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린시절(초중학교 시절) 어른들이 "왜정시대가 더 좋왔다. 자유당 시절이 더 좋왔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농촌에서 겨울에는 마실을 간다고 이웃집에 가서 모여든 어른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름에는 밤 중에 어느집 마당이나 마을 공터에 모여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나는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어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당시 어른들의 공통된 화제는 피난과 전투 이야기였다.
간혹 일제에 의해 징병이나 징용으로 중국이나 남양군도에 끌려갔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왜정시대가 좋왔다. 자유당때가 좋왔다."라는 말도 이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에는 왜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은 나쁘다고 배웠는 데 그 시대가 좋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이 독재를 하다가 4.19로 쫒겨났는 데 왜 자유당 시절이 좋왔다고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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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다수가 박정희 시대에 대하여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는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의 딸아 아니었다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도 독립된지 250년이 다 되어서야 첫번째 여성대통령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데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첫 여성대통령을 배출하기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노년층이 왜 박정희 대통령과 그 시대에 대해 강한 향수를 갖는가를 생각하여 보았다.
지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많은 부정적인 행적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그 시대를 그리워 할까?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60대는 박대통령 시절에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했던 세대다.
아이러니 하게 이들은 유신반대를 하였고, 6월 항쟁때는 넥타이 부대로 독재타도를 외치기도 하였다.
70대는 어린 시절 6.25를 겪었고, 80대 이상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수난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60대 이상의 노년층도 살아온 시대는 달라도 박정희 시대에 대한 공통적인 향수를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모두를 공감시키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각 사람마다 견해는 다르겠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본다.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억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어린시절의 친구는 평생 친구가 된다.
만나면 격의없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어린시절의 친구들이다.
동창들이나 어린시절의 동네 형이나 동생들을 만나면 지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경쟁을 하며 갈등을 일으키며 싸우며 컸지만 장성하여 만나면 어린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젊은 시절 풋사랑이 실패를 하여 상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어도 나이가 든 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당시 어른들이 "왜정시대가 더 좋왔다. 자유당 시대가 더 좋왔다"라는 말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생각하여 보면 당시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어린시절 40대 이상의 어른들은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분들이었다.
당시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전시와 같이 삶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일제말기의 억압과 통제경제로 인한 삶의 어려움과 해방후 혼란기와 전쟁과 전후의 삶의 어려움이 전전의 일제 강점기 시대를
상대적으로 삶이 풍요했던 시기로 착시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수 있을 것이다.
전후 이승만 정권 시대는 전후 복구를 하며 삶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편법을 써서 경제적 이득을 얻기가 상대적으로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5.16이 나고 경제발전을 시행하며 저곡가 저임금 정책을 실시하여 농촌의 삶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을 수가 있다.
전후 들어오던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었고, 군사정권과 미국과의 갈등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의 공급이 제한되어 식량난을 겪는 등 '60년대 초
기본적인 삶의 어려움이 "왜정시대가 좋왔다. 자유당 시대가 좋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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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의 노년층이 기억하는 유년기-청년기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60세 이상이라도 연령에 따라 경험한 삶은 차이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80대 이상은 일제 강점기 말기의 강압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부분 의식주의 기초생활이 겨우 생존할 정도의 한계상황 속에서 삶을 살았다.
학교에서도 우리말을 못쓰고 일어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등의 억압 속에서 살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서 혼란된 시기를 보내다가 한국전쟁을 겪었다.
80대 중반 이상은 군에 입대하여 전투를 하며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을 겪었다.
휴전후 전후복구와 경제건설에 땀을 흘렸고, 자식에게 빈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개미처럼 일을 하였다.
5.16당시 80대는 20대중반-30대 중반의 연령이었다.
그야말로 일벌처럼 일하여 고도성장을 이끌며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하고, 자식들에게는 적어도 자신들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시켰다.
또한 자신들이 이룬 경제적 성과를 누리며 대부분 자신들의 어린시절보다는 풍요한 생활을 한 세대이기도 하다.
70대 연령층은 일제 강점기 말기나 해방 직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해방후의 극심한 혼란과 빈곤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한국전쟁을 겪었다.
어린시절 피난을 갔고, 피난지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열악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녔고, 극심한 빈곤을 겪었다.
5.16이 일어났을 때는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거나 혜택받은 일부는 중고교나 내학에 재학중이었고, 다수는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거나 일부는 도시로 나와 도시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70대는 5.16후 시작된 경제개발에 직접 참여하여 경제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거나 중동노동자로 해외에 나가 달러를 벌어들여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어린시절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경제발전의 열매를 향유하여 보다 풍족한 소비생활을 누렸다.
60대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출생하였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도 없는 세대다.
유년기를 가난하게 보냈지만 부모세대의 희생으로 보다 나은 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고도성장기였기 때문에 대부분 큰 고생이 없이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60대 이상 노년층의 공통적인 특징은 어린시절이나 젊은시절에 물질적 궁핍으로 빈곤을 경험하였지만
5.16후 산업화 초기나 고도성장기에 주역으로 참여하여 생활향상과 물질적 풍요를 누린 세대라로 할 수 있다.
또한 4.19와 군사정권하에서의 민주화 투쟁, 6월 항쟁때 넥타이 부대로 참가하여 민주화를 이룬 세대기도 하다.
물론 개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노력하면 그 성과를 누릴 수가 있었고,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세대였다.
군사정권과 유신정권 오공이라는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는 시기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비판이나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은 한
거주이전의 자유와 직업선택, 경제활동 등 소시민의 삶은 보장되었다.
물론, 부당노동행위나 자본에 의한 착취, 저임금이나 저곡가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수탈, 정치적 억압 등으로 인한 자유의 제한 등
의 그림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노년층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제발전을 일구어 내었으며 민주화를 이루어 국가의 격을 높힌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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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지금의 노년층의 다수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콩크리트 지지층이 되었을까?
경제발전으로 인한 경제규모의 확대는 해외교역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고 세계화라는 조류에 편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국제간 경쟁의 심화와 우르과이 라운드, FTA 등으로 인한 국내 취약산업의 국제경쟁에 노출은 직종에 따라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의 몰락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해고를 발생시켰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한 제조업에서의 공장자동화와 사무자동화는 일자리의 대량감축으로 이어졌다.
고용구조의 변화는 취업을 어렵게 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강요는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취업의 어려움을 초래하였고, 젊은이들 중에는 어려운 취업문을 통과할 수 없어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미취업은 결혼을 어렵게 하고, 이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이태백, 오륙도, 삼팔선, 명태, 황태, 문송해요, 삼포세대, 오포세대, 헬조선 등 관련된 신조어가 쏟아지기 시작한지도 20년이 되어 간다.
운좋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높은 주택가격은 결혼의 장벽이 되고 있다.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어 상승의 사다리를 탄 노년층은 자식세대의 힘듦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노년층은 자식들의 교육과 결혼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자금까지 대어주느라 노후대비를 제대로 못한채 노년기를 맞이하였다.
국민연금 등 노후 보장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준비되지 못한 노년기를
맞히 한 노년층은 극빈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어려움은 과거 좋왔던 시절(어려운 현실에 비해)에 대한 향수를 초래하게 된다.
묻지마 범행으로 대표되는 치안의 불안과 정치적 갈등과 이념으로 인한 남남갈등은 오히려 절대권력을 가진 강력한 정부를 원하게 한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아 어려운 생활을 하거나, 준비가 부족한 채로 노후를 맞고 있다.
60대 이상 노년층은 자신들의 어려움에 덧붙여 평생을 투자한 자식세대가 구조조정으로 해고 당하고, 취업난으로 취업도 못하고, 결혼 적령기를 지나도 결혼도 못하는 어려움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급격한 기술의 진보와 고용구조의 변화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들게 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노년층 세대에서는 열심히 일을 하면 어느 정도 이룰 수가 있었고, 상승의 사다리에 오를 수가 있었다.
자식세대에서는 양극화로 상승의 사다리는 치워졌고, 경쟁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이 노년층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하고 경제발전의 시대를 이끈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앞으로 지금의 시대가 더 좋왔다라는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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