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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장, 시평, 논문

차라리 영어를 공용어로 하든지....(2008년 영어 몰입교육에 대하여)


아래의 글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나온 영어 몰입교육(어느 학교급 이상에서 국어와 국사 외애는 영어로 수업하자는)에 대한 논란에 대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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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고교 시절 어른들로부터 듣던 이야기 중 하나가

"우리는 왜정때 보통학교만 나와도 일본어를 잘했는 데 너희들은 몇년씩 영어를 배우면서도 영어 한마디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윗세대가 볼 때 우리세대(50대후반-60대초반)를 보면 한심하였을 것이다.

6년을 배워도 영어 하나 제대로 읽고 쓰고 말하지 못하였고, 신문에 나온 한자도 제대로 못읽었으니....

보통학교만 나와도 일어회화가 유창했고, 자유롭게 신문의 한자를 읽을 수 있었던 우리들 부모님 세대가 볼 때

우리 세대가 받은 교육은 일제하보다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었을 것이다.


훗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제때는 우민화 정책으로 교육기회를 제한하여 아주 똑똑하지 않으면 초등학교에도 못들어 갔고

중등학교는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했고,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면 엄청난 벌을 받아야 했으니 일어 회화는 확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즉, 교육 시스템이 좋와서가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어 몰입교육을 했으니 위에서 말한 효과가 나왔던 것이다.


지금 영어교육에 대한 열풍을 보노라면 일본 메이지 유신후의 일본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일본은 서양따라 배우기에 전력하였다.

정부 예산으로 많은 서양인 전문가와 교사, 교수들을 초빙하여 발달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전력을 기우렸다.

이때 많은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양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껴 서양의 것을 우러러 보고 일본의 것을 비하하는 풍조가 유행하였었다.


서양의 문물을 따라잡기 위해 서양인과 결혼하여 인종개량을 하자는 의견부터 일어를 폐지하고 영어를 전용하자는 의견까지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이러한 열등감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사라지고, 일본만이 우월하다는 편협한 국수주의로 변하여 일본 패망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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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자는 영어 몰입교육의 이야기가 나오더니 영어로만 영어수업을 하고 시수를 늘리고, 회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교사를 채용하자는 의견이 인수위의 의견으로 확정되어 가고 있다.

이미 우라말이 영어에 밀리고 있다. 미장원이 헤어샵으로, 사진관이 스튜디오로, 빵집이 베이커리로..... '00양'은 비칭이 되어 버리고 '미스0'이 존칭이 되어 버렸다.


영어를 잘해야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킨다고 수업용어마저 영어로 대체하려는 것이 영어 몰입교육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기를 잘하지 못하는 원인은 교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몇시간 영어수업을 한다고 회화가 되지 않는다.


영어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지만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이러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다는 것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 수준의 영어를 더 충실하게 가르치면 된다. 회화도 중요하지만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의 배양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학에서 전공 서적을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일상회화 능력을 기르는 이상으로 중요하다.


한해 수천명의 외국어고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영어 몰입교육이 필요하다. 또, 필요한 사람은 대학에서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재래식 교육이라도 문법과 독해력에 대한 기초가 튼튼하면 짧은 시일내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한승수 총리 지명자는 충주와 춘천이라는 중소도시의 고교를 졸업하였지만 영어를 잘하여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학에서 보면 어느 수준의 학습을 성취할 수 있는 지능의 분포가 나온다.

아무리 영어교육을 하더라도 어차피 이를 소화하지 못할 일정 비율의 학생들은 존재한다.

중고교에서 교육과정에 나오는 수학문제를 못푸는 학생의 비율을 보면 알 것이다.

사교육과 학교에서 보충수업까지 부과하는 수학의 학습량은 엄청나다.

그런데 명문대의 공대에서 조차 수학의 실력이 부족하여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형편이다.


우리말로 하여도 이해를 못하는 학생들이 태반이 넘는 현실에서 영어만으로 수업을 할 경우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학생이 얼마나 많겠는가?


외국어고나 특목고 등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영어 몰입 수업을 하되 평범한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서는 차라리 국어 수업에 더 충실하고, 기초 교육에 힘써서 졸업을 하고 직업 현장에 적응력이 강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왜냐 하면 산업에서 많은 부분이 초보적인 영어를 이해하거나 영어를 몰라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인재들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자발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도록 하는 풍토의 조성은 필요할 것이다.



2008년 1월 29일 다음 아고라에 올렸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