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 하루의 삶의 기록들

1966년(고2 시절)의 어느 날(2)

50년전인 1966년은 필자가 고2때다.

신문사설을 공부하던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끄적거린 잡문들이(일부는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로) 남아 있다.

연필로 쓴 것들은 희미해져서 읽기 어려운 문장들이 많고, 영어로 쓴 것들은 단어와 문법의 오류로 난해한(?) 문장이 되어 내가 쓴 문장인데도 의미를 통하기 어려운 형태로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

지금 읽어보면 그때 나의 생각이 미성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대로 쓰기에는 문장이 조잡한 것도 있고,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어 최대한 원문을 살리며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반세기전 고교생이 생각하던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


1966년 6월 6일

  현충일이다.

조국을 위하여 싸우시다 영현들의 뜻을 이어 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부정하나 선전을 위해 민족주의를 내건다.

선전을 위해 민족주의를 내거는 것은 늑대가 염소를 속이려고 기름을 바른 발과 같다. 속지 않겠다.

빨리 공부를 해야지. 국어, 영어, 수학, 화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미래의 내 아내는 어떤 여자일까?" 궁금하여 진다.


1966년 7월 22일

  오늘밤 어머니와 방학 중 여행문제로 언쟁을 했다.

돈이 없다는 것만 내세우시지 학생인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밤낮 돈이 없다는 것만 강조하는지?

돈이 없다는 것이 열등감이 차오르게 한다.

정말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1966년 7월 24일(비)

  22일부터 어머니하고 다투기만 하였다. 돈 300원이 어머니와의 관계를 헝클어 놓는다.

돈이 없이는 가정의 평화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에 대한 희망을 잃으신 것 같다.

양구에 가겠다고 어머니의 속을 긁었으니....

300원, 300원이 문제다.

어머니는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처럼, 모든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다.

돈 300원 때문에 양구에 다녀오려던 계획이 망쳐졌다.

성적표가 왔다. 1학년말보다 떨어졌다.

2학기때는 더 성적을 올리자. 죽도록 노력하자. 책에 미치자.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 모습이 부끄럽다.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아픈 심정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한 세대후 나 역시 물질의 부족으로 자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부모가 되고 말았다)


1966년 7월 31일(흐림)

  7월 한달도 무료하게 지나갔다. 한달동안 한 것이 무엇인가?

학기말 고사도 잘 치르지 못하고... 이제 8월이 시작이다.

앞으로 18개월간이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명각이 말대로 만일 대학에 떨어지는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

앞으로 18개월이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절호의 기회로 알고 공부하여 S대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나의 희망인 고전문학과 한문을 공부하여 한국의 권위자가 되자. 


(위의 목표는 대입낙방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하게 되었으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시 재도전할 능력은 되지 않았고  서울의 사립대로 진학하기에는 경제적 뒷받침이 부족하였고, 교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범대학이 아닌 당시 유행을 따라 이공계통으로 진학을 하였고, 과학교사가 되어 37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였다. 2003년 한자 1급 시험에 합격하고, 한문과 부전공 연수를 받아 한문 교사 부전공 자격증을 취득한 것과 2005년 방송대 국문과에 편입하여 졸업한 것이 그때의 꿈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었다)


1966년 8월 7일

  돈아 없다는 것이 나를 서럽게 한다. 100원 때문에 어머니가 짜증을 내셨다.

효섭이와 같이 학원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

(당시 학교 인근에 EGI라는 영수학원이 있었는 데 강사들을 새로 영입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여 호기심이 발동되어 수강하였으나 수강료의 부담도 있고 학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두달정도 수강을 한 후 수강을 중단하였음)


1966년 12월 12일

   이성이란 무엇인가?  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생각할까?

왜 피조물은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의문이다.

미래의 내 아내에 대해 상상해 본다. 그녀는 누구일까? 

  수업이 끝나고 박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과외수업비를 언제까지 납부하겠느냐고 물으셨다.

선생님께 돈문제로 심려를 끼쳐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명각이네 집에 갔다. 명각이가 많이 아팠다.

그는 빨리 걷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내가 책가방을 들어다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1966년 12월 15일

  "현대 국어의 특질과 국어순화 문제"라는 논설문을 써보았다.

오늘밤 일찍 잤는 데 바람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명각이가 "만일 네가 남보다 일찍 잔다면 너는 남에게 그만큼 낙오가 되고 만다"

즉 일찍 자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명각이는 서울사대 물리교육과를 한 과목을 빼고 전과목을 A학점을 취득하고 졸업하여 서울사대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으나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러 간 후 얼마간 연락이 이어지다가 연락이 두절된 보고 싶은 친구임)


1966년 12월 16일(맑음)

  3교시후 영실이가 재춘양구학우회 모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방과후에 회합을 알리는 안내장을 프린트해 놓았다고 했다.

이것을 전하기 위해 임현간, 신명철, 나, 영실이 넷이서 조낭자네 집에를 갔으나 이사를 해서 없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겠다. 일찍 자지 않겠다. 나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니까.


1966년 12월 27일

  1966년을 보내고 1967년을 맞이하게 된다.

다는 한해동안 무엇을 했는가?   나는 1년을 허송했다.

성공을 위해서, 직업을 얻기 위해서 좋은 대학(S대)에 진학해야 한다.

보다 행복한 생활, 보다 풍요한 생활을 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