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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장, 시평, 논문

입시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마라!

교육에 관한한 정답은 없다.

경쟁입시가 문제가 많아 평준화가 도입되었다.

평준화는 과열경쟁 입시의 해소 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나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는 문제를 가져 왔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교육의 잣대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용하는 것이 문제다.

평준화로 소위 명문고교가 사라져서 학교차로 인한 우월감과 열등감이 사라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친척 동생들 중 가장 수준이 낮은 학교에 다니던 녀석은 모자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교문에 들어갈 때 꺼내 쓰고 들어갔다. 창피해서 모자를 쓰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준화 결과 하향평준화의 문제 등 부작용이 나타났으나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평준화 정책을 계층간의 대립구도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시대가 가고 성적이 가정의 경제력에 의해 좌우되는 지금 소위 명문고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의 배경이 좋은 아이들이고 비명문으로 밀리는 아이들은 하위계층의 자녀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하위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책입안자들은 평준화를 해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평준화제도를 보완한다고 외국어고교, 과학고교 등을 설립하여 신흥명문학교를 만들었다.

또, 자립형 사립고교를 만든다고 한다.

일산, 분당 등 신도시에 명문학교가 있어 인구분산의 효과를 가져왔던 것은 사실인데 이곳이 평준화되자 다시

강남지역으로 학생들이 역류하는 현상이 일어나자 경기북부에 제2의 경기과학고교를 신설하고 자립형 고교를 신설하여 강남 유입을 억제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자립형 사립고교와 제2 경기 과학고, 외국어고가 신설되면 이 학교들과 서현고, 안양고, 백석고, 부천고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주거정책에 교육을 이용하려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 중소도시를 평준화하면 틀림없이 일부 학생들은 서울로 전입을 할 것이다.

계층간의 위화감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고 기계적인 평등 만을 외치는 동안 조기 유학생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사실 비평준화시절에는 어느 수준 이하의 학교에서는 대학입학 대신 다른 진로를 모색하여 대입 경쟁률의 완화에도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평준화로 모든 인문계 고교생들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게 되었고, 탈락자들이 반발을 우려한 시도교육청에서는 인문계 고교의 정원을 늘려 하위권학생도 희망만 하면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수 있어(일부 예외인 지역도 있었으나) 결국 대학입시 희망자의 폭증을 초래하였다.

 

위정자들은 대학졸업자에 대한 취업 전망과 인력 수요에 대한 예측도 없이 탈락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배우지 못한 부모들이 자식을 대학까지 교육시키려는 열망을 수용하고 계층 상승의 허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무분별한 대학정원 확대 정책을 써서 드디어 희망하는 모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렇다고 하여 대학 입시 경쟁이 없어지고, 사교육이 사라졌는가?

평준화가 된 후 이질집단이 한 학급에서 수업하게 되고 공교육의 질이 떨어지자 학원으로 학원으로 몰리고 있으며 이러한 사교육비의 증대와 학생들의 혹사는 조기해외 유학이라는 교육 탈출을 초래하여 몇만명의 초중고 단계의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연간 10억불이 넘는 외화를 유출하면서 수많은 이산가족을 낳고 있다.

필자는 평준화의 해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준화가 모든 폐해의 근원도 아니며, 평준화가 신성불가침하게 사수되어야 할 절대적인 교육정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현대의 사회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언제까지나 경쟁을 회피할 수는 없다.

평준화는 경쟁을 해소한다는 명분하에 기계적인 평등만을 강조할 뿐, 수월성의 교육에는 취약성을 드러낸 제도이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다른 데 어떻게 억지로 평등하게 할 수 있는가?

 

종교가 다른 학교에 배정되었을 때 학생과 부모의 신앙적 갈등을 생각하여 보았는가?

신자들에게는 종교문제야 말로 최고의 문제인 것이다.

목사의 아들이 불교 학교에 배정되고, 대처승의 아들이 기독교 학교에 배정된 사례도 있다.

부득이 평준화를 지속하여야 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또, 코 앞에 학교를 두고 버스를 두번씩 갈아타고 한시간을 넘게 길에서 소모하며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들이 과연 학교 배정에 만족을 할까?

거주지 인근 학교에 배정을 하면 명문학교 주변의 집값이 오르고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거리 배정된 학교를 3년간 참고 다니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고교 입시문제를 계층간의 갈등 해소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가 아닌 순수한 교육적 관점에서 해결을 모색하여 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위의 글은 2002년 10월 22일 한겨레 토론방에 올려서 '오늘의 논객'에 선정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