도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금순이와 그의 동서는 각각 전남편에게서 낳은 아들을 재혼한 시집에 당당하게 데리고 들어 간다.
10여년전만하여도 이런 경우 부모와 독립하여 살거나, 아니면 친정에 맡기고 시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되고, 새할머니가 친할머니가 되는 가족관계의 변화가 나타나 있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알리고 다양한 가족제도를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여성 우월론을 주장하는 페미들은 부계중심의 가족제도를 타파해야 할 악습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가 양성평등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나타난 하나가 부모성 함께 쓰기와 부계와 모계 조상을 똑같이 섬기자는 운동과 주장이다.
이 주장들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타당하고 옳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심층적으로 본다면 실현하기 불가능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당대에는 가능하지만 3대만 내려가도 성이 길어지게 되고 4대 이후에는 거의 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결론은 이를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은 姓이란 개인을 식별하는 코드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선택하든 각자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부계와 모계의 조상을 동등하게 섬기자는 주장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 5대까지 자기 직계 조상을 기억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대까지는 외가와 친가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증조부대에는 조상이 8명이 되고 고조부대에는 16명이 된다.
할아버지 대 이상으로 외가나 진외가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론은 부계와 모계조상을 모두 무시하는 것이 평등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결국 어머니쪽까지 모든 조상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부계로 단일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단적인 페미들이 생각하는 가족제도란 이혼과 재혼에 대한 가족의 변형이 자유롭고, 성과 이름을 바꾸는 것 역시 자유로와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이혼율의 증가와 가족관계의 변화는 결국 자신의 혈통을 알 수 없는 세대를 양산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다원화 다극화가 되듯이 가족관계 역시 그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가족관계의 해체나 재구성이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지만 명문가에서는 가문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고 혈통을 중시하며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관계의 변화가 잦아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한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어떤 가문은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를 잘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2005.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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