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들어 첫 동기들 모임에 나갔다.
춘천에 사는 동창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인데 20명 정도가 모여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나이를 먹어가며 회귀 본능이 작용하기도 하고 소속감을 통해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기도 하여 모임은 점점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모였을 때 이야기 주제는 건강과 농사 두가지다.
오늘 모임은 겨울철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 옆에 앉은 친구들이 농사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건강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지난 해에도 마라톤 풀코스를 뛴 정구는 대룡산 등산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 가까이 걸어서 산밑에까지 간 다음 산 정상을 넘었다는 이야기다.
안마산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가까운 산에만 올라도 숨이 차는 나는 부러울 뿐이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퇴직한 친구가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전에도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 데 다행히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야기 주제는 혈압관리로 전환되었다.
내 부근에 앉은 친구들은 거의가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은 몇년전부터, 몇달전부터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 친구는 어느 지방의 축제에 갔다가 술을 한잔 하고 혈압을 쟀는 데 최고혈압이 200가까이 나온 적이 있어서 그후부터 혈압약을
복용하며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등산과 운동에 대한 이야기와 어느 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는 것도 우리 또래 모임의 특징이다.
동창들 모임에서 자식들 이야기는 좀처럼 오가지 않는다.
혹 결혼을 시키는 자녀가 있는 경우 이를 알리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자식들 이야기는 금기사항의 하나다.
청년 실업이 만연하고 이태백이라는 말이 유행되는 때라 30세가 넘어도 취업을 못하고 있거나, 40이 가까운데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랑이 되기도 하고, 아직 취업을 못한 자식을 둔 친구에게는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자식들의 근황을 묻는 것도 삼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는 음담패설로 분위기를 돋우는 경우도 있었고, 폭음을 한 것이 무용담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건전(?)해졌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도 쑥들어가서 화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대립되고 나중에는 흥분하여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대방의 견해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삼가는 편이다.
물론 지역 정서와 우리 세대의 정서와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보수적이지만 소수의 진보와 그보다는 많은 중도가 있기 때문에 의견이 대립될 수 있어 정치이야기는 주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국사교과서 문제가 나왔다.
그런데 우리 자리에서는 의외로 교학사 교과서가 외면을 받은 것이 내용부실 때문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보수적인 입장에서 기술했기 때문에 진보진영의 공격을 받아 채택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소수 의견이었다. 위안부들이 일본군을 따라다녔다는 말과 쌀을 수탈당한 것을 수출하였다는 등의 기술 오류가 보수적인 정서가 우세한 우리들의 모임에서도 교학사 교과서가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한겨레,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도 오랫만에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화제는 군대 이야기로 바뀌었다.
군복무를 할 때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고, 헌병 출신이 누구고, 수경사에서 누가 근무했고 하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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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친구들 사이에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나이를 따라 변해간다.
학교 이야기, 연애하는 이야기, 군대 이야기, 취직하는 이야기에서 아이들 크는 이야기, 애들 학교 보내는 이야기로 화제는 바뀌어 갔다. 직장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고, 직장 상사를 안주삼아 씹기도 하던 시절도 지나갔다.
관리자가 된 녀석들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요즈음 젊은 후배들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이야기하던 것도 사라졌다.
어느새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퇴직후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건강관리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우리 동기들 모임도, 공적인 동창들 모임이던 사적인 소그룹 친목 모임이든 연례적으로 모인다면 거의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지난 해 말로 중등 교사출신의 친목 모임인 사공회 회장 임기 2년을 마치고 다음 순번의 친구가 회장과 총무를 이어맡게 되었다.
다음 번 총무를 맡게 된 친구가 바빠서 맡기가 어렵다고 사양을 했다.
다른 친구들이 한번만 하면 되는 데 뒤로 빼느냐고 힐난을 했다.
회원이 20명 가까이 되니 다음번에 다시 임원을 맡을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회비로 모인 돈이 꽤 되는 데 이 돈을 단체로 해외관광을 가는 데 보태쓰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갈 수 없는 회원도 있음으로
손대지 않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내가 마지막 총무를 하는 친구가 그 돈을 모두 가지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었다.
해마다 한번씩 모이는 중학교 동기들 모임에서도 "우리가 앞으로 열번은 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2000년엔가 신문에 일본에 있는 용산고등학교(용산고등학교는 일제때 주로 일본인들이 다니던 학교였음) 동창회의 공식적 활동이 중단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해방이 되고 5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후배가 충원되지 않는 동창회라 회원들이 연로하여져서 더 이상 동창회 기능을 할 수 없어 공식적인 동창회 모임이 해체된 것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시간차는 있지만 이땅에 태어난 모두는 어느날엔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우리들 친구들 모임도 세월 따라 늙어 가고 하나 둘씩 모임에 나오는 숫자가 줄어갈 것이다.
친구들아 우리 건강할 때 더 자주 만나자.
2012년 춘천고등학교 개교 88주년 기념 체육대회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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