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은 나에게 의미가 깊은 해다.
처음으로 직장을 가져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는 데 묵은 노트 한권이 눈에 띄었다.
구석 깊은 곳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눈에 띄지 않았었다.
노트를 펴든 나는 노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 기록들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1974년 교사발령을 받을 때부터 다음해 2월까지의 기록인데 일기 형식으로 쓰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더러는 편지 초안 등 긴 문장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짤막한 메모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글들을 읽으며 나는 내 기억이 그동안 많이 망각되고 변질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상당히 중요하게 인식되는 일도 당시에는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었고, 지금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다.
어떤 일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유치하여 내 자신에게 부끄럽고,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당시에는 꽤 심각한 일이었던 것들도 있었다.
한때 짝사랑했다가 호되게 거절당한 여자를 완전히 잊지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여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접근하려는 생각을 떠올렸으나 거부당할까 고심하는 것들도 적혀 있었다.
이 기록들은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은 베이붐 세대가 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어 교사와 학교를 수용할 시설이 부족하였다.
학생들은 한 학급에 70명씩 배정된 콩나물 교실에 수용되었다.
서울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교사가 부족하여 학교현장에서는 파행적인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대학원에 다니던 나는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원 공부를 접고 교사로 취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전공과목이 농화학이라는 과목이라 강원도에서는 채용고사가 없었고 경상북도에서 모집을 하였기 때문에 경북에 응시하였다.
4명을 선발하는 데 40여명이 응시했다.
다행히 1등으로 합격하여 발령이 날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3월과 4월이 다가도 소식이 없었다.
경북도교육위원회에(지금의 도교육청) 전화를 하니 당분간 발령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낙담하고 있던 차에 당시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시던 사촌형님이 강원도의 모집요강을 가지고 오셨다.
당시 강원도에서는 교사가 워낙 부족해서 수시로 교사를 모집하여 충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필자의 전공과목이 화학에 포함되어 있었다.
도교육위원회에 원서를 내고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데 전보가 왔다.
수학과로 임용 상담을 할 예정이니 도교육위원회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교육위원회에 가니 김한기 장학사라는 분이 나를 면접하였다.
수학과 교사가 모자라니 수학을 가르칠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화학은 발령에 시간이 걸리지만 수학을 원하면 즉시 발령을 내주겠다고 했다.
학교에 다닐 때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과외를 한 경험도 있어서 수학과로 임용 희망을 했다.
김한기 장학사님은 중3 수학책을 내주면서 한시간 분량의 지도안을 작성하라고 했다.
한 시간 수업안을 작성하였더니 김장학사는 나를 칭찬하면서 고등학교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학기중이라 고등학교는 좀 힘들 것 같고 중학교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강원도 시군 지도를 보여주며 교사가 공석인 학교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했다.
양구가 춘천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모교에 자리가 있기에 양구중학교를 선택하였다.
지금 수십대 일의 경쟁을 통과해야 하는 교사 임용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
1974년 5월 29일
강원도 교육위원회에 갔더니 양구중학교로 발령이 날 것이라고 했다.
채용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서 오라고 했다.
몇년간을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가?
그러나 신체검사가 문제였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병원에서 신체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결과가 나왔다. 신체검사에 합격을 한 것이다.
5월 30일
도교육위원회에 갔더니 발령장을 주며 당장 오늘 학교에 부임하라고 했다.
입지 않던 양복을 입고 양구로 떠났다. 감개무량하였다.
꼭 9년전 고교 진학을 위해 춘천으로 가며 이런 맹세를 했었다.
"다시는 가난하지 않겠다. 내 뜻을 이루어 양구로 돌아오겠다."
오늘이 있게 하여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양구교육청에 들려 학교배정을 받았다.
양구중학교, 모교다. 1965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9년만에 교사가 되어 다시 모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감회가 깊었다.
학교에 가서 부임 인사를 하였다.
양순석 교감선생님은 직접 나를 가르치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반의 사회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다.
무척 반가워 하셨다.
5월 31일
첫출근이다. 숙소는 당분간 구암리 이모댁으로 정했다.
옛날 나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힘들었던 시절을 보냈던 곳. 이곳에 다시 왔다.
내가 걸으려고 꿈꾸었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더 큰 꿈을 이루지 못한 후회도 회한도 없다.
정년으로 물러나는 날까지 이 길을 걷겠다.
조회시간에 교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촌형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외워서 인사말을 했다.
운동장에서 전체조회 시간에 부임 인사를 했다.
담임은 하지 않고, 2학년 3개 학급과 1학년 2개 학급 모두 22시간의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2학년 첫 수업을 들어 갔다.
3월 1일자로 전임자가 이동하고 교사를 충원하지 못해 3월초부터 4월중순까지 교생이 수업을 하다가 가고 5월말까지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진도를 나가지 못한 반이었다.
내 소개를 하고 진도파악을 하였다.
6월 2일(일)
자수 간첩의 반공강연이 있다고 해서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교장선생님이 현장에 가라고 해서 교회에 출석도 하지 못하고 학교운동장에서 개최되는 반공강연에 갔다.
발령을 받고 첫번째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연사의 강연내용은 진부하였다.
이런 일에 공휴일날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은근히 반감이 생겼다.
6월 17일
첫 월급을 탔다. 총액 47,800원 중 공제액을 제하고 수령한 금액이 44,100원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벅찬 감사를 드렸다. 그돈을 세보고 또 세어보았다.
하숙비 7,500원을 제외하고 쓸 돈을 배분하였다. 처음으로 두 남동생에게 줄 용돈 2,500원도 따로 구분하여 놓았다.
6월 22일(토)
월급봉투를 들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에게 월급 봉투를 드렸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다.
난생 처음으로 아들노릇을, 형노릇을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는 1500원을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는 1000원을 용돈으로 주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때이던 '70년 5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졸지에 어린 5남매를 떠맡으신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교직에서 퇴직을 하셨다가 복직하신지 5년도 못되어 돌아가셨기 때문에 연금에 해당되지도 않았고 퇴직금도 얼마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드럼통을 실은 리야카를 끌고 다니시며 시내 이집 저집에서 잔반(음식 찌꺼기)을 모아다가 돼지를 기르셨다.
그 덕분에 나와 두 남동생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6월 23일(일)
교회 목사님을 모셔다가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목사님이 축도하여 주셨는 데 기도는 잊을 수가 없다.
믿음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했다. 주일학교 예배에서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했다. 교회학교가 늘 발전하기를 기도한다.
큰댁에 들렸다가 저녁때 춘천에서 출발했다.
6월 25일
6.25 행사. CCC에서 같이 활동했던 여중에서 근무하는 장경란 선생을 행사장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동창인 김주신과 최상열도 만났다.
북한의 남침 야욕을 분쇄하자는 내용의 행사를 하였다.
<남면 도촌리까지 6.25 상기 행군도 있었다. 왕복 10km가 안되는 거리였지만 더운 날씨에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여학생들 중에는
행군 중간에 주저앉는 애들도 있었다. 지친 학생들은 차량이 싣고 갔다. 국토 정중앙이라는 도촌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리 마산 마을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녔던 나는 중간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들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었다>
< >의 내용은 지금 보충하여 넣은 내용임.
'하루 하루의 삶의 기록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심은 목사님께, 저녁은 스님께 접대받은 날 (0) | 2017.12.30 |
---|---|
1966년(고2 시절)의 어느 날(2) (0) | 2016.08.08 |
일기(2000. 12. 30 - 2001.1.5) (0) | 2013.09.11 |
1966년(고2 시절)의 어느 날 (0) | 2013.09.01 |
2000. 5. 25 - 28(제자의 목사 안수식, 교육평가원 출장) (0) | 2013.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