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기록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미 삼국시대인 고구려와 백제에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신라도 역사서가 있었을 것이다.
진위 논쟁이 있지만 환단고기는 고조선에 대한 역사서다.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서는 실록을 기록하였다.
고려왕조의 실록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리고 실록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편찬한 고려사를 통해서만 그 내용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다행히 여러부를 만들어 분산시켜 놓았기 때문에 전주에 보관했던 실록이 남아있어 조선왕조 500년의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가치가 큰 것은 당대의 왕이 읽을 수가 없어 사관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당대의 왕이 승하한 후 실록청을 만들고 사관들이 기록한 사초를 토대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전왕의 실록을 기록하였다.
왕조가 교체된 경우는 새로 건국된 왕조가 전왕조의 역사를 정리하여 기록하여 주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역사기록도 수많은 전란때문에 거의 대부분 불타거나 일실되어 버려 고려시대까지의 역사기록은 아주 간략한 후대의 기록과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를 통해 재구성하여 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기록에 충실한 우리의 전통도 현대에 들어서면서 빛이 바래고 있다.
제 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은 집권과정과 통치 중의 많은 자료를 고의적으로 파기시켰다.
이는 오공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그 이전의 유신정권과 5공 이후의 정권들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은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이는 우리 후손들이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없게 하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집권자나 개인이나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을 해야 하는 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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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 하면 사관들이 기록한 왕조의 역사만을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배운 역사가 왕조를 중심으로 한 정치사였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는 왕이나 정치가 등 유명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 없이 살다 가서 세월따라 잊혀져서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은 이땅에 살다가 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간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들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범부들이 만든 역사는 그 사람의 기억속에 머물다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사라져 버린다.
더욱이 아이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몰입하면서 명절때 가족들이 모여도 따로 놀며 어른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현 세대에서는 한 가정의 가족사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최근 평범한 개인들의 생활사를 채록하여 기록하는 작업이 성행하고 있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등이 경로담을 찾아 다니며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채록하는 분들이 있다.
민요나 민담 풍속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목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나이든 할머니들이 남편을 징용보내고, 6.25때 전쟁에 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용이나 전쟁에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자식 하나만을 의지하여 살아온 생애, 그 할머니의 성장 이야기, 결혼 이야기, 자식을 낳아 기르며 가르친 이야기가 하나의 역사인 것이다. 이런 평범한 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하여 민초들의 삶의 역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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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친구 중에 수원이라는 친구가 있다.
필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아니지만 친구의 친구로 장성한 후에 만나 친구가 된 사이다.
그는 양구 초등학교와 성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평생 운전과 관련된 일을 하였다.
특별하게 교육을 많이 받았다거나 공직이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 또래의 한명이다.
그러나 수원이는 다른 사람과 다른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그는 어린 시절을 사진 속의 장면과 같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나고 수복된 후의 양구의 모습을 사진을 찍듯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그가 '47년생이고 그가 기억하는 양구의 모습이 '54년부터라고 한다면 휴전후 수복되고 난 몇년간의 양구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다.
그는 어디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었고, 우물이 있었고, 어떤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어소, 누구누구가 살았다는 것을 현재의 일처럼 재현해낸다.
나도 어린 시절에 대해 상당한 기억을 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지만 수원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몇년전 수차례에 걸쳐 군의원이나 행정당국자에게 수원이의 증언을 채록하여 둘 것을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의견을 듣기만 하고 시행하지는 않았다.
며칠 전 인천에 사는 친구가 수원이가 많이 아프다고 전화를 했다.
마침 어제 양구의 친구들이 수원이의 문병을 간다고 해서 춘천의 나를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해서 양구의 친구들 몇명과 같이 수원이를 문병하였다.
그는 폐암으로 인해 인천 성모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 호흡기를 떼고 말을 하는 데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긴 이야기를 듣기는 힘든 실정이었다.
이제 침대를 떠나 자력으로 이동을 하기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독한 치료약을 써서인지 그의 비상한 기억력도 바래져서 가끔은 주제와 어긋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에게서 양구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음을 아쉬워 하였다.
이제 양구의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역사의 증인의 한명이 무대 뒤로 퇴장하려고 한다.
그가 건강했을 때 양구의 그가 기억하는 양구의 모습에 대한 증언을 기록하여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어느 철학자가 지구를 커다란 무대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지구라는 무대에서 연극이 공연되는 데 100년이 지나면 배우가 모두 바뀐다고....
한 세대가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러나 앞에서 살다 간 세대는 그 세대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자랑수러운 역사든, 수치스러운 역사든 진실한 삶의 모습을 후대에 남겨주어 다음 세대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여야 한다.
앞선 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토대로 하여 다음 세대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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