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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제 30회 홍천군 서석면 면민체육대회를 참관하고 (2007년)

제 30회 서석면민 체육대회 및 동학운동 기념제가 개최되었다.

아침 8시 30분 동학군으로 분장한 학생들이 운동장까지 행진을 하였다.

격문이 적힌 깃발을 든 학생들과 죽창을 든 학생들이 동학군 복장을 하고 행진을 하였는 데 옷고름이나 대님을 맬 줄 몰라서 복장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경찰차가 차량의 흐름을 통제하여 주었다.

30분 가까이 걸어 가서 홍천강과 다른 개울이 합치는 하천부지에 운동장이 있었다.

면단위의 체육시설로는 잘 갖추어진 시설이었다.

잔디가 파랗게 잘 자라는 운동장과 스탠드 시설도 있었다. 실내 게이트 볼 장이 있었고, 테니스 코트 등도 있었다.

화장실 등 부대 시설도 잘되어 있었다.

 

14개리가 출전하였는 데 리별로 유니폼을 갖추어 입고 운동장 한 편에서 선수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노인들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피부색과 얼굴 모습이 다른 외국출신 주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풍암 1리에서 만들어 온 차에서는 성화가 타오르고 있었고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기원의 프랑카트도 보였다.

전국 체전에서와 같은 음악이 울리며 선수단(마을 주민들)이 입장하였다.

4500명의 면민들의 절반은 참석한 듯 14개 리가 입장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으로 동학군 복장을 한 중학교 학생들이 입장을 하였다.

사열대 위에서는 면장과 군수 등이 계속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입장이 끝나고 개회사가 있은 후 내빈의 소개가 있었다.

군과 면지역의 기관장과 의원들, 내빈들에 대한 소개가 지루하게 있었다.

면장과 군수 등의 축사가 있었다. 노년층이 많은지라 개회선언 이후에는 잔디 운동장에 앉아서 순서가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글짓기, 시쓰기, 그림 그리기 등의 문화행사에 참가하였다.

 

심형기 직전 면장이 서석에서의 동학운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800명 가까운 동학군이 관군과의 전투에서 희생되었고, 민가로 숨어 들어간 동학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도 많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동학군들의 주장은 당시 봉건제도를 타파하는 민주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과부의 재혼 허가, 반상제도의 차별 철폐 등이 주된 주장이었다고 한다.

동학혁명은 좌절되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그후 많은 부분이 실천되었다.

 

운동장에서는 체육경기가 진행되었다.

족구와 고리 던져 걸기, 줄다리기, 계주, 단체 줄넘기 등이 진행되었다.

단체 줄넘기 선수 중에는 외국인 출신의 젊은 주부의 모습도 보였다.

마을 사람들과 같이 줄넘기를 하는 모습에서 이역 만리에서 시집와서 마을의 일원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족구장에는 그래도 젊은 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팀별로 4명의 선수들이 열심히 공을 차 네트위로 넘기고 있었다.

가끔 너무 힘을 가해 공이 라인 밖으로 벗어나면 상대방 팀의 응원단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옛날 궁중에서 즐겼다는 투호를 모방한 고리 던져 걸기는 노년층을 위한 경기였는 데 생각처럼 고리가 목표물에 잘 걸리지 않았다. 상당한 숙련이 필요하여 보이는 경기였다.

줄다리기가 가장 재미있는 경기였다. 지형의 구조상 남쪽의 줄을 선택한 측이 주로 이겼는 데, 남쪽을 택하고도 진 마을은 방향을 바꾸었을 때 모두 패하였다. 남쪽은 줄의 뒤쪽이 낮으면서 앞쪽이 약간 높은 지형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응원을 하였는 데 구령에 맞추어 열심히 당겼다.

이긴 측에서는 함성이 터지고.....

계주 역시 재미있는 경기였는 데 선수가 넘어져서 뒷순위로 밀리기도 하고, 뒤쳐져 달리다가 앞의 선수를 추월하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재미있는 곳은 운동장 안에서가 아닌 바깥이었다.

마을별로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불판을 가져다 놓고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하고, 가마솥을 걸어놓고 소머리 국밥 등을 말아서 먹기도 하였다. 떡, 수박, 음료수 등 음식이 넘쳐났다. 허리가 굽은 노인들도, 외국에서 시집와서 사는 새댁들도 모두 어울리고 있었다.

문화행사를 하는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 모두 진지하였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쓰고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밑그림을 그리거나, 밑그림을 다 그린 학생들은 열심히 색을 칠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1반과 2반으로 팀을 나누어 축구경기가 있었다.

홍종호선생이 심판을 맡았고, 부심까지 있었다. 2반의 일방적인 승리...

축구시합이 끝나고 1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마을의 경기를 관람하도록 하였다.

어린이들의 뛰노는 모습은 운동장에 활기를 띄게 하였다.

자유롭게 된 어린이들이 서로 쫒고 쫒기며 장난을 하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의 손에 매달려 따라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은 아주 창의력이 무궁하다. 또래들끼리 어울리면 모르는 사이라도 곧 동무가 되고, 끊임없이 놀이를 창안해 가며 즐겁게 논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장사꾼이 없을 수 없다. 칼가는 숫돌을 파는 장사꾼도 있고, 뽑기 장사도 있었다.

실물처럼 생긴 뱀을 뽑은 어린이는 플라스틱 뱀을 흔들며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고 달려가고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파는 트럭 앞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고....

간간이 경품 추첨이 있었다. 43대가 되는 자전거가 경품으로 나와 있었고, 농촌답게 동력 분무기가 경품으로 나와 있었다.

세탁기, 김치 냉장고, 진공청소기 등은 꽤 큰 경품이었고...

이들 경품의 대부분은 출향 인사들이 출연한 것이라고 하였다.

경품을 발표하는 현장의 흑판 앞에는 혹시나를 기대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나도 자전거의 행운을 바랬으나 끝내 행운은 나를 비껴가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노래 자랑이 있었고, 초청 가수들의 공연도 있었다고 한다.

서석 면민 체육대회는 성황리에 진행이 되고 끝났다.

인구 5000명도 안되는 면단위 행사로는 큰 행사였다.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서 행사가 알차게 진행되었다.

체육시설도 군단위 시설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면민 체육대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단결력과 애향심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