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 시절의 단상

학생의 날 행사

우리 동기들은 1962년에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는 4월 1일이 새학년의 시작이었으나 '62년부터는 3월 1일이 새학년의 시작이 되었다.

'61년 12월 추위 속에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었다.

하루는 학과시험을 보고 다음날은 체력장을 했다.

체력장을 보는 날 무척 추웠던 것만 기억난다.

구루증 장애가 있는(꼽추) 키가 아주 작은 여학생이 있었는 이 학생도 예외없이 체력검사를 한 것이 기억난다.

120명을 모집하는 데 150명 정도가 지원해서 30명 가까이가 탈락을 하고 입학을 했다.


매주 월요일에 조회를 했는 데(당시에는 매주 2-3회 조회를 한 것 같다) 한번은 교련조회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중학교니까 교련교과는 없었다.

고등학교와 병설되어있어 고등학교와 같이 조회를 했는 데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앞에 도열해 있었고

고등학교 형의(대대장?) 지휘에 따라 열병과 분열을 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우리 앞을 지나는 것이 열병식이었다.

다음에는 학급별로 행진을 해서 교장선생님의 단상 앞을 지나며 분열을 했다.

이런 행사는 2학년이 되며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1학년때의 학생의 날이었다.

교내에서 학생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행사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교내 행사가 끝나고 시가행진이 있었다.

모두 열을 맞추어 양구 시가지를 행진했다.

많은 사람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보던 것이 기억난다.

문제는 학교에 돌아온 후였다.

행진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이 모두 들어가신 후

고등학교 선배들이 전교생을 모두 운동장에 남게 하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대장이 무어라고 나무란 후 모두를 엎드러 뻗혀를 시켰다.

아마 주먹을 쥐고 땅을 짚고 엎드려 있었던 것같다.

여학생들은 엎드려 뻗혀가 아닌 다른 자세로 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날 날이 무척 추워서 손이 얼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벌을 받고 있는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꽤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난후 모두를 일어나게 하였다.

선배는 무어라 훈시를 한 후 교실로 돌려 보냈다.


유신 다음해인(1973년) 학생의 날이 학교 공식 행사일정에서 사라졌다.

아마 학생들이 일제의 강압에 맞서 항쟁을 했다는 것이 정권에 부담이 되었던 것같다.

학생의 날은 민주화가 된 후에 다시 부활되었다.


오늘이 학생의 날이다.

학생들이 일제에 항거한 자랑스러운 기념일이 정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식기념일에서 폐지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제가 무척 추워 춘천이 -6도까지 내려갔었다.

오늘 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추위에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학생의 날 이야기를 기억을 되살려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았다.


위의 사진은 1957년 고등학교의 학생의 날 행사모습. 열병과 시가행진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