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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고교 시절 돌이켜 생각하니

개싸움(투견대회) 구경

지금은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이 자식의 위치까지 격상되어 필자의 글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를 분류하는 명칭이 가축에서 애완견을 거쳐 반려견에 이르렀다.

한세대 전만 해도 개를 기르는 목적은 주로 식용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개를 식용으로 하는 데 모든 국민들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는 사람을 따르고 사람과 친한 개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불교나 토속 종교에서 금기로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한 세대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개를 기르는 주된 목적은 닭이나 돼지 등 다른 가축을 기르는 목적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새끼를 입식해서 일정한 크기로 자라면 이를 파는 것이었다.

추수 때가 아니면 현금을 만지기 어려운 농가에서 개를 팔면 가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도 개를 1-2마리를 길렀다.

학교에 다녀오면 반기던 개가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개를 파신 것이다.

섭섭해 하는 자식들을 위해 대신 강아지를 입식했고 나와 동생들은 곧 강아지에 애착을 갖게 되고 정들었던 개와 이별한데 대한 서운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일종의 부수입인 개를 판돈으로 어머니는 그릇을 사셨다.

 

1965년 고교 입학으로 양구에서 춘천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공부를 한다고 가끔은 휴일에도 학교에 나갔다.

당시 우리의 모교인 춘천고등학교 대운동장은 춘천시 공설운동장이었다.

종합 운동장이 건설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실외행사는 모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소년체전이나 도민체전 등은 물론 각종 운동 경기가 춘고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6.25행사나 반공 궐기대회 등 각종 궐기 대회는 물론 대통령 유세 등 정치행사도 모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1967년과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도 춘고 운동장에서 열렸는 데 '67년에 박정희 후보가  '71년에도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유세차 준고 운동장을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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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늘 쓰고자 하는 것은 모교 소운동장에서 열린 개싸움(투견대회)에 대한 기억이다.

1학년 때인 1965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공부를 하기 위해 등교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공부하러 등교한 다른 친구도 있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다가 밖을 내다보니 소운동장에서 투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교실에서 소운동장은 가까운 거리라 개싸움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호기심이 강하던 시절이라 공부를 중단하고 개싸움 구경을 했다.

 

운동장에는 권투 링처럼 투견을 위한 링이 설치되어 있었다.

도사견으로 보이는(아마 투견용 견종이었을 것이다) 개 두마리가 링 위로 입장을 하고 신호를 따라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을의 개들이 싸우는 모습과는 달랐다.

거리가 떨어서인지 개들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자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의 스포츠 경기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 같았고 규칙도 있었을 것이다.

링 위에 많은 개들이 올라갔고 싸움을 했고 승부가 결정되어 링을 내려왔을 것이다.

자신의 개가 이기고 짐에 따라 견주의 희비가 엇갈렸을 것이다.

틀림없이 돈이 오갔을 것이다.

 

개들이 엉겨 싸우는 모습이 기억되지만 어느 개가 이겼는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꼬리를 내리거나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은 데 이런 경우는 물론 패배로 판정되었을 것이다.

개들이 엉겨서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 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심판(?)이 라이터 불을 개들 사이에 

갔다 댄 것 같았다.

이 경우 엉겨있었던 개들은 떨어졌다.

 

산시 윈청 투견대회 1위 쟁탈전 모습(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15:17, December 30, 2015)

 

점심 시간이 되어서인지 개싸움은 중단되었고 거의 비슷한 장면이 계속되는 것이 지루하기도 하여 더 이상 개싸움의 모습을 관람하지 않아 결말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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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투견이 고려 시대에 중동 상인들(서역 상인)에 의해 행해졌으나 불교의 영향으로 널리 행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 시대에 들어서도 실록에 투견에 대한 기록이 더러 나오기는 하지만 날개를 꺾은 닭을 개가 쫒는 보부상들의 놀이를 투견이라고 호칭했다는 것으로 보아 개와 개가 싸우는 투견은 널리 행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개와 개가 싸우는 투견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개와 개가 싸우는 투견이 행해졌고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다고 하는 데 필자가 관람한 투견대회는 일제의 잔재였던 것이다.

그후 개싸움이 동물학대라는 논란이 일어났고 돈이 오갔기 때문에 도박으로 간주되었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개고기의 식용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합법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투견이 음지로 들어가게 되었고 '90년대 들어 승부조작이나 조폭 개입 등으로 문제점이 부각되게 된다.

투견을 합법 공간으로 끌어내려고 민속이니 하는 명분을 붙였으나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로 합법화되지 못하고 2008년부터 투견은 불법회되어 더 이상 합법적인 공간에서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

음성적으로 투견이 이루어진다면 동물학대죄로 처벌되게 되고, 돈이 오갔다면 도박죄까지 추가가 된다.

 

필자가 관람했던 개싸움(투견)은 투견이 합법적으로 행해지던 시대의 행사였다.

더우기 학교 운동장이라는 공공 장소에서 행해졌다는 것은 비록 공휴일이었지만 투견대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내가 구경했던 개싸움은 별로 볼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자란 고1 소년에게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거리를 두고 보아서인지 피투성이의 잔인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고 개들이 엉겨 붙었다가 떨어지는 모습이나 링 위에서 개와 개가 쫓고 쫓기는 모습(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도만 기억될 뿐이다.

 

고1 때였던 1965년 춘천고등학교 운동장은 춘천시와 강원도의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공설운동장이었고 행사 때면 밴드 소리와 확성기 소리로 수업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또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나가 행사를 구경하는 것도 지리한 학교 생활에 색다른 경험의 시간이었다.

반공 행사 등에는 동원이 되어 참가하기도 했고, 운동 경기 시간과 체육 시간이 겹치는 경우 선생님의 인솔 아래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였다.

 

그후 춘천시에 실내 체육관이 건립되고 종합 운동장이 건설되면서 춘고 운동장은 더 이상 도와 시의 행사장으로 이용되지 않게 되었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모교 운동장을 지나갈 때면 당시의 행사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북적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