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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이야기

아들의 어린시절의 일화

거리에서 어린 아이를 보면 모두가 예쁘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귀해진 탓도 있겠지만 나이가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명의 자식들을 낳고 길렀던 것이 까마득하게 오랜 일처럼 생각이 든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는 시기가 되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떠오를 때가 많다.

물론 후회되는 일, 아쉽게 생각되는 일도 많다.

그러나 회상할 추억이 있다는 것은 노년기에 들어선 삶을 풍성하게 하여준다.


어제가 아들의 생일이었다.

아들녀석의 나이도 불혹을 지나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연령이 되었다.

아들의 유년기를 강원도 횡성 시골에서 보냈다.

면소재지이기는 하지만 면사무소와 농협 등 공공기관과 식당과 가게 몇개가 있는 정도의 한적한 곳이었다.

퇴근 후 일과가 끝나면 달리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집에는 TV도 없었다. 전기불이 들어온다는 것 외에는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였다.

두살에서 일곱살이 될 때까지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아들 녀석에게는 안집 누나와 형들과 동네 또래들이 친구였고

마을 주변의 산과 들이 놀이터였을 것이다.

우리가 5년간 세들어 살았던 안집의 착한 삼남매는 아들을 친동생처럼 돌보며 함께 놀아주었다.

낮에는 또래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놀았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시청할 TV도 없으니 흥미를 끌만한 것이 책밖에 없었다.


어린시절 교과서외에는 책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어 애들에게는 가능한 많은 책을 사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책 수준에서 발달단계에 따라 동화책으로 어린이용 도서로 발전하여 갔다.

내가 퇴근을 하면 아들 녀석은 책을 들고 무릎에 와 앉았다.

처음에는 그림책에 있는 동물이나 사물을 물으면 손가락으로 짚으며 답을 하다가

말을 배우면서 그림의  명칭을 답하였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토끼와 거북이, 호랑이와 곶감' 등 전래동화와 이솝이야기 등의 우화에서 시작하여 차츰 복잡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로 발전하여 나갔다.

책을 단순히 읽어 주는 것이 아닌 묻고 답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 책을 아이콘을 보고 골라서 들고 왔다.

이야기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어떤 때는 귀챦기도 하여 그만하자고 하면 "누구네 아빠는 옛날 이야기 백개를 해주어고 입이 아파도 얘기를 계속해 준다"는 식으로 말하며 졸라댔다.

추상적 사고가 가능한 단계에서는 책에 없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하여 졸라대는 이야기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아 해줄 수가 없다고 하면 녀석은 줄거리를 이야기하며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녀석이 서너살 무렵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하루종일 들판으로 냇가로 다니며 놀아 피곤한 녀석은 자다가 요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다.

나와 애들 엄마는 당연히 누가 지도를 그렸느냐고 추궁을 했다.

그러자 아들녀석은 '스컹크 지미'가 한 일이라고 했다.

 '스컹크 지미'는 동화책에 나오는 스컹크의 이름이었다.

배가 고파서 닭장에 들어가 계란을 훔쳐먹은 스컹크 지미가 화가 난 양계장 주인의 추격을 받게 되었고

고목나무 등걸 밑으로 들어가 숨었으나 사냥개가 감시를 하고 총을 든 주인이 땅을 파기 시작하자

'스컹크 지미'의 친구들이 힘을 합쳐 땅을 파서 지미를 구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녀석은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이 한 행위를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대로 말하면 혼날 것아니

이를 모면하고자 했을 것이다.

누구에겐가 책임을 전가해야 할 것인데 아빠 엄마에게 미룰 수는 없을 것이고

임기응변으로 동화 속의 주인공인 '스컹크 지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지를(?) 발휘하였을 것이다.


몇년이 흘러서 동생을 보았다. 어린 동생이 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내가 큰딸에게 현장을 가르키며 추궁을 하자 큰딸은 "오빠가, 오빠가.."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아들 녀석을 가르켰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내가 언제 그랬니?" 하면서 자기 방어를 했다.

딸의 입장에서는 오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가장 만만했을 것이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해의 일일 것이다.

어느날 무엇인가 잘못한 일이 있어 나에게 혼나게 되었다.

나는 녀석의 종아리를 때리려고 회초리를 들었다. 

종아리를 때리려고 회초리를 드는 순간 큰딸이 회초리를 잡아채었다.

오빠를 때리지 못하게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회초리를 빼앗아서 형을 집행(?) 하려 하였는 데 큰딸은 회초리를 잡고 울면서 놓지를 않았다.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면 더 크게 울면서 결사적으로 회초리를 웅켜 잡았다.

오빠를 편드는 큰딸의 만류를 뿌리치고 회초리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아들 녀석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선에서 혼내주는 것을 끝냈다.

아빠에게 매를 맞게 된 녀석은 겁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이 결사적으로(?) 말려주는 덕분에 회초리를 면하게 되었다.

아들 녀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오빠 살려주어서 고맙다. 나 이다음에 장가가면 과자 많이 사줄께"하면서 엉엉 울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큰딸도 올해 마흔살이 되었으니 세월이 빠름을 실감한다.


큰손녀가 다섯살 때 우리집에 와서 몇달을 지낸 적이 있었다.

나는 아들의 어린시절에 그러하였듯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손녀딸은 내가 오기만 하면 책을 들고 와서 무릎에 앉았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문답식 이야기는 교육적 효과가 컸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동화책을 보고 이야기를 들었던 아이들은 어휘력과 표현력이 우수하였다.


그밖에도 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망각의 심연 속으로 침잠(沈潛)하여 들어가 버리고 기억나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時期 時期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겠지만 또한 즐거운 일들도 있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구약성경 전도서에서)

그렇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을 성취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은 그때에는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행복햇던 순간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