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싸움을 자주한다.
같은 부모밑에서 태어난 형제들끼리도 자주 싸운다.
일반적으로 싸움은 좋지 않은 행동으로 평가되어 어른들은 아이들 보고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라고 말하곤 한다.
싸움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싸움을 통해 질서가 정해지기도 하고, 갈등의 조정, 타협과 화해 등을 학습하게 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아이들의 싸움은 흔히 있는 일로 여겨졌고, 어른들도 아이들의 싸움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아이들끼리 싸우면 "싸우며 큰다"라고 하며 아이들끼리 갈등을 해소하도록 하고 가급적 관여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또래들끼리 싸운 것을 자기들끼리 해결하였지 부모에게까지 알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들이 싸운 것을 안 부모들도 싸우는 과정에서 크게 상처를 입지 않은 한 모르는 척하거나 가벼운 주의를 주는 정도로 지나갔다.
필자가 여기서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둘이 대등한 관계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열이 분명한 상태에서 힘이 센 자가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폭행이지 싸움이 아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아이들끼리 싸우고 나면 서로를 노려보며 "너하고는 다시는 안논다"라고 하며 헤어졌다.
그러나, 다음날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하게 놀고 있었다.
지금 노년기의 세대들은 거의 모두가 어려서 싸운 경험이 있고, 그때 싸웠던 친구들이 평생 함께하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비화되는 일들이 잦아졌다.
무조건 자기 아이가 옳았고 상대방의 아이는 잘못되었다고 자기 아이의 편만 드는 부모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또, 아이들도 약한 아이를 괴롭히거나 의도적으로 폭행하는 등 폭력을 가하는 일들이 증가하여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중고교에서 재직하였기 때문에 초등학교 단계의 아동들처럼 싸움이 일어나는 빈도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사춘기라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하여 또래끼리 싸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싸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은 중학교 1학년 4-5월경이다.
아주 시골처럼 한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중학교로 진학한 경우는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초등학교때 서열이 정해져 있었고 서로를 잘알기 때문이다.
여러 학교가 모인 경우도 어느 한 학교의 인원이 다른 학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도 싸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인원이 많은 큰 학교의 경우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자 아이들의 속성상 서열이 정해지게 되는 데 높은 서열을 차지하여 또래들 위에 군림하려는 아이가 있게 되면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거의 연례행사로 4월에는 아이들의 싸움이 많이 일어났다.
학급내에서 서열정하기나, 아니면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긴 것이 누적되고 증폭되어 마치 지각에 축적된 스트레스가 지진이 되듯이 싸움이 되었다.
싸움이 발생되면 재미있는 볼거리라고 또래들이 말리지 않고 구경을 하게 된다.
이때 운이 나쁘면 교실을 돌아보던 교사에게 적발이 되는 경우도 있고, 얼굴에 난 상처나 싸우고 나서도 풀리지 않은 분노때문에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읽은 교사에 의해 싸운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게 된다.
때로는 싸움이 일어난 것을 제보하는 공익제보자(?)에 의해 현장에서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어른들의 말씀대로 싸움은 성장과정 중에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에 싸우는 녀석들에 대해서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싸움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에 애들 앞에서는 엄하게 훈계하였다.
싸운 녀석들을 모두 불러다가 두녀석 모두에게 싸운 이유를 물었다.
각자는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방의 부당함을 알리는 주장을 했다.
답변 중 다른 녀석이 반박을 하고, 재반박이 이루어지면 교사 앞에서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에는 반박하는 녀석을 제지시키고 끝까지 자기 주장을 하도록 했다.
양쪽에 공정하게 할 말을 다하도록 한 후 녀석들의 주장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고 화해하라고 설득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싸움까지 가지 않아도 될 사항이라는 것을 인식하였지만 더러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당사자들이 감정을 풀었든 말았든 싸움의 상황은 종료시켜야 하기 때문에 담임의 강제력을 발휘하여 두 녀석을 화해시켰다.
서로 미안하다는 말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과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것을 남자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하게 한 후 사건을 종결시켰다.
필자가 담임을 하던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당사자들의 갈등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 싸움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회성으로 끝나며 갈등이 해소되었고, 둘의 사이에 감정의 앙금이 쌓여 연장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싸우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연륜이 쌓이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시기에 따라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예측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규모가 큰 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싸우는 녀석들이 생길 때가 되었는 데..."라고 후배 교사에게 말하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싸우던 두 녀셕이 끌려 들어왔다.
가출하는 녀석들이 생길 것 같으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 가출한 녀석이 생겼다.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하면 후배들이 "부장님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부장님이 말씀하기가 무섭게 일들이 일어납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대등한 관계에서 힘겨루기가 아닌 우열이 분명한 상태에서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싸움이 아닌 폭행이다.
폭행에 의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오래가게 된다.
'90년대가 되면서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싸움이 줄어드는 대신 일방적인 폭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학교폭력 예방과 집단 따돌림 예방이 학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대두가 되었고, 이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었지만 폭력의 정도는 점점 심해지고 당하는 아이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발전을 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되었다.
또 신체적인 상해가 대부분이던 예전과는 달리 SNS 등을 통한 사이버 폭력이 증가하는 등 폭력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아이들간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끼리의 싸움은 크게 상처를 입은 경우가 아니면 어른들의 다툼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경우 상처를 입힌 측의 부모가 상처를 입은 아이의 부모에게 사과를 하고, 치료비를 보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폭행인 경우도 가해자의 부모가 자기 자식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교폭력으로 학사 처벌의 받은 경우 변호사까지 동원하여 이의제기를 하고 법정다툼으로 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필자는 퇴임 전 마지막 10년간을 시골학교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직접 겪지는 않았다.
학생수도 적었고, 시골이라 아이들도 순수하고 착했기 때문에 학교폭력의 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싸우는 경우는 있었다.
필자가 퇴임을 하기 직전의 일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다음날 쯤의 일이다.
2학년인 T의 어머니가 격앙된 모습으로 학교를 방문했다.
T가 맞아서 얼굴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교실에서 보았던 T의 모습도 상처투성이었다.
상담실에서 T의 어머니의 격앙된 목소리(사투리)로 큰 소리치는 것이 교무실에서도 들렸다.
학생의 담임교사가 T의 어머니를 기다리라고 하고 T와 싸움을 했던 아이를 불러다 어머니를 만나게 했다.
담임교사가 잠깐 자리를 떴다가 상담실에 들어가 보니 T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T와 싸웠던 녀석의 얼굴은 T보다 더 멍이 들고 상처가 컸다고 한다.
이런 녀석의 얼굴을 보자 T의 어머니는 슬며시 자리를 뜨고 만 것이다.
싸움은 대등한 위치의 당사자끼리의 대결이고 갈등해소 과정이라는 것이 강한자가 약한자를 향한 일방적인 폭력행사인 폭행과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이제는 공동체 내에서 싸움과 이어지는 중재와 화해라는 갈등해소의 기제(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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