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승지, 역사 유적지 탐방

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 의병훈련장

필자는 2011년 현직에서 퇴직을 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2학년에 편입하여 2016년에 졸업을 하였다.

전근대 한일관계사라는 교과를 수강했는 데 과제가 춘천지역에서 일본과 관련이 있는 유적지를 답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에 저하여 춘천에서는 의암 유인석 선생을 중심으로 한 의병항쟁이 있었다.

아래는 이때 의병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조하던 여의내골 의병훈련장에 대한 유적지다.

-------------------------------------------------------

 

일제가 우리나라 국권을 강탈하기 3년 전 춘천지역 민초들은 스스로 목숨을 사르며 의병 투쟁으로 항거했다.

이름 석자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한 아픔의 역사적 삶의 현장인 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에 어엿한 조형물'항일의병 무기제조·훈련장 유적기념비'가 건립돼 뒤늦었지만 민초의 넋을 위무하며 새로운 의병유적 명소로 자리매김돼 눈길을 끌고 있다. 

가정초등학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1km 정도 위쪽에 자리한 유적기념비는 ()의암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안형순) 주관으로 강원도, 춘천시가 후원해 지난해 말 건립됐다.1907년 정미의병때 무기 제조·군사 훈련지높이 1.83m·너비 2.08m 기념 조형물 세웠으며 애국애족 유적 탐방지·청소년 교육場 으로기대가 된다.

'항일의병 무기제조·훈련장 유적기념비'는 춘천시 문화예술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기념비 건립 부지를 마련하고 기반 공사와 조경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그동안 제 빛을 발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현장은 명소로 탄생될 수 있었다.

 

춘천시 남면 가정리 577번지 류완상씨가 비 건립 부지 사용을 허락해 유적기념비 건립을 추진한 지 2년만에 완공됐다.  여의내골 의병유적지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해산하는 등 식민지로 삼으려했던 1907년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전개될 때 유홍석을 의병장으로 600여명의 청년과 중노년층은 물론 여성, 할머니까지 합세해 무기와 화약을 제조했으며 여성이 군사훈련까지 받았던 치열했던 의병투쟁의 현장이다.

 

1980년대 후반 학계에서 역사적 의의를 규명했으나 1984년 춘성군이 유적지 진입로 초입에 '여의내골 의병훈련장'이라는 작은 표석을 세웠을 뿐 유적지의 위치를 금세 확인할 수 있는 현장 조형물이 지금까지 세워지지 않아 역사적 명소로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아쉬움을 줘왔다. 

전국적으로 현존 한말 항일의병 무기제조 및 훈련장으로 드물게 보존되고 있는 이곳에 반듯한 조형기념물이 건립됨으로써 춘천시민은 물론 외지에서 찾는 관람객들에게 의병활동상을 알리고 의병정신을 기리는 문화탐방지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기념비는 항일의병 부조 조형물과 함께 전면의 비문에 춘천지역 주민들의 뜨거웠던 항일의병사와 군사훈련장이자 무기 제작소로 썼던 유적지 의미 등이 새겨져있다.  

비문 내용은 제2회 의암대상 학술부문 수상 경력의 이구용(73) 전 강원대 사학과 교수가 작성했다.

'피맺힌 대일항쟁을 펼친 구국항쟁의 역사적 현장이자 민족정기가 서린 성스러운 유적지에 소중한 흔적과 의의를 새기고 기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있다. 

춘천 출신 중진작가 백윤기(51)씨가 조각한 기념조형물은 높이 1m83cm에 너비 2m8cm, 두께 84cm 규모로 당시 서민이 입었던 평상복 차림에 활동성을 좋게하기 위해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두건을 쓴 채 화승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하는 모습을 부조로 형상화됐다.

 

강원도민일보, “춘천 지역 民草 항일의병 기린다’”. 2006. 2. 3.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593

 

 

 

 

 

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 의병 훈련장 안내 표지석

 

 

 

안내 표지석 옆에서 춘천지역 학우들과 함께 - 좌에서 두번째가 필자

 

 

 

의병 훈련장 - 폐교된 가정초등학교 터였다는 기념탑이 서있다.

 

 

 

의병 훈련장의 모습 -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