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쇼인, 메이지유신,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의사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경내를 둘러보고 하기성터로 이동하였다.
성을 쌓은 저변의 돌들은 사각형 모양인데 한변이 2m는 됨직한 엄청난 큰돌을 다듬은 것이었다.
상부를 이루는 돌들도 엄청나게 큰 돌들이어서 우리나라 성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성 둘레에는 해자까지 팠었다고 하니 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었는지, 성을 쌓는 일꾼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갔다.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동상 - 모리는 임진왜란때 왜군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인물이다. 그가 하기성을 소재지로 하는 죠슈번을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
하기성터 - 견고한 성벽과 해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기 도자기 자료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의 도자기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모리테루모토에게 붙들려온 조선 도공 이작광, 이경형제에 의해 시작되었고 성하(城下)의 마스모토촌에 가마를 세워 도자기의 명소가 된 곳이라고 한다.
도자기 자료관에서는 생산된 도자기를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가마터를 제대로 못보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走馬看山격으로 본 것이 유감이다.
하기 성터와 도자기 자료실을 관람하고 성하마을(城下町)인 부케야시키(武士屋敷)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막부시대에는 죠슈(長州)라고 했던 번청소재지다. 죠슈번은 모리가 도쿠가와의 반대편인 서군에 섰기 때문에 영지를 삭감당한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의 지역으로 막부 초기 권력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나 막부 말기에는 사쯔마 번과 같이 세력이 커진 웅번(雄藩)이 되어 막부를 타도한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된다.
이곳 무사 마을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또오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조선의 초대 총독을 지낸 데리우찌 마사케, 야마카타 아리토모, 다나카 기이찌 군 장성을 거쳐 수상을 지낸 인물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사의 주역이 되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하였다.
이 지역의 인맥은 지금도 계속 이어져 전후 일본의 수상을 지낸 기시와 지금 수상인 아베를 배출하는 등 모두 8명의 수상과 많은 정치인들을 배출한 지역이 되었다.
이는 요시다 쇼인의 松下村塾의 제자들과 그 후예로 이어지는 인맥들인데 대부분 우리나라와는 악연을 가진 인물들이다.
마을의 집들은 일본의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었다.
이들 전통가옥의 이곳저곳에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일본 근대사를 써내려간 인물들의 生家니 공부한 곳이니 하는 안내판들이 붙어 있었다.
무사 마을의 거리 - 이곳에 메이지 유신 주역들의 생가와 구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하기시가 옛 죠슈(長州)번의 소재지였음을 말해주는 표지판
일본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가 전통 거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본도 세금은 큰 선거 쟁점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침략을 기획하고 추진한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 일본 육군의 산파이며 후일에 수상을 지냈고 원로 정치인으로 권력을 누린 야마카타 아리토모, 미국과 가쓰라 테프트 조약을 맺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초석을 다졌고 수상을 지낸 가쓰라 다로, 유명한 의사였던 아오키 슈스케(靑木周弼) 등의 옛집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또, 메이지 유신 삼걸의 한명인 기도 다카요시, 아베 총리가 존경한다는 과격파 유신 지사의 대표격으로 거병을 하여 막부 타도의 선봉에 섰던 다카스키 신사쿠, 존왕양이론의 중심 인물로 요시다 쇼인의 매부가 되는 구사카 겐즈이의 생가가 이 마을에 있으며 요시다 쇼인의 출생지와 역사관도 이 마을에 있다.
다카키 신사쿠와 이또오 히로부미가 함께 공부했다는 집도 이곳에 있다.
무사들이 거주하던 성아래 마을에서 일본 메이지 유신과 근대 역사의 주인공들이 태어났거나 자란 것이다.
이들은 분명 막부의 봉건체제를 타파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하고 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를 하였다.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지 30년도 못되어 청일전쟁에 승리함으로 아시아의 강국으로 우뚝서게 되었고, 40년도 못되어 러일전쟁에 이김으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국이 되었다.
또 1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이 조차하였던 산동성의 청도 지역과 남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고, 전쟁 특수의 덕분으로 일본은 세계열강의 하나가 되었다.
근대 국가의 체제를 갖춘지 반세기도 못되어 강대국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가 가장 존경하여 이름에 '晉'자를 넣었을 정도로 존경한다는 과격파 유신 지사로 막부 타도에 앞장을 섰던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晉作)의 생가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晉作)의 동상
메이지 유신 삼걸의 한명인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의 출생지
이또 히로부미와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晉作)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곳 - 두 사람이 일본인들에게 추앙받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인물들을 존경하는 아베의 사상적 뿌리와 역사관을 알 수 있다.
아베총리의 외조부가 되는 기시 수상의 공적 사항 - 기시는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 장관을 지낸 전범이었으나 사면되어
일본 수상을 역임했다.
하기시의 무사 마을의 약도 -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출생지와 생활했던 구옥이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위업을 일구어낸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과 그 후예들은 일본으로 보면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弱肉强食의 논리에 철저히 몰입되어 있었다. 스승인 요시다 쇼인의 가르침대로 일본의 번영을 위해 북해도를 개척하면서 아이누족을 억압하여 사라지게 하였고, 오끼나와를 강제로 병합하였다. 大東亞 共榮圈을 부르짖으며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침략하여 수탈하였으며, 동남아시아로 세력을 뻗치다가 구미열강과 부딪히며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대륙을 전운에 휩싸이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동아시아 인민들을 전쟁 피해자로 만들었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땅마저 미군기의 무차별 공습과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탄 투하로 잿더미가 되고 수많은 백성들이 전장에서 공습 현장에서, 원자탄이 폭발한 곳에서 죽어나갔다. 이는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이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이웃을 발판 삼아 일본의 번영만을 추구한 業報였던 것이다.
이들이 비록 일본에서는 추앙을 받지만 우리와는 악연을 가진 인물들이라 마을을 돌아보는 마음은 착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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