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를 내가 가장 잘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모르는 나를 남이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를 해도, 과소평가를 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된다.
많은 과대망상이 자신은 물론 타인이나 공동체에까지 큰 피해를 입힌 것을 많이 본다.
자신의 능력을 잘 모르고 과대평가하여 무리한 일을 추진하다가 주저앉는 경우도 많다.
또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도전하지 않거나 회피하여 성공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40년 가까이 교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대했다.
필자가 직접 가르친 모든 학생들을 잘안다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정에 따라 수업시간에 만나 나에게 배우고 평가를 받았고, 필자는 그들의 학업수준에 대한 일부만을 파악했을 뿐이다.
그러나, 담임을 했거나 특별히 관심을 가졌거나 한 경우 피상적인 학력수준 파악 이상으로 학생의 다른 능력을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이 가진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일깨워 주고 격려하여 줌으로 인해서 학생의 능력신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험도 많다.
반대로 나도 모르게 학생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해서 좌절감을 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직을 떠난지 6년이 더 지나는 동안 교사로 재직했던 시절을 회고해 보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일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때문에 상처를 받고 좌절감을 갖게 된 제자들이 있다면 그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
학생들은 성장하는 과정에 있고,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앞서 살아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교사에게서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경험하게 된다.
학생들이 경험부족으로 잘 알지 못하는 현안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하게 된다.
답답한 것은 학생이 분명 잘못 판단을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데도 자기 고집만 부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다.
필자가 시골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P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는 데 당시는 대입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이라 시골학교에서 그 성적으로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하루는 그 학생이 담임교사를 찾아왔다.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것이었다.
담임교사가 그 이유를 물으니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인데 자퇴를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하겠느냐고 물으니 P는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다.
공부를 해서 어느 학교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P는 서울법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학교에서 공부해서는 서울법대를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자퇴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기가 막힌 담임교사는 어느 수준의 학생이 서울 법대를 진학을 하며, 혼자서 공부해서는 서울법대에 입학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여도 P는 자신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퇴를 고집했다.
내가 서울에 가서 어떻게 생활을 하며 공부하겠느냐고 했더니 이모댁 가게 일을 도와주며 공부하겠다고 했다.
더 이상 설득이 어려웠다. 담임교사가 그 뒤에도 몇번인가 상담을 하면서 조언을 했지만 P는 끝내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그 뒷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서울법대에 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필자가 당시 근무했던 학교는 중고 병설이었는 데 학생수가 적어 교사수도 많지 않았고, 중고 교사들이 교무실도 같이 사용했고
교무 학생 연구 세 부서에 중고교사가 섞여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또 수업도 전공에 따라 중고를 모두 담당했다.
K는 아주 시골 초둥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3년을 늦게 중학교에 입학했다.
고1들이 초등학교 동기였다.
K는 학급에서 덩치가 가장 컸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좋와 교사들과도 잘 어울렸다.
3년이나 어린 동생또래와 같이 학교에 다녔지만 별 문제가 없이 잘 다녔다.
그러던 그가 2학년이 되자마자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다.
담임이 왜 자퇴를 하려 하느냐고 묻자 프로 권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권투를 배울 수가 없기 때문에 자퇴를 하고 서울에 가서 권투를 하겠다고 했다.
담임이나 교사들이 프로권투선수로 성공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설명하여도 자기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체육교사에게 물어 보니 권투선수로 적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K는 자퇴를 하고 상경하였다.
후일 그가 권투를 하였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권투선수 생활을 그만 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부모가 자식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식의 수준을 모르거나 환상적인 희망을 품고 있는 경우다.
강원도에서는 1979년에 춘천, 1980년에는 원주에서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었다.
1982학년도 평준화지역 고교입시에서 탈락자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탈락자들은 인근 모집인원이 미달된 시골지역 고교의 추가입학시험에 응시하였다.
필자가 재직하였던 학교에 대량 미달사태가 발생하였다.
120명 모집인원인데 40명 가까운 결원이 발생하였다.
춘천과 원주에서 연합고사에 탈락한 학생들이 응시하였다.
응시자가 초과해서 또 탈락자가 나왔지만 합격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춘천 원주지역에 추가합격이 되어 떠나게 되자
후순위 학생들 모두가 입학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춘천 원주지역 고교에 결원이 생기면 전학을 갔다.
그러다 보니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학생들이 처음 지망했던 춘천 원주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필자가 말하려는 H는 추가입학자 마지막으로 전학을 간 학생이다.
H는 어머니가 50대 후반이고 아버지가 60대 후반이었다.
위로 여러 명의 누나가 있고 끝으로 H가 아들이었다.
집안 내에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까지 엄마와 같이 잤다고 한다.
전학을 시키러 모친이 왔다. H는 학력수준이 낮아 한글해독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담임은 어머니에게 H에게 한글을 해독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도를 부탁했다.
H의 어머니는 역정을 내면서 명문 C고에 배정되었으니 서울법대를 보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H가 나가자 내또래인 담임은 나에게 "경선생은 서울법대에 들어 갈 우수한 후배를 두었으니 좋겠다" 라고 비꼬는 투로 말을 했다.
필자가 춘천에 와서 근무할 때다.
이때는 다시 고교입시가 평준화가 해제되고 고교별 입학시험을 실시할 때여서 우수학생들의 특정학교 쏠림 현상이 일어날 때였다.
필자가 직접 수업을 들어가지는 않았는 데 경기도 양평에서 전학온 학생이 있었다.
시골 중학교에 다니다가 춘천 시내의 학교로 배정받아 오게 되었는 데 학습적응에 힘들어 했다.
입시가 가까와 오는 10월 초순의 일이었다.
학생의 어머니가 담임교사를 방문하여 아이의 문제로 상담을 하였다.
담임은 어머니에게 학생의 상황을 설명했다.
담임의 이야기로는 양평에서 온 학생의 교과성적이 부모가 바라는 시내 명문고에 갈 수준에 미달되어 번민했다고 하였다.
다행인 것은 그 학생이 친구들을 잘 사귀었다는 것이다.
어느 친구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친구를 고향으로 다시 전학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학교를 방문했고, 며칠 후 학생은 양평으로 다시 전학을 갔다.
이 경우는 도시의 큰 학교에만 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부모의 막연한 기대가 빚어낸 사건이다.
다행히 친구를 잘만나 빗나가지 않았고, 친구와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아이의 수준과 도시에서 공부하는 것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부모가 자식을 다시 고향으로 전학을 시켜 문제를 해결하였다.
필자가 춘천여중에서 춘천중학교로 전임하여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결혼 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J의 어머니가 학생에 대한 상담을 하러 왔다.
J는 초등학교때 공부도 잘하고, 교과외 다른 활동도 잘하는 인정받는 어린이였다고 한다.
J가 5학년 때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 소위 강남 8학군 지역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8학군 지역의 아이들은 사교육이나 철저한 가정교육으로 수준이 높아서 아이의 능력으로는 이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춘천에서는 인정을 받았었는 데 강남 8학군 지역에서는 잘한다고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한다.
좌절한 아이는 빗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오락실을 전전하는 부적응 행동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어머니는 큰 결심을 했다고 한다.
아이를 다시 춘천으로 데리고 오기로.....1학년 말에 춘천으로 전학을 오게 되고 2학년때 필자가 담임을 맡게 되었는 데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1학년때의 성적을 보니 하위권이었다.
필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J를 살펴보았다.
성격도 밝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성적도 좋와졌다. 마침내 상위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수학부장까지 맡았다고 한다.
학년초 환경정리가 끝나갈 무렵 새 담임이 나를 자기반 교실로 불렀다. 올라가 보니 J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
교사들을 동물에 비유하여 특징있게 그렸는 데 성격묘사를 아주 잘하였다. 이 그림을 보고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교사는 없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그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SKY는 아니었지만 서울 시내 중상위권 학교의 생물학과에 진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경우 교사 경험이 있는 모친이 자식의 수준을 조기에 파악하여 비현실적인 욕심을 내려 놓음으로 자식을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한 예이다.
내가 내 자신을 안다는 것도,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안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를 알아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나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를 떠난 학생들 (0) | 2017.12.25 |
---|---|
천사 같은 어느 여자 경찰관 (0) | 2017.09.29 |
학교를 방문하는 상인(商人)들 (0) | 2017.04.30 |
아이들의 싸움에 대한 단상(斷想) (0) | 2016.09.17 |
그때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0) | 201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