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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체력장 검사

입학시험이나 취업시험과 같이 경쟁이 있는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사법고시가 신뢰를 받았던 것은 누구나 뜻있으면 응시할 수 있고(기회는 평등) 

응시생 누구나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고 기준에 따라 평가를 받고(과정의 공정) 본인이 수행한 결과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결과의 정의로움)  때문이다.

비단 사법고시뿐 아니라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평가와 입시 취업을 위한 시험에서 대부분이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시행되었기 때문에 사회의 평가와 선발시스템이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질 때 그 시험이나 평가는 신뢰성을 잃게 되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승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교와 대학 입시에 점수로 반영되던 체력장 검사는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 평가였다.


필자가 처음 교사로 재직하던 '70년대 중반은 체육교육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1975년-1976년에는 교사들에게도 체력장을 실시하기까지 하였다(전국단위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근무하던 지역에서는 실시)

체력장 점수는 20점 만점이었는 데 200점 만점인 입시 총점에 10%를 차지하였다.


체력장 검사는 시군 교육청 단위로 실시하였다.

체력장은 9월말 - 10월 초에 주로 실시하였다.

필자가 중고교 입학시험을 보던 '60년대에는 응시 지원학교에서 체력장 검사를 실시하였다.

겨울에 실시하는 체력장이라 날씨가 추워 진행하는 교사나 응시하는 수험생이나 추위에 떨며 체력장 검사를 해야 했다.

이런 문제점으로 미리 체력장 검사를 하여 입학시험에 응시할 때 성적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절대평가를 하다보니 가능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성적을 취득하게 하려는 것이 학교측과 학생들의 바램이었다.

학교별로 실시한다면 응시자 모두에게 좋은 성적을 부여하려 할 것이고 이는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 등에 문제를 야기시키고

오히려 규정대로 정직하게 실시하는 학교 학생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컸다.


이러한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 지역 시군교육청별로 관내 수험생들을 모두 모아서 일시에 체력검사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관내 학교 교사들 모두를 측정과 평가 요원으로 정하고 지역 교육청에서 관할을 하면 관내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조건에서 검사를 받음으로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끝나 개학을 하면 중3은 체력장 준비에 몰입하였다.

체육시간은 물론 교사의 연가나  출장 등으로 생기는 시간까지 체력장 연습에 이용되었다.

체육교사들은 체력장 성적이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줌으로 학생들의 기록을 높히기 위해 안깐힘을 썼다.

체력장 검사 한주 전쯤 체력검사를 측정하고 기록하며 평가할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각 종목별로 실시 방법과 측정과 기록 방법, 안전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체력장 검사를 실시하는 학교(대개 운동장이 가장 넓은 학교, 학교수가 많은 교육청에서는 분산하여 실시)에서는

종목별 실시장소를 정하고 측정 도구를 설치하고 100m 달리기나 넓이 뛰기 던지기를 할 곳에는 라인을 긋는 등 준비를 했다.

또 조례대를 중심으로 천막들이 설치되었다. 천막은 집행부와 감독관들이 사용하였고 별도로 양호교사(지금의 보건교사)가 구급약을 가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체력장 실시일이 되면 관내의 대상학생들이 모여서 담임교사의 인솔하에 검사 장소를 이동하며 측정을 받았다.

체력장 검사 대상 종목은 100m 달리기, 오래달리기(1000m), 턱걸이(여학생은 오래 매달리기), 던지기(모형 수류탄, 후에는 공),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왕복달리기, 윗몸앞으로굽히기 등 8종목이었다.(후일 종목의 변경이 있었음0

검사를 받는 학생들은 인솔자를 따라다니며 검사를 받으면 되었지만 검사를 진행하는 교사들에게는 검사가 용이한 종목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종목이 있었다.

100m 달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등은 측정방법이 간단하여(초시계만 보면 되는 등) 주로 나이가 많은 교사들이나 여교사들이 배정되었다.

던지기 멀리뛰기 등은 기록을 측정하는 데 노동력이 많이 들었다.

던지기는 공이 착지하는 지점 가까이 서서 메가폰으로 일일이 기록을 불러주어야 했고 앉아있을 수가 없고 하루종일 서서 측정을 해햐 했기 때문에 체력장 검사의 3D에 해당했다.

특히 멀리뛰기의 경우 한 학생이 두번을 실시하는 데 착지된 지점까지 줄자로 일일이 몸을 굽혀 측정을 해야 했다.

100명의 학생들을 측정하려면 200번을 몸을 굽혔다 폈다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허리가 아팠다.

멀리뛰기 종목은 대개 신규발령을 받은 젊은 남자교사에게 배정되었다.

신구발령을 받은 필자의 경우 당연히 멀리뛰기 종목이 배정되었다.

오래달리기의 경우 20명 단위로 측정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100미터 달리기나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등에 동원되었던 초시계를 가진 교사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검사 실시 당일 수검대상 학생들과 진행과 측정을 담당하는 교사들과 학교장 교육청 감독관들이 운동장에 집결한다.

시작시간이 되면 학생들에게 격려의 훈화와 검사시 유의 사항이 전달되고 준비체조가 실시된 후 검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검사가 초임교사인 나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검사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뢰성, 객관성, 공정성이 현저하게 결여된 검사였다.

사전 교육때는 측정기준과 원칙에 따라 정확하고 엄격하게 측정하고 기록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실제 검사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종목별 검사 실시현장에는 교육청 사체계장(체육행정 담당 장학사)와 관내 초등학교 교감 한분이 진행상태를 점검하고 감독을 하였다.

그런데 필자의 대선배인 초등학교 정*수 교감선생님은 종목별 실시현장을 돌면서 수검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래야 타지에 응시하는 학생들이 1점이라도 더 받아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정교감선생님은 내가 멀리뛰기 측정을 하는 곳에 찾아와서 줄자를 10cm 이상 접어서 측정하라고 조언(?)까지 했다.

같이 측정을 담당한 선배교사 역시 정교감선생님이 일러준대로 측정하라고 했다.

나는 처음이라 정교감선생님이 지시하는대로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측정을 하였다.

그런데 전체 진행을 맡은 김*환 장학사는 정교감선생님과 반대였다.

공정하게 측정하라고 하며 현장을 돌았다.


현장 감독을 하는 두분의 의견이 서로 반대이니 측정을 실시하는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밖에...

나 혼자 원칙을 지킨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후에는 줄자를 10cm를 접고 측정을 했는 데 김장학사가 나타나면

원칙대로 측정을 하였다.

대상 학생은 줄을 선 위치에 따라 유불리가 결정되었다.

김장학사가 나타났을 때 측정을 받은 학생은 불리하였지만 수검학생이 이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종목들도 대동소이하였다.

100m 달리기의 경우 수검자가 출발을 하고 나서 깃발을 올렸다고 한다.

던지기는 공이 처음 착지한 곳이 아닌 굴러가다가 멈춘 곳에서 기록을 재었고, 윗몸 일으키기도 허리만 들면 한번 한 것으로 세었고

턱걸이도 턱이 철봉에 닫지 않아도 몸만 올라가면 실행한 횟수로 세었다고 했다.

마지막에 실시한 오래달리기는 20명이 한조였는 데 전 조원들이 구령에 따라 일시에 들어와서 모두가 만점을 받았다.


또 관리의 편의를 위해 학급별로 측정 장소를 돌며 측정을 했는 데 담임이 따라다녔다.

담임은 관심학생(시내 인문계 고교 진학예정이나 체력검사 성적이 낮은)에 대한 부탁을 따로 했다.

보아주기 식 측정과 담임이 쪽지를 보낸 학생에 대한 특별 배려 등으로 검사는 신뢰성을 상실하고 변별력을 잃어버린 형식상

통과의례가 되고 말았다.

측정결과 고입시에 응시할 중학생은 90%가 대입에 응시할 고등학생은 100%가 만점인 특급을 받았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체럭장는 수업에 찌들은 학생들에게 억지로나마 운동의 기회를 주어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실시하는 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로 말미암아 신뢰도를 잃게 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관내 지역학교가 모여서 체력장을 실시하지 않고 단위 학교별로 실시하게 되었다.

또 어느 시기엔가에는 상대평가로 실시하기도 하였는 데 이때에는 아주 정확한 측정을 하였다.

그러다가 체력장은 따로 성적에 반영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실 덩어리 체력장 검사는 부끄러운 한 시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는 내 자신이 있었다. 적당히 타협하며 대세를 쫓았다.

다수가 함께 범하는 잘못에 빠져드니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못하였고 개선할 의지는 더더욱 가지지 못하였다.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채, 때로는 잘못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대세라는 물결에 휩쓸려 오류를 범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