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동물들 대부분은 학습을 한다.
물론 본능적으로 타고난 행동도 있지만 후천적인 학습을 통하여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원숭이 등과 같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은 집단내에서 학습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미를 통해 배운다.
어미들은 새끼들의 생존에 필요한 기능(적을 식별하는 것, 먹이 등에 관한)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여 준다.
사람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가장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기 위한 학습을 해야 한다.
교육기관을 통한 계획된 학습과 소속 공동체 및 접촉하는 외부 세계로부터 학습하는 정형화되지 않은 학습이 있지만
한 인간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모든 포유류 동물이 그러하든 인간도 태어난 후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유아기에는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부모는 자식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하고 보살피며 아이의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말과 행동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배우는 방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모방학습이다.
부모를 따라 하면서, 부모의 흉내를 내면서 배우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 데, 아이들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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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아장아장 걷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생후 15-16개월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아직 말로 충분한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하루는 나를 부엌으로 들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부엌에 들어 가는 연탄집게를 들으라고 손짓을 한다.
연탄집게를 들으나 연탄광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연탄광으로 따라가니 연탄을 집게로 집으라고 지시한다.
연탄집게로 연탄을 집고 나니 다시 부엌으로 가라고 손짓을 한다.
부엌으로 가니 아궁이 앞에 연탄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엄마 등에 업혀서 연탄을 가는 것을 눈여겨 보았던 것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하게 한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엄마를 졸라 성경과 찬송가 책을 들고 교회로 향했다.
교회 계단을 쉬어가며 올라가서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당시 교회는 의자가 없고 마루바닥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를 드렸는 데
아들녀석은 방석을 깔고 앉아서 책을 펴놓고 몸을 흔들어 가며 어른들이 찬송을 부르는 흉내를 내다가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아멘하면서 기도를 끝내고 엄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말로는 아침을 먹고 나면 매일같이 하는 행동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내가 면도를 하는 것을 보고 면도하는 흉내를 내다가 입술을 베어 피가났다.
그뒤 다시는 면도하는 흉내를 내지 않았다. 학습을 통해 면도기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큰딸이 다섯살 때의 일이다.
세살 밑에 동생이 있었는 데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할 때라 엄마가 아이에게 배변훈련을 시켰다.
아기의 기저귀를 벗기고 쉬를 시켰는 데 아기가 소변을 보면 아내는 "기저귀 벌었다. 기저귀 벌었다"라고 하며
기뻐했다.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퇴근을 하면서 보니 큰딸이 주인집 또래 여자아이와 같이 놀고 있었다.
그런데 곰인형을 아기에게 소변을 보게 하는 자세로 잡고 "쉬- 쉬-"하더니 큰 소리로
"기저귀 벌었다. 기저귀 벌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큰손녀가 우리집에 왔을 때였다.
동그란 손거울을 보더니 엄마가 화장을 하는 흉내를 내었다.
화장품을 찍어서 얼굴에 바르고 문지르고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있었다.
둘째 손녀가 컴퓨터 의자에 앉혀 달라고 하였다.
컴퓨터 의자에 앉더니 능숙하게 마우스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흉내를 내었다.
엄마가 컴퓨터를 하는 것을 보고 기억하였다가 재현을 하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말을 배우고 행동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하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보면서
부모를 따라서 배운다.
애들 보는 데서는 냉수도 못마신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행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애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자식들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성년이 되었다.
자식들의 어린시절이 까마득한 옛날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들의 어린시절의 행동들을 회상하면 큰 행복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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