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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종교개혁 현장 순례(6) - 제네바

2017년 2 9일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여 8 30분에 제네바에 도착하였다.

석사교회 종교개혁지 순례단은 성베드로 교회, 제네바 대학교, 칼빈의 묘지가 있는 공원 등 칼빈과 관련된 유적지와 레만호, 제네바 시가지 등을 관광하였다. 

제네바는 종교개혁가이며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존칼빈이 활동하였던 도시다.

법률가의 아들로 프랑스에서 1509년 출생한 칼빈은 루터나 츠빙글리를 딛고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 인문주의적인 기반에서 성장하였으며 법학을 전공하였다.

칼빈이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자의 길로 접어든 것은 1536년 제네바에 잠시 체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거기에서 1534년부터 베른의 도움을 받아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있던 파렐의 요구로 종교개혁에 참여하게 되었다. 1537년 칼빈은 제1 제네바 교리문답을 편집하여 시민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교회의 권징(勸懲)을 시행하였다. 이를 시행하는 데 칼빈은 시의회와 협력하였다. 칼빈은 실제적으로 성도들의 삶이 변화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였다. 그는 1539 기독교 강요 2판과 로마서 강해를 출판하였다. 1541 주의 만찬에 대한 안내서를 저술하여 루터의 동의를 얻기도 하였다.칼빈은 1538년 반대파에 의해 제네바에서 추방되었으나 1541년 반대파가 물러나자 제네바 시의 요청으로 제네바로 복귀하였다. 1541 11 20일 칼빈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교회 규례가 시의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이 교회규례는 기독교 강요 다음으로 제네바 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규례에 따르면 교회직제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분된다. 새로운 교회의 규례는 도시의 도덕적인 생활에도 관여하여 분쟁이나 비방, 금전사기나 절도, 화려한 복장이나 사치를 규제하였다.그는 제네바에서 불성실한 신도를 파문하고, 죄질이 나쁜 자는 시의회에 고발해 처벌받게 하는 등 철저한 경건주의에 기초한 법률로 모든 시민의 생활을 통제하였다.제네바에서는 거의 20여 년 동안 신정정치가 행해졌다. 1559년에는 제네바에 개혁주의 대학, 곧 제네바 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은 당시 유럽에서 개혁주의를 가르치는 가장 대표적인 학교로서 훌륭한 교직자 양성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칼빈의 사상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제네바시는 인구 20만명 정도의 스위스 제3의 도시다.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각종 국제기관이 모여 있어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다.

주요 산업은 시계·보석 정밀기계·화학약품·담배 등의 제조업이며, 시계공업은 1587년 이래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대표적 산업이다. 은행이 많아 스위스 금융업의 중심지이다.

 

제네바의 종교개혁 4인방 석상

(칼빈, 파렐, 베자, 녹스)

 

칼빈이 설교하였던 성베드로교회

 

제네바의 명소 레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