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변두리 지역의 작은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3학년에 민우(가명)라는 남학생이 있었다.
학교 생활이 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큰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담임이나 학생부에서 관심을 갖게 하는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알콜중독으로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계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담임의 이야기로는 다행히 계모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일을 하기는 했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고 계모도 일을 한다고 하였다.
10월 하순에 민우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했다고 연락이 왔다.
문상을 가보니 빈소는 너무 쓸쓸하였다.
친척들의 모습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민우와 민우 아버지의 동거녀가 반소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민우가 걱정이 되었다.
어쨌던 민우의 보호자인 민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계모는 정식 결혼관계도 아니었고 민우와는 혈연관계가 없는 분으로
민우에 대한 양육 책임이 없는 분이었다.
민우의 계모에게 앞으로 민우를 누가 돌보게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민우의 계모는 의외로 자신이 민우를 돌보겠노라고 했다.
어쨌든 민우는 졸업을 하였고 공고로 진학을 하였다.
나는 다음해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겼고 민우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3년 후의 일이었다.
시내에서 전학을 온 승원이가 수업시간에 나에게 민우를 아느냐고 물었다.
먼저 근무하던 학교에서 가르친 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민우를 아느냐고 반문하니 민우의 계모가 이모벌이 된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불러다가 민우의 소식을 물어 보았다.
공고에 진학을 했는 데 졸업을 했을 것이고 취업은 했는지를 물었다.
그는 민우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울산으로 갔다고 했다.
민우의 계모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승원이는 이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민우의 계모는 민우 아버지가 죽은 후에 민우를 계속 돌보았다.
비록 혈연관계로 맺어진 모자관계도 아니었고 민우 아버지와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도 아닌 동거상태였으니
부양의 의무가 없었지만 오갈데 없는 민우를 자식처럼 돌보며 공고를 졸업시켰다고 한다.
민우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한지 얼마 안되어 민우의 계모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승원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마음 속에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민우의 계모는 민우에게 정말 훌륭한 어머니었던 것이다.
이혼을 한 생모는 민우와 연락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민우를 돌보지는 않았다.
민우 아버지와 동거관계였으니 어렸을 때부터 돌본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민우가 어느 정도 장성한 다음에 만났을 것이고 어색한 관계의 모자관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민우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도 둘의 관계는 다행히 원만했고 이것이 민우를 계속 돌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동거하던 민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혈혈단신으로 남겨진 민우를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계속 돌보기로 한 것은 큰 결단이었을 것이다.
아마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민우가 졸업을 하기 전부터 알았을 것이다.
암과 투병을 하며 민우를 졸업시켰고 그가 취직을 하여 자립을 하자 마치 할 일을 마친 것처럼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승원이에게 민우와 연락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민우도 어느덧 30세가 가까와졌을 것이고 어쩌면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어머니의 바램대로 충실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민우의 계모는 민우의 진짜 어머니고 누구보다도 훌륭한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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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이야기는 같이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다.
교감선생님이 정선의 탄광지역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심성이 바르고 성적도 우수한 남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재혼을 한 의부와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니 이 학생은 혈연상의 부모를 모두 잃은 불행을 겪게 된 것이다.
홀로 남겨진 학생을 의부가 계속 양육을 했다고 한다.
얼마후 의부는 재혼을 했다고 한다.
재혼한 부부는 이 학생을 자식으로 계속 돌보았다고 한다.
학생도 거듭되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고 학교 생활을 잘하였고 성적도 아주 우수하였다고 한다.
양부모는 이 학생을 외국어 고등학교로 진학시켰다고 한다.
시골에서 외고에 입학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학생이 심성이 바르고 성적이 뛰어나게 우수한 것이 양부모가 계속 학생을 돌보게 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친자식도 아닌 법으로 맺어진 자식을 경제적 부담을 져가면서까지 외지로 보내 교육을 시키는
양부모야 말로 진정한 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위의 두 사례는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이상의 부모 자식의 관계이며
진정한 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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