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종교인에게 과세를 하는 문제가 다시 논의가 되고 있다. 종교인의 과세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종교인의 과세를 주장하는 측은 주로 기독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나 비판의식을 가진 측이었다. 교계는 이에 대해 납세를 회피하는 명분없는 답변을 하기에 급급했고, 그러는 사이에 교회는 세금도 내지 않는 단체라는 인식이 굳어져 갔다.
목회자 과세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활동을 하는 김상구씨였다.. 김씨는 반기련의 내분으로 반기련을 탈퇴한 후(몇년 후 다시 연대) 종비련(종교비판 시민연대)을 창립하고 첫 사업으로 주로 개신교회 목사들을 과녘으로 한 종교인 납세 운동을 벌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후 김씨는 종비련을 이탈하여 종추련을 창립하고 다시 종교법인 과세 활동을 벌리며 기독교의 외곽을 때리는 활동을 했고 종추련을 종감련(종교권력 감시 시민연대)으로 개칭한 후도 종교인과 종교법인에 과세를 하자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당국자(재경부 장관)까지 종교인 과세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를 과녘으로 한 것인데 교회 언론회에서 정당한 과세 대상의 선정과 과세 기준이 마련되면 세금을 내겠다고 하자 오히려 이를 추진하려는 측에서 당황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종교인 과세를 하려면 기독교만이 아닌 역술인이나 무속인, 스님까지 과세를 해야 한다. 물론, 과세를 하려면 각 교회나 사찰 등의 운영경비에 대한 투명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회는 형식적이나 제한적이라도 재정을 공개하고 있어(극히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공개에 대한 부담이 적지만 사찰이나 다른 종교인들의 경우 재정 공개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게 된다. 종교인 과세로 더 큰 부담을 질 곳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된다. 아마 막상 과세를 하겠다고 정부에서 추진을 한다면 일부 사리분별을 못하는 교계 인사들은 드러내놓고 반대를 해서 비난을 뒤집어 쓸 것이고 현명한 불교인이나 다른 종교인들은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을 동원해서 드러나지 않게 종교인 과세를 막는 활동을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필자가 서두에 종교인 과세문제를 장황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몇억대의 연봉과 수십억대의 퇴직위로금 문제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수의 목회자들 뒤에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생활비로 고통을 당하는 수없이 많은 목회자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
필자가 중등 교사로 재직한 37년 중 절반 이상을 농촌지역에서 근무했다. 필자가 시골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역 목회자들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가까이에서 알 수 있었다. '79년에 중학교 1학년의 남학생인 U군이 영양실조로 수업시간 중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U의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교회 전도사였다(늦게 목회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40대의 나이인데도 전도사였음) 교회에서 지급하는 생활비로는 식생활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해 U군이 2학년때 필자가 담임을 하게 되었다. U군은 반에서 1등을 하였는데 후에 감신대를 졸업하고 순복음 교단의 목사가 되어 필립핀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지금은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데 우연히 필자가 목사 안수식에 참가하였다가 U가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을 보게 되었고, 막 목사 안수를 받은 제자의 큰 절을 제일 먼저 받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당시 시골에서는 역사가 오랜 면소재지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한 실정이었다.
필자가 시내로 전출을 온 후로 어느 목사의 딸이 전학을 오게 되었는 데 두달 가량을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전학을 오게 되었다. 사연인즉 전임지에서 사임을 한 후 후임 사역지가 정해지지를 않아 생활이 정착되지를 못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 이 서류를 본 교감선생님은 목사의 딸이니 무조건 받아주자고 하여 전입을 받은 적이 있다.
10여년전의 일이다. 승복을 입은 한 여자 스님이 학교를 방문해서 담임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그 스님은 소양댐 상류에 있는 작은 절의 주지스님(일인 암자)인데 신도 수가 적어 생활이 안되어 딸의 학비 감면을 호소하러 왔다고 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재직했던 시골학교에서 급식 보조 대상자를 선정할 때였다. 지역에는 여러 개의 교회가 있었는 데 면소재지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작은 교회였다. 한 곳은 교회를 폐쇄하여 폐교처럼 빈 건물만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연하게 지역 교회 목회자들의 자녀들이 모두 지역 중고교에 재학하게 되었다. 이들 중 세 교회 목회자들의 자녀가 급식보조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3년전의 일인데 급식 보조 대상자의 선정은 건강보험료 납부 실적을 기준으로 하였는 데 이를 근거로 역산을 하면 월 소득이 100만원에도 못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소득을 가지고 신청을 하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되어 급식비와 수업료의 면제와 건강보험료의 면제나 감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하지 못하고있다. 목회자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직업이 있거나 부업을 하거나 다른 가족들의 생활비 보조가 있기 전에는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는 열악한 경제적 환경에 처하게 된다. ======================================================================
농촌의 경우는 그래도 조금은 낫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하고 있고(건물의 낡은 것 여부를 떠나) 대부분 채소라도 가꿀 수 있는 적은 터밭이 딸려 있는 경우가 많고, 농촌 교회니 도와야 한다는 인식들이 있어 후원을 받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나, 도시의 개척교회(필자는 개척교회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관행상 개척교회로 표기)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90년대 이후에 설립된 교회의 대부분이 양적 성장이 정체가 되어 있다. 물론 일부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다. 도시 상가나 지하에 그것도 이미 이웃에 교회가 있는 곳에서 교회를 시작한 분들에게 사역은 고된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의 지방회에도 어려운 교회들이 많다고 한다.
신도시에서 사역하고 있는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 출신의 한 목회자는 우리 교회 출신 목회자 초청 설교에 와서 경기도 신도시 지역에서 몇년을 거의 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10년이 다되어서 자립교회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방 국립 대학이지만 전체 수석을 하여 대통령상(당시 국립 종합대학의 1등 졸업자는 대통령상을 수상)울 받았고 과의 1회 졸업생이라 교수들이 대학원 진학을 권하는 데도(1회가 모과 교수가 될 확률은 대단히 높음) 신학대학원을 진학하여 목회자가 되었는 데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면 가졌던 좌절감은 얼마나 컸을까?
개척교회 목회자가 양적 성장이 없고 자립할 수도 없는 기간이 장기화될 때 겪는 좌절감은 엄청나게 크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여 전도를 하여 성장을 시키면 큰 교회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도시 상가 교회나 지하 교회 등은 우리나라에 불어닥치고 있는 반기독교 풍조의 일차 희생자가 되어 전도하기가 어렵고, 작은 교단의 경우 노회나 지방회 등의 보조도 거의 없고, 큰 교단의 경우도 후원이 미흡한 경우가 많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배우자가 전문적인 직업이 있어 생계에 지장이 없는 경우는 나태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까지도 있다고 한다.
농촌교회나 개척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개인의 능력부족보다는 우리나라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함이 크다. 믿음이 좋다고 인정을 받는 많은 젊은이들이나 평신도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충성을 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신학교로 몰려 가고 있다. 신학교육기관에서는 기관의 유지를 위한 재정 확보를 위해 많은 학생들을 모집하게 되고 일부 교단에서는 교회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학생들을 모집하여 신학생이 과다 배출되며, 신학 졸업자들 거의 대부분이 목회를 선택하려고 하는 데 사역할 교회는 부족하다. 부득이 교회를 신설해야 하는 데 이미 포화상태인 곳에서 교회를 시작하려니 다른 교회 옆에서, 심지어는 다른 교회와 같은 건물에서 교회를 설립 운영해야 하는 데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미 교회가 밀집된 곳에서 새롭게 교회를 신설하는 것을 개척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 교회를 무한정 후원하는 것이 타당할까에 대한 의문도 있을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떠나서 개척교회의 목회자의 편에서 생각을 한다면 장기간 발전이 없는 교회(그것도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에서 목회자가 될 때 가졌던 비젼의 실현은 멀기만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처지에서 겪는 좌절감과 아픔은 얼마나 클까?
교계의 지도자들은 자기 교단의 교회수가 늘어가는 것을 기뻐하고 만족하기에 앞서 자신의 후배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이것을 개인의 능력의 차이에서만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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