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6학급 150명 정도되는 작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새학년도가 시작될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와보니 30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교감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도 수업이 연이어 있어 수업을 마치고 오니 교감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다녀간 젊은 여성은 경찰관인데 한 학생의 전입학 문제로 방문하였다고 하였다.
청소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인데 가출하여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미성년자인 소녀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녀는 보육원에서 자랐는 데 중3이 되었을 때 가출하여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경찰관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오갈 데가 없는 소녀를 측은히 여긴 담당 여경은 자기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먼저 다녔던 학교에 복학을 시키러 갔더니 받아주려 하지 않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필자는 학생부장을 맡고 있었는 데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허선생과 이 문제를 두고 의논하였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관내에 거주하는 학생은 무조건 받아주어야 하는 의무조항이 있으니 그쪽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구로
전입신고를 하고 입학을 요청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허선생은 교감선생님과 함께 그 여자 경찰관과 면담을 하였다고 했다.
허선생은 전혀 혈연관계도 없는 경찰관이 학생을 보호하고 있고, 유흥업소에서 데리고 나와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하는 데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법적으로 강제하면 거부할 명분이 없기는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그 여학생을 받아주자.
경찰관도 탈선한 한 여학생을 선도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데 교사인 우리가 이를 거부하려고 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H는 학교를 떠난지 만 2년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H는 그 여자 경찰관의 집에 거주하며 통학하였다.
또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H는 남학생들까지 영향력 하에 둔 학년내 1인자가 되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데다가 공백기 때문에 학습 결손이 있었기 때문에 학습에 대한 열의는 부족하였지만 출석은 잘 하였다.
5월 중순의 일이었다.
스승의 날이 가까운 때였는 데 학부모 대표들이 교사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학부모 대표들과 교사들이 회식을 하였다.
회식을 끝내고 나오는 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허선생이 나에게 H가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개략적인 상황을 파악했지만 시간이 늦어 다음날 일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보니 전날 H가 3학년 전체를 모아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H의 이런 태도에 두려움을 느낀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야기했고 이것이 학내 문제로 비하하였다.
부득이 H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여자 경찰관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와서 상황을 파악한 그 여경은 쉴 사이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전혀 혈연관계도 없는 데리고 있는 불우한 여학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식들이 일을 저질러 학교에 소환된 부모들을 많이 대해 보았지만 쉬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학교에서는 그 여자 경찰관의 충심을 보아서라도 최대한으로 선도하기로 하고 사안을 수습하였다.
한달 쯤 지냈을 때였다.
어느 선생님이 H가 소속된 학급의 교실을 지나다가 우연히 급우의 사물함에서 물건을 훔치는 학생을 목격하였다.
학생부에서 불러다가 조사를 하니 그가 H에게서 훔친 물건들이 나왔다.
그중에 사진 뭉치가 들어있었다.
H가 보육원에 있을 때의 사진들이었는 데 취학 전의 사진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의 사진들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보육원에서 자란 H에게는 이린시절의 추억의 전부였던 것이다.
도난당한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추억의 증거였기 때문에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찾으려 했던 것이다.
H가 그렇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면서 마음 한편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사진과 물건은 다시 H에게 돌아갔다.
6월 하순경이었다.
H때문에 또 사안이 발생하였다.
H가 급우들의 핸드폰을 강제로 빌려서 유료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했다.
학생들이 입은 피해를 조사하여 전체 학생이 입은 피해를 합해 보니 상당한 액수의 금액이었다.
이번에도 그 여경이 전액을 변상하겠다고 하였다.
나와 허선생이 개인적으로 얼마씩 보태어 피해 학생들에게 피해액을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그 여경의 충심을 보아서 선처하여 H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H가 또 일을 저질러서 문제가 커졌다.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강제적으로 급우들의 핸드폰으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가 교내에 국한되지 않고 학교밖으로 비화되었다.
지방 신문에 조그맣게 기사가 났고, 도교육청 게시판에도 학부모의 항의 게시글이 떴다고 했다.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그 여자경찰관이 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에서는 다시 한번 선도하기로 하였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복잡하여졌다.
일부 학부모들이 H를 학교에 그대로 두면 자녀들을 전학시키겠다고 반발했다.
지역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진상조사를 나왔다.
도교육청에 장학직으로 근무하는 고교 동창의 대학후배라 지역 장학사는 평소에 나를 보고 선배님 선배님하고 호칭하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면을 바꾸었다.
학생부장인 나를 불러다가 마치 피의자 조사를 하듯이 평소 학생의 지도에 대한 것을 묻고 지도 자료의 제시를 요구하였다.
필자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학부모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H를 선처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여경을 불러 의논한 결과 대안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방향으로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필자의 친한 후배가 대안학교의 교감으로 있어 잘 지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전학을 시켰다.
전학을 시키고 가끔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H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데 처음에는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11월쯤에 연락을 해보니 H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다.
이번에도 기숙사 동료들의 핸드폰 서비스를 강제로 이용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기숙사 학생들이 반발을 한다고 했다.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지만 기숙사에서는 퇴사조치되었다고 했다.
그 학교는 멀리 시골에 있어서 기숙사에서 나오면 학교를 다닐 방법이 없었다.
결국 H는 졸업을 못하고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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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2-3년이 지났다.
H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학교를 중퇴한 후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던 여자 경찰관의 집을 떠났다고 한다.
어느 포장마차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후 더 이상 H에 대한 소문은 듣지 못했다.
혈연관계도 없는 불우한 소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여경은 도내에서 계속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로부터 몇년후 경위로 승진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필자는 이경위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천사 경찰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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