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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기억을 살리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

망각은 사람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 아니라도 시간이 가면 학습하거나 경험한 기억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망각은 의미가 적거나 불필요한 것을 제거시켜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애써 학습한 것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함으로 필요할 때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역기능도 있다.

만약 사람이 학습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면서 겪는 분노와 슬픔 등의 경험이 망각되지 않는다면 감정의 폭발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학습을 하는 데 있어서 망각은 부정적인 효과를 주지만 삶의 과정에서 망각은 꼭 필요한 기능이다.


실연을 한 젊은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어떻게 될까?

살면서 부대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갈등에서 오는 감정이 그대로 간직된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답은 명백하다. 쌓인 스트레스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실패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흔히 해주는 충고가 잊어버리라는 것과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다.

이는 망각이 한 개인을 억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옮겨 주며 궁극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은 한 개인이 경험하고 학습한 것을 머물게 하는 기능도 있지만 개인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도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겪은 수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경험과 정서는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공유되어 기억되고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기억은 공동체의 지도층들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데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다.

가장 적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에서 가족구성원들이 겪은 시련의 기억은 그 가족들을 결속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공동체의 기억은 집단의 지도층이 공동체의 정서를 조작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데 이용될 수 있다.


'70년대 6.25 상기 행사의 모습


6.25 사변이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한국전쟁은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겪은 수난이다.

이것을 남과 북의 통치자들은 통치에 이용하여 왔다.

전쟁으로 인해 받은 인적 물적 피해와 개인이나 가족이 겪은 고통은 원인 제공을 한 상대에 대하여 분노와 적대감을 품게 한다.

이것을 통치자들은 활용해 온 것이다.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국민들을 결속시키고 갈등을 봉합하며 통치자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기억은 잊혀져 가고, 개인이 느끼는 감정도 희미해지게 된다.

직접 겪은 당사자도 그러한데 직접 겪지 못한 다음 세대에게는 부모세대의 생생한 경험이 역사의 일부로 느껴질 뿐이다.

통치자들은 전쟁을 직접 겪지 못한 세대에게 공동체의 역사적 수난을 개별적 경험의 정서로 전환시키려 노력하여 왔다.

관련 교과 수업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을 알리려 하였고, 계기교육이나 군중집회를 통해 기억을 상기시키고 유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퇴장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경험은 희미해지게 되고 통치자들이 아무리 기억을 유지시키려 해도 경험은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되게 될 뿐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년이 되어 간다.

전쟁을 직접 겪은 몸으로 수난을 기억하는 세대는 서서히 무대 뒤로 퇴장하고 있고, 그 자식 세대에 이어 손자의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직접 경험한 세대의 자식세대는 부모세대의 경험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기억을 이어가지만 손자세대에 이르면 역사적

사건과 경험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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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가 직접 겪은 역사적 사건에도 한국전쟁의 사례와 같은 일들이 적용되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五共 집권층에게 광주는 잊고 싶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하고 나서 광주사태(당시의 용어)는 구시대에서 새시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로 잊어 버리자고 했다.

피의 진압후 참가 주도자에 대한 체포와 재판, 반란 가담자로 유죄판결과 구속이 이어졌다.

사태 진압후 五共 정부는 광주사태가 반란이고 진압은 정당하였다는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활동을 했다.

일체의 공식적인 기념행사가 없었다.

그러나 五共의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추진 세력은 광주를 상기시키려고 하였다.

6월 항쟁 이후 광주의 참혹상을 담은 기록과 영상물이 유포되어 다수 국민들이 광주의 실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반란으로 평가하는 세력은 존재하고 있고 극단적인 부류는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을 하였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광주를 상기시키려는 세력과 망각시키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한 미군의 존재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미국은 평화의 수호자고 남북의 대립구도와 북한의 침략 야욕이 존재하는 한 미군의 주둔은 불가피하며 반미는 곧 종북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극우,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비판을 하며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데 대한 정서적 거부감은 있지만 남북대립 구도와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 때문에 주한미군의 존재가 어느 시점까지는 불가피하다는 중도적 견해,

주한 미군의 존재가 자주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2002년 주한미군의 훈련과정에서 길을 걷고 있던 효순과 미선이라는 두 여중생이 장갑차 사고로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미군측의 책임회피와 성의없는 대응으로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발생했고 반미감정이 확산되어 갔다.

이에 당황한 미군 측은 사과를 하고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유감을 표명했지만 재판과정에서 불평등한 주한 미군의 지위협정(SOFA)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재판결과가 사고유발 장병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격이 되어 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확산시켰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반미활동을 하는 측에서는 두 여학생이 희생된 날을 기념하여 왔는 데 이는 기억을 유지시키고 상기시키는 것이 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까지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 세월호 사건도 그렇다.

선박의 침몰사고가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것은 선박관리 시스템에 대한 문제, 재난 구조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 등이 국가 시스템의 문제며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단순한 교통사고를 대통령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진영의 대결로 비화되고 있다.

집권세력은 세월호 사건을 잊고 싶어 한다.

반대 세력은 이를 계속 상기시키고 기억시켜 집권세력의 책임을 극대화시키려 하고 있다.

사고의 책임을 물으려는 측과 회피하려는 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사고의 진상이 밝혀져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을 피하려고 안깐힘을 쓰고 있다.

집권층에 대한 비판 세력은 사고의 책임을 집권층에게 지워 집권세력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유언비어와 검증되지 않은 설들이 떠돌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기억을 살리려는 측과 지우려는 측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가 강제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뺐고 우리나라에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하였다.

중일전쟁과 2차대전이 일어나자 우리 국민들을 강제 동원하였고 물자를 수탈하였다.

징병과 징용으로 많은 인력을 강제 동원하여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또한 위안부 동원이라는 반인륜적인 처사를 행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과오를 은폐하고 망각이라는 기제(機制)를 이용하여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반대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의 역사를 부각시키려는 측에서는 매주 위안부 관련 항의 집회를 하는 등 민족 수난의 경험과

기억을 상기시키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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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험은 개인의 경험이든 공동체의 경험이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잊혀져 가게 된다.

이 경험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 유리한 경우 기억이 잊혀지지 않게 상기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반대로 사건에 대한 기억이 불리하면 이를 잊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기억을 상기시켜 유지시키려는 측과 망각시키려는 측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