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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종교개혁 현장 순례(1) : 춘천-런던-브리스톨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춘천 석사교회에서 10년전부터 1차 구약코스, 2차 신약코스, 3차 종교개혁 코스로 나누어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실시하여 왔다. 1차와 2차 순례때 참석하지 못한 필자부부는 3차 순례때는(2017년 2월 6일-15일) 참석하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하였다.

작년에 순례계획이 수립되었고, 연말부터 네차례에 걸쳐 준비모임을 가졌다. 매일관광에서 여행을 주관하였다.


2017년 2월 5일

내일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교개혁지 순례가 시작된다.

여러날 동안 준비한 것을 다시 점검하였다.

여행을 인솔할 매일관광의 고정화 이사와 해외거주 경험이 풍부한 김관수 권사가 준비목록을 예시하였다.

유로화, 파운드화, 달러화를 환전하여 놓았다. 입고 다닐 옷을 준비하고 약을 챙겨 넣었다.

아내가 준비를 하는 데 많이 애를 썼다. 애들 모두가 여비에 보태라고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사전에 네 번의 준비모임을 갖고 목사님의 사전 교육과 여행사 직원의 교육이 있었다. 준비는 한달 전부터 시작했다. 입고 갈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트렁크를 사는 등 준비사항이 많았다. 해외여행은 처음이 아니지만 준비물이 많이 필요했고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었다.

목록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준비물을 트렁크에 챙겨넣었다.


2017년 2월 6일

집에서 840분에 교회로 출발하였다.

9시에 인원점검을 하고 기도를 하고 출발하였다. 1130분에 인천공항 전주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음식맛은 괜챦았다. 공항에서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통관절차는 매우 번거롭다. 짐을 부치고 몸 수색을 하고 통관하였다.

비행기는 1430분에 이륙하였다.

항로 표시는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서 중국 북경을 지나 북상하며 내몽골과 외몽골을 거쳐 시베리아 남단을 경유하여 알마타와 모스코바를 지난후 스칸디비니아 반도쪽으로 북상한다. 1978KAL기가 소련 공군기의 미사일에 맞아 얼음위에 불시착했던 무르만스크를 지나 다시 호를 그리며 남하하여 덴마크 상공을 지나 북해를 건너 런던에 도착하게 되었있었다. 내몽골 상공을 지나며 석양이 되었다. 석양의 모습은 계속되었다. 내가 평생에 본 가장 긴 시간의 저녁노을이었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본 저녁 노을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고 중앙아시아의 알마타 상공을 지나 모스코바 상공에 이르도록 저녁노을을 계속되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석양을 바로보며 날고 있는 것이다. 13시간이나 타고 가는 비행기는 지루했다. 가끔씩 일어나서 화장실 부근의 공간에 가서 몸을 푸는 운동을 했다. 최권사가 가지고 간 끈을 가지고 몸을 푸는 운동을 하니 한층 몸이 개운해진다. 기내식이 두 번 나왔다. 시차로 세 번이나 잠을 자다 깨다하였다.

런던 시간으로 18시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히드로 공항에서


통관수속을 하는 데 세관원들이 여러 인종이었다.

영국은 이미 앵글로색슨족의 나라가 아니었다. 식민지 시대부터 각국에서 온 유색인종들로 인해 다문화 국가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김재두 가이더가 마중을 나왔다. 버스 운전사가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여서 다문화가 된 영국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Holiday inn이라는 호텔에 도착하였다.

방을 배정받고 이번 여행의 첫밤을 보냈다.

     

27()

630분에 기상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러 와보니 여러 국가에서 온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바벨탑 사건 뒤의 사람들의 혼란된 모습을 상상하여 보았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하나님과 동등해지려는 인간의 오만함은 하나님의 언어를 다르게 함으로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자 탑을 쌓는 일도 멈추게 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되었다.

지금 우리 인류는 바벨탑을 쌓고 있지 않는가?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교만을 갖게 하고, 과거 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접근하지 않던 금단의 영역인 생명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생명을 조작하고 변형하고 창조하려고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교만이 극에 달하면 제 2의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김재두 사장과 최호선 부장이 안내를 하러 왔다.


버스에 탑승하여 요한웨슬레가 활동하였던 브리스톨을 향하여 떠났다.

맥시코 만에서 출발하여 복잡한 경로를 그리며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편서풍의 영향을 받으며 대서양을 건너 온 맥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영국은 같은 위도의 대륙 동안의 나라들보나 겨울철이 훨씬 따뜻하다. 예를 들면 하얼빈의 위도보다(북위 45) 런던의 위도가(북위 51) 훨씬 높지만 1월의 기온을 보면 런던은 영상 5이상인데 비하여 하얼빈은 -19로 훨씬 추운 것은 맥시코 만류의 영향 때문이다.

가장 추운 1월의 기온도 영상인지라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에는 풀이 파랗게 자라고 있는 지역들이 보였다. 높은 산지는 보이지 않고 넓은 구릉지와 평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버스는 육차선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창밖으로는 목초지와 농경지로 보이는 잘 정돈된 경작지들이 숲과 조화를 이루며 모자이크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가끔씩 도로 양편으로 영국의 전통가옥들이 보였다.

나무는 더러 침엽수들이 보였으나 주로 참나무 등 주로 낙엽 활엽수였으며 키가 큰 풀들은 말랐으나 작은 풀들은 푸른 색을 띄고 있었다.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우리와 반대인 것이 특이하였다.

가이더는 마차에서 마부의 좌석이 오른쪽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했다.

버스로 가는 동안 가이더는 영국의 역사와 지리를 설명하였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북아일랜드, 웰즈랜드 이렇게 네 나라가 합하여 구성된 나라라고 했다. 또한 영연방에는 41개 국가가 가입하여 있으며, 호주 뉴질랜드 등 17개 국가의 국가 원수가 영국 여왕이라고 했다. 영국은 맥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안개와 구름이 낀 날씨가 많고 연중 190일 이상이 가끔씩 비가 내리는 날씨라고 한다. 일조량이 적어 곡식이 잘안되는 땅이라고 한다. 9시가 넘어서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겔트족이 영국에 이주한 것은 약 2200년 전이라고 했다.

이때 겔트족들은 여기저기에 부족단위로 흩어져 살았으며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로마가 지중해 지역을 지배하고 그 영역을 푸랑스, 독일지역으로 확장하였으며 영국으로 건너와 4개 군단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400여년을 지배하였다고 한다.

이때 로마의 선진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영국에도 기독교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로마가 게르만 민족에 의해 멸망하고, 게르만족이 대이동을 하며 4세기 말경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들어 와 700여년간 7개의 왕국을 세워 지배하였다고 한다. 겔트족은 대륙이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으로 흩어져 겔트족에 이어 게르만족이 영국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있는 스칸디비니아 반도의 바이킹 족이 해양으로 진출하며 프랑스의 대부분을 점령하게 되고, 노르만의 지도자 윌리엄 1세가 도버해협을 건너가 앵글로색슨 왕조를 무너뜨리고 1066년 로르만 왕조를 수립하였다.

이렇게 해서 영국에는 선주민, 켈트 족, 라틴 족 로마 인, 앵글로색슨 족, 노르만 족 등 다양한 민족이 서로 섞이게 됐다.


버스는 계속 브리스톨을 향해 달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넓은 평원과 구릉지대, 그 사이로 경작지와 목초지로 보이는 잘 정리된 밭들과 숲이 조화를 이루며 모자이크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가끔 전통가옥의 민가와 방목하는 양떼나 말들이 보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날씨는 언제 흐렸냐는 듯이 쾌청하여 졌고 가이더는 계속하여 설명을 이어나갔다.


영국은 일조량이 부족하고 겨울이 춥지 않지만 여름에 덥지도 않아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목축업이 발달되었고, 특히 양모(羊毛) 산업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중세 유럽은 아랍에 의해 고립된 지역이었으나 해양시대가 열리며 풍요하여졌다고 한다.

영국은 양모산업이 중심이었으며 이때 양을 기르기 위해 초지의 경계를 정하며 자본가들이 토지를 독과점하여 농민들이 농토에서 밀려나는 1차 엔크로우져(enclosure-울타리라는 뜻)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8세기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한 산업혁명으로 방적기를 비롯한 각종 기계들이 발명되며 섬유 생산 등 산업분야는 물론 교통기관에 이르기까지 생산가 운송수단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의 많은 인력이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대토지 소유를 기초로 한 자본주의적 농업경영이 확립되었으며, 자영농민들이 몰락하게 되었다.(2차 엔크로우져 운동)


수출을 하지만 수입을 제한하는 보호무역을 행하였으며 아프리카의 노예를 미국에 파는 노예무역과 설탕 등 미국의 생산품을 값싸게 사들이고 섬유 등 제품을 식민지에 파는 무역을 하여 부를 축적했다. 1886년 자유무역화될 때까지 이러한 형태의 무역이 행해졌으며 이 과정에서 영국이 중국에서 다량의 차를 수입하며 무역역조가 발생하였고 이를 힘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편전쟁이 발발하였다.

1832년 비인간적인 노예 무역은 노예제도 반대 활동가들의 활동에 의해 폐지되게 되었다.

버스는 계속 브리스톨을 향해 달렸다. 가끔 우리나라의 인삼밭 같은 것이 보여 물어보니 태양열 집열판이라고 한다. 일조량도 부족한 나라에서 태양열 집열판을 보니 주어지는 자연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영국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겨울이지만 들판은 우리나라의 3월말-4월초처럼 보였다.

1030분쯤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잔뜩 흐린 날씨였는 데 햇빛이 비치는 화창한 날씨가 되었다.

브리스톨에 도착하여 'fish and chips'라는 스테이크와 파이로 점심식사를 했다.



브리스톨은 철강산업이 발달한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삼각무역(미국과 영국, 아프리카를 오가며 영국산 의류와 구슬 같은 장신구, 아메리카산 면화와 설탕,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교환하던 무역)이 끝나며 브리스톨은 쇠퇴하게 되고 슬럼화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도시를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으로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옛날 건물들은 용도를 변경하여 계속 사용하며 잘 보존하고 있다. 도시는 32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마다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지역 재생사업을 하여 도시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였다. 1800년대 마을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