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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설자리를 잃어 가는 우리말

오늘이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을 때마다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구호가 넘쳐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말 사랑에 대한 구호가 난무하지만 이미 영어나 국적불명의 외국어에서 유래한 외래어가 우리 일상용어의 상당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외래어의 우리말 잠식은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으며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말을 거의 몰아내기까지 했다.

필자는 작년 7월부터 인터넷으로 인한 권리침해에 대한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서비스 업종의 상호가 대부분 외래어로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한식당이나 중국음식점 병의원 등의 상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종의 상호가 외래어로 바뀌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분야별로 보면 숙박업소, 결혼 예식장, 아파트 단지의 명칭이 대부분 외래어다.

예전에는 사진관, 미장원 등으로 불리우던 것이 스튜디오니 헤어샵 등으로 바뀌었다.

반려동물 사육의 증가로 이에 대한 서비스 업종들이 생겨나게 되었는 데, 동물병원이나 반려동물에 관련된 서비스 업종의 상호 역시 대부분 외래어다.

의류 취급을 하는 점포나 여성과 관련된 서비스 업종의 경우 거의 대부분 외래어로 된 상호를 내걸고 있다.

의류나 전자제품, 가구 등의 상표명은 거의 외래어다.


거리를 걸으며 좌우에 있는 점포의 간판을 보면 우리말로 된 간판을 찾기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의류상가의 경우 아예 간판이 뜻을 알 수 없는 알파벳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외래어로 상호나 기업의 명칭을 바꾸는 것은 중소 서비스업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도 이를 선도하고 있다.

세계화로 어디에서든지 통용될 수 있는 명칭으로 바꾼다는 것이 명분일 것이다.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농협이 NH로, 한국통신이 KT로, 국민은행이 KB로, 철도공사가 코레일로 바뀌는 등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명칭도

외래어나 알파벳으로 표기된 약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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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체의 명칭이나 서비스 업종의 상호 등 호칭만이 외래어에 점령당한 것이 아니다.

일상용어에도 외래어는 깊숙히 들어와 있다.

정부가 외래 사용의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컨텐츠라는 말을 즐겨 썼고,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표현을 했다.

인프라, 시너지, 블루오션 등 외래어 사용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동사와 조사 등만이 우리말이고 문장에 사용되는 명사는 전부가 외래어 표현인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우리의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도 이미 외래어의 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적당한 우리말이 없기 때문에 부득불 외래어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탈북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분들이 적응하는 데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외래어의 남용으로 인한 언어소통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말은 이미 심하게 외래어에 잠식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제때에는 일본어에, 해방후부터는 영어에 꾸준히 잠식되어 온 것이 같은 민족인 남과 북이 언어소통에 애로가 있을 정도로 심화된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할 것이 많다.

국민의 복리는 무시하고 핵개발과 전쟁준비에만 집중한다거나, 이념에 사로잡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고수하려다가 경제가 낙후되어 국민들의 생활이 궁핍하다거나 인권의 열악 등 비판할 사항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미국과 적대관계 등 이유야 어떻든 외래어를 쓰지 않으려는 정책은 참고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 중국의 경우도 가능한 외래어를 쓰지 않고 한자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어문정책에서 본받을 점은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한글날도 예년처럼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행사가 줄을 이었지만 아마 일과성으로 끝나고 당장 내일부터 외래어의 확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갖고 있다.

또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들이 있다. 한자를 조합하면 새로 만들어지는 제품이나 개념의 어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문맥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이미 사용하기 시작한지 2000년이 넘었고,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인 이상 한자를 우리말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우리말로 된 새로운 어휘의 생성과 한자의 풍부한 조어력을 이용한 학술용어 등의 번역과 新造語를 창안하는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언어정책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글과 우리말 사랑은 내가 먼저 솔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