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카이엔을 나와 오코노모 야끼라는 일본식 요리로 점심식사를 하고 미야지마의 이츠구시마 신사를 관람하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혼슈섬과 큐슈섬을 가르는 해협을 간몬(關門)해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좁은 바다가 시코쿠, 혼슈, 큐슈섬을 갈라놓는 데 이 좁은 바닷길을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라고 한다.
배를 타고 하카다에 상륙한 한반도나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다시 세토내해 항로를 거쳐 나라나 쿄토로 갔을 것이다.
조선통신사가 오간 길도 세토내해다.
육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야지마섬은 푸른색 바다와 그가운데 솟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황색 도리이를 가진 이츠구시마 신사와 잘 보존된 자연이 조화된 경승지다.
이 신사는 12세기 경에 조영되었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거대한 도리이가 인상적이다.
1100개의 기둥을 가진 거대한 신사인데 바닷물이 신사 기둥 밑에까지 들어오면 신사가 바다 위에 세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주황색 기둥의 신사와 푸른 바다와 주변의 자연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부두에서 신사까지 가는 길에서는 신의 사자라고 여겨져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슴들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아 먹이도 잘 받아먹고 만져도 도망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발정기의 숫사슴은 성질이 사나워서 주의를 해야 한다고 한다.
신사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거리가 있다.
신사에는 많은 참배객들이 와서 무엇인가 소원을 기원하고 있었다.
신도는 일본인들에게 종교로 신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사의 도리이가 바다 가운데에 솟아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밀물때 바닷물이 들어 오면 신시가 바다위에 건축된 것처럼 보인다. 바다와 건물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다른 분의 자료에서 인용한 사진임.
밀물 때의 모습 - 신사가 물위에 서있는 바다 위이 건물로 보인다.
거리의 사슴들 - 길들여진 사슴이어서 사람이 가까이 와도 도망가지 않으며 먹이도 잘 받아 먹는다.
오중탑의 웅장한 모습
신사를 관람하고 다시 시내로 나와서 히로시마의 명물이라는 노면전차를 탔다.
‘60년대 말까지 서울에 있었던 전차를 연상했으나 지상의 레일위를 달리는 전철과 같았다.
승객들이 출퇴근용으로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두 정거장 정도를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갈 때에 일행 중 한분이 일본인과 대화를 했는 데 나이가 같다고 악수를 하며 좋와했다.
노면전차 히로텐(廣電)의 탑승 경험을 하고 섬에서 늦게 나온 일행과 합류하여 후쿠오카에 가까운 고쿠라로 이동하였다.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중앙고속도로나 새로 뚫린 고속도로처럼 터널이나 산들 사이를 지나고 있고 마을이 있는 곳에는 방음벽이 쳐저 있어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었다. 빨라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산과 들판 마을을 보는 정취는 느낄 수 없었다.
고쿠라 호텔에서 일박하였다.
호텔이 도심에 있어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울산에서 온 학우들과 같이 한잔 하기 위해 이자카야(居酒屋)를 찾아 나섰다.
시내 거리를 구경하다가 음식점과 아자카야가 모여 있는 골목에 들어 갔다.
일본을 여러번 여행한 학우가 가격을 알아보더니 한집으로 들어갔다.
몇 종류의 회가 아주 적은 양씩 나왔다. 기호에 따라 맥주와 정종을 시켜서 마셨다.
나중에 계산을 하는 것을 보니 안주값은 저렴했는 데 기본요금이 있었다.
1인당 2만원씩 냈는 데 처음 예상한 것보다는 비쌌다.
기본요금을 모르고 들어갔지만 바가지를 쓰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이자카야를 들어가본 것은 일본여행에서 색다른 체험이었다.
노면전차 히로텐(廣電) 탑승 체험 - 승객중 일행과 동갑인 분이 있어 친밀감을 나타내었다.
이자카야(居酒屋) 간판 - 마지막날 밤 울산학우들과 함께 숙소에서 가까운 이자카야에 들렸다.
다음 날 아침 뷔페식으로 식사를 하고 키타큐슈 맥주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옛날에 맥주를 생산하던 공장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메이지시대 초기부터 麥酒를 생산하는 기업의 인수 합병과 개편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맥주 생산과정에 대한 자료, 예전의 맥주광고, 포장용기인 캔과 병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을 통해 일본의 맥주 생산 역사가 140년 가까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맥주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여객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키타큐슈 맥주박물관 아카렌가 플레이스 - 원래 생산공장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몄다.
맥주 공장의 역사 설명과 생산초기 광고 모습
이곳 면세점에서 쇼핑 시간이 주어졌다. 통상의 관광은 옵션이 끼어져 있어 원하지도 않는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물건을 구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끼어넣기가 없어서 좋왔다. 문제는 물건을 구입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날 고쿠라 호텔에서 외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도착을 늦게 하여 식사를 한 후 외출을 하니 상가가 일찍 철시를 하여 물건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여행 중에 너무 알뜰한 아내 덕분에(?) 민생고를 해결할 과자 하나 제대로 사지를 못하였다.
면세점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으나 배편으로 귀국하는 일행에게는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급하게 물건을 구입하다 보니 사야 할 물건을 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모두 1만엥을 교환하여 갔는 데 이 돈도 많이 남았다. 아주 알뜰관광(?을 했다고 해야 할까?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다시 카멜라호에 승선하였다.
배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며칠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좋은 생각과 더불어 여행에 대한 아쉬운 생각도 있었다.
배가 하카다 항을 출발하였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갔다.
한참 가다보니 선상공연이 있다고 했다. 몇 명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밴드가 대중가요와 젊은이들이 좋와하는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하였다.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갑판으로 나갔다.
바다를 바라다 보며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푸른 바다 현해탄이지만 약간은 검은 빛으로도 보였다.
올 때처럼 바닷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류의 방향 때문인지 내가 바다를 본 방향 때문인지, 어떤 착시현상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 6시가 되어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4박 5일간의 일본 여행을 마친 것이다.
선상공연 모습 - 젊은이들의 열정에 비해 관객들이 호응은 그리 뜨거운 편이 아니었다.
현해탄 바다 모습 - 카멜라호로 귀국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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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의 짧은 기간의 여행으로 일본을 보고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행을 통하여서 주마간산격으로 본 일본은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된 나라였다.
작은 집에 살고, 작은 차를 타며 알뜰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도시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산에는 나무가 울창하였고 강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피상적으로 본 겉모습이다.
그러나 하기시 무사마을에서 일본 극우의 뿌리를 볼 수 있었다.
또 우리에게는 지탄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 일본에서는 추앙되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전범들의 동상이 서있고 그들의 업적이 현양되고 있는 것을 보며 일본의 역사청산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식민통치를 하며 억압했던 나라로 듣고 배웠다.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이 모이면 왜정시대 이야기와 6.25 사변의 이야기를 하셨다.
보국대로 징용가서 고행한 이야기와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역사시간에는 임진왜란과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하여 배웠다.
초중고교 시절 우리를 가르쳐 주신 나이가 드신 선생님들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분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일제시대의 경헝믈 이야기해 주셨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연세가 드신 교수님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하셨던 분들이었고
당시 젊은 교수님들도 일제때 초등교육이나 중등교육을 받으셨던 분들이었다.
'60년대부터 추진된 경제개발 계획은 일본을 모델로 하였다.
일본에서 자본을 들여 오고, 기술을 들여왔다. 또 일본에서 사양산업화 되는 산업을 이전받기도 하였다.
산업화 초기에는 열심히 일본 따라배우기를 하였지만 , 시간이 가면서 미국 등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하며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발전하여 분야에 따라서는 일본을 앞서거나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산업 발전이나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서 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격차는 많이 좁혀졌고, 국민들이 일본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도 적어졌다.
젊은 세대는 한일양국 모두 서로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많이 줄었다.
문화교류도 활발해지고 있고 일본에서는 한류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극우들은 역사교과서 문제나 독도 문제 등으로 우리를 화나게 한다.
이웃 나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역사교과서 파동이나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이 나오면 일본에 대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현실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그러나 아직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이웃이기도 하다.
이제 한일 양국은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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