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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단상

맛의 기억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다르다.

어떤 음식을 좋와한다는 것은 그 음식이 맛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이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아닌 한 좋와하는 음식에 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좋와하는 음식이나 맛이 어려서 경험한 맛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가서 살아도 김치 맛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특정 지역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좋와하는 것은 이러한 공통의 경험이 밑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좋와하는 음식이 있고 맛이 있다.

필자가 좋와하는 음식의 경우 어려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거나 특별히 맛이 있었다고 기억되는 음식이다.

대부분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다.

장떡, 돌나물 김치, 달래 간장, 질경이 볶음, 콩탕 등은 내가 좋와하는 음식이다.

어머니가 별세하고 안 계시는 지금 돌나물 김치를 제외한 위의 대부분의 음식은 추억 속에 존재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만갑이라는 탈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북한 음식들이 소개되는 데 평양 냉면, 두부 밥, 인조 고기 등을 탈북자들이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어려서 각인된 음식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가 잊지 못하는 맛이 또 있다.

이것은 주식에 딸린 부식이 아닌 기호식품이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 한국 전쟁 후 어려운 시대에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하던 시대였다.

내가 1학년때 두 여동생이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1주일 이상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였는 다른 약을 썼는지는 몰라도 아버지와 같이 약에 쓸 산토끼 똥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던 것이 생각난다.

다행히 두 동생은 회복이 되었다.

아마 맨 아래 여동생이 더 심하게 앓았거나 음식을 잘 먹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과자를 사다가 맨 아래 여동생에게만 먹이셨다.

나와 밑의 여동생은 맨 아래 여동생이 과자를 먹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모두를 먹이기에는 생활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학교에서 소풍을 갔다.

어머니는 김밥과 과자를 싸주셨다.

김밥은 지금처럼 말아서 작게 썰은 것이 아니고 김 한장에 들기름과 깨를 넣어 비빈 밥을 말은 것이었다.

소시지처럼 긴 김밥을 입으로 베어 먹었다.

또 하나는 처음 보는 과자였다.

워낙 특이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67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하다.

직사각형의 갑 속에 들어있는 과자류였다.

판지에는 밤이 드라난 밤송이 그림이 있었다.

은박지로 싼 포장지를 뜯으니 직사각형의 묵 모양의 내용물이 나왔다.

양갱(요깡)이라는 처음 보는 과자류라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입을 베어 물었다. 그때의 환상적인 맛이란? 나는 이때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한다.

 

필자의 유소년기에는 과자와 같은 기호식품으로 군것질을 할 여유가 없었다.

군것질을 하지 않아 돈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 되던 시대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양갱의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은 양갱을 사서 먹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랑스런 손녀 딸들에게 주려고 양갱을 사니 막내 딸이 반대를 한다.

애들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두 세대에 이르는 시간의 변화는 맛의 기호도 바꾼 모양이다.

나는 지금도 어려서 먹었던 과자인 셈베이, 오꼬시(당시 불렸던 일본어 기원 과자 명칭), 사탕 등이 좋다.

 

얼마 전 스승의 날이었다.

예전에 춘여중에 재직할 때 담임을 했던 제자가 스승의 날 선물을 보내주었다.

여러 종류의 양갱을 모은 셋트였다.

잊을 수 없는 환상의 맛의 기억이 있는 그 과자였다.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닌 셋트로.....

보내 준 제자에게 고마운 마음은 당연한 것이고, 내 기호까지 배려를 해준 것이 너무 기뻤다.

맛을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때 느꼈던 그 맛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때 느꼈던 환상의 맛이 7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을 넘어 다시 느껴진 것이다.

 

맛의 기억은 평생 지속된다.

어려서 자주 먹었던 음식은 평생 잊지를 못한다.

특정한 국가, 특정한 지역,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먹었던 음식의 기억은 평생을 간다.

그리고 김치와 같이 특정 음식은 민족이나 국가 공동체를 결속시켜주는 매게체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