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라는 전염병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석하다.
전염병에 의한 소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염병의 대유행은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대재앙이었다.
유럽에서 여러 차례 유행한 페스트는 14세기에는 유럽 인구의 1/4을 사망하게 하는 대재앙이었다.
근대 이전에 전염병이 유행되면 한 도시 전체나 한 지역의 주민 대부분이 죽어나가는 큰 재앙이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여 공중 위생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체계가 확립되면서 전염병의 감염율이나 감염으로 인한 희생자수는 격감하였다.
아주 저개발국가가 아닌 이상 전염병은 더 이상 사망의 주된 원인이 아니다.
일견 전염병이 정복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록 옛날보다는 감염율이나 사망율이 격감하였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염병은 인간을 괴롭히는 재앙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필자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약 60년이다.
필자의 기억 속에 남는 전염병에 관한 직간접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오랜 기억은 뇌염(일본뇌염)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인 1958년의 일이다.
이해에는 뇌염이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하여 약 7천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2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뇌염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여 주셨다.
물론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무서운 병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집에서 신문도 구독하지 않았고 라디오도 없었던 때라 학교에서 선생님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원이었다.
가을로 기억되는 데 학교가 휴교를 했다.
꽤 오랜 기간동안 학교에를 가지 않았다.
아마 두 주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전염병때문에 휴교를 한 일은 초등학교 3학년때가 유일하였다.
(지역에 따라 휴교의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
1974년 교사 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2011년 퇴직을 할 때까지 교직생활 기간동안 경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교직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다.
콜레라가 유행한 적이 있다.
보건 당국에서는 콜레라 예방주사를 접종하였다.
주사를 맞기 싫어하는 나인지라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볼 때 감염된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치사율도 낮았기 때문에 내가 걸릴 확률이 낮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데 간호사 두명이 예방접종을 하러 교실로 들어왔다.
젊은 아가씨인 간호사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선생님은 예방주사를 맞으셨나요?"라고 묻는다.
담임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데서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그랬더니 간호사는 "그럼 선생님부터 맞으셔야지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팔을 내밀고 나부터 예방주사를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60명 가까운 학급인원 전부가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후에도 어떤 질병이 유행할 때 학교에 와서 예방접종을 하는 일은 더러 있었다.
2001년 춘성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홍역이 유행하였다.
물론 예방접종의 덕분으로 감염자의 수가 미미했었는 데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5만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의학수준이 높아지기 전에는 사망율이 높아 홍역은 아주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가을의 일로 기억된다.
두 여동생이(2세, 5세) 홍역에 걸렸었다.
두 동생은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1주일여를 자리에 누워 사경을 헤맸다.
속초읍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는 데 동생들이 사경을 헤매는 데도 병원에를 가지를 못했다.
홍역은 바람을 쐬어서는 안된다는 속설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비용문제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웬만해서는 병원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치료를 하던 시대였다.
홍역을 하는 데도 약을 먹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같이 야산에 가서 산토끼똥을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산토끼똥이 효과가 있다는 민간요법때문이었을 것이다.
후일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던 두 동생이 1주일 정도가 지나니 미음을 삼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동생은 사경을 헤매다가 운좋게 회복이 되었다.
2001년 당시는 의료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사망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으로 낮아져 있었다.
홍역은 법정전염병이라 감염이 되면 학교에 출석하지 않아도 결석처리를 하지 않았다.
2학년에 H라고 하는 좀 미련한 녀석이 있었다.
홍역에 감염이 되었지만 학교에 등교한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 나오기 싫던 H는 이 학생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만지고 자신의 코와 입에 대는 식으로 희망하는(?) 홍역에 걸렸다.
소원대로 1주일 동안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단순히 학교에 나오기 싫다는 생각 하나가 엄청난 모험을 하게 한 것이다.
2002년 아폴로 눈병이라는 병이 크게 유행하였다.
2학기가 시작된 9월부터 10월의 일로 기억된다.
눈병에 감염된 학생들은 한주간 학교에 출석하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되었다.
질병관리 책임자로 기억되는 분이 눈병에 감염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고 실명의 위혐성이 없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기 싫고 학교에 나오기 싫은 녀석들은 일부러 눈병에 감염되었다.
이미 눈병에 감염된 녀셕에거 5백원을 주고 감염된 눈을 비빈 속으로 자신의 눈을 비벼서 고의로 눈병에 걸렸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감염자수가 기하급수로 늘기 시작했다.
20명 재적의 1학년 한 학급은 절반이 감염되어 10명만 등교하였다.
전교생의 30%정도가 감염되었다.
휴교를 논의하였지만 휴교를 하지 않고 나온 학생들만으로 수업을 강행했다.
매스컴에서 고의 감염 사례가 보도되었기 때문에 내 나름의 역학조사(?)를 하였다.
최초의 감염자를 찾아내었다.
3학년 녀석이었는 데 이웃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돈을 주고 고의 감염이 되었고, 녀석을 통해 다른 감염자들이 나왔다.
감염을 시킨 녀석과 감염된 녀석들을 선으로 연결하니 감염족보가 작성되었다.
그런데 이 눈병은 참으로 이상한 눈병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녀석들은 잘 감염이 되지 않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녀석들이 집중적으로 감염된 것이다.
시내 고등학교의 경우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진학한 학교에서는 극소수의 감염자만 나왔지만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집중된
학교에선 대량 발병이 일어났다.
안과를 하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병원에서 아폴로 눈병이 감염되지 않았다고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자
학생녀석은 쓰레기 통에 버린 환자의 안대를 꺼내 눈에 비비고 나간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2010년경 전보다는 감염자수가 적었지만 눈병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는 감염학생을 무조건 등교정지 시키지를 않았다.
눈병에 걸린 녀석들을 도서실에 수용하여 교내 격리를 시켰다.
점심식사 시간과 휴식시간도 일반 학생들과 다르게 운영하여 교내에서 접촉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하였다.
눈병에 걸려도 학교를 나와야 하니 고의 감염자가 없었는지라 대규모의 감염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도 전국이 떠들석하였었다.
많은 학생들이 감염된 경우 휴교를 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마침내 강원도 춘천에서도 신종플루 환자들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홍천 서석에서는 감염자의 발생이 없었다.
교사들은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솔치고개는 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농담을 하기까지 했다.
월요일에 출근을 하니 서석에도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학생부와 보건 업무 담당교사가 교문에서 체온계를 가지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체온을 측정하였다.
꽤 여러명의 학생들이 감염되었다.
3학년은 내신성적때문에 1,2학년보다 2학기 중간고사를 먼저 치르었다.
당시 강원도는 비평준화로 경쟁입시를 치르던 때였다.
감염된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치르겠다고 강력하게 희망하였다.
학교에서는 특별실을 내어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도록 하엿다.
교사들은 마스크를 쓰고 시험감독을 하였다.
필자도 마스크를 쓰고 시험감독을 들어 갔다.
37년간의 교직생활 중 마스크를 쓰고 시험감독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신종플루 소동이 있은지 6년후인 2015년 5월말부터 지금까지 전국이 메르스때문에 난리다.
많은 학교들이 휴교를 했다.
어른들은 메르스라는 전염병때문에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음식점 등 각종 서비스 산업이 타격을 입어
경제가 어려워져서 이를 염려하지만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이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속히 전염병의 확산이 멈추고 사회가 정상을 되찾고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부모란??? (0) | 2015.08.15 |
---|---|
기억에 남은 제자 - 그 뒷얘기와 안타까운 회한(悔恨) (0) | 2015.07.02 |
시골훈장의 뒤돌아보기 -숙직에 얽힌 이야기들(2) (0) | 2015.05.12 |
시골훈장의 뒤돌아보기 -숙직에 얽힌 이야기들(1) (0) | 2015.05.07 |
이성교제 문제로 부모에게 머리를 삭발당한 여학생 (0) | 2015.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