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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1964학년도 중학교 졸업앨범, 그후

필자가 중학교에 입학한 것은 1962년이다.

당시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대부분 6.25때 1-3세였던 우리 동기들은 전쟁 중 유아사망율이 높아 숫자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율의 덕을 보았다.

적은 수만 탈락되고 대부분이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

1965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양구를 떠났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때 학교에 같이 다녔던 동기들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대부분 은퇴후의 삶을 살고 있다.

20여년전부터 해마다 여름에 동기들이 모여 어린 시절의 우정을 나누고 있다. 


1964년 당시 학교의 모습, 왼편 교사가 중학교, 오른 편 교사에 고등학교와 교무실 등이 있었다. 목조건물이었고, 나무로 된 마루에 판자에 철망을 씌우고 시멘트를 붙여 외벽을 만든 건물이었다. 산에 나무가 없는 민둥산임을 알 수가 있다. 개울 건너가 정림리로 지금은 아파트가 밀집하여 있고, 양구여중고와 박수근 미술관이 건립되어 있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논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 농고와 병설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퇴비베기, 모내기, 피사리, 타작, 밭일 등 실습을 많이 했다. 이때 익힌 기능이 지금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수업의 한 장면, 당시 수학선생님은 이영래 선생님으로 경북대 사대를 나온 분이었는 데 실력이 있고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하셧다. 후일 원주고교 교사와 춘천고 교감, 교육연구원 연구사 등을 역임하셨는 데 안타깝게 정년을 맞이 하지 못하시고 별세하셨다



양구 군인극장. 군부대에서 운영했는 데 한달에 두번 정도 단체관람을 했다. 필자가 모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70년대 중반까지도 운영되었으나 그후에 문을 닫았다. 어떤 녀석들은 몰래 영화구경을 갔다가 선생님에게 적발되어 학생과에 끌려가 혼나기도 했다.


시식회의 한 장면, 실습지의 농작물을 추수한 후 돼지를 잡고 떡을 해서 노고를 치하하는 시식회를 했다.

맨앞 왼쪽이 A반 담임이셨던 윤병덕선생님(천연기념물 개느삼 발견에 큰 공헌을 하셨다. 오른편 여선생님이 필자가 소속된 B반을 담임하셨던 엄봉희 선생님, 윤선생님은 나중에 횡성중 교감을 역임하시고 태백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고

엄봉희 선생님은 서울 동명여고에서 근무를 하시다 퇴임하셨다.



조회때 사열하는 모습



수인리 소양강 강변에서 가을 소풍 모습. 지금은 소양댐으로 인해 수몰되었으나 산과 강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주 좋왔었다.



맨 오른쪽 아래가 필자, 이름이 틀린 경우와 낙서가 된 경우가 있어 이름을 가렸음.




1974년 초임 교사시절의 필자. 1974년 모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3년, '93년에 다시 부임하여 4년, 통산 두차례에 걸쳐 7년간을 근무했다. 처음에는 친구의 동생들을 가르쳤으나, 두번째 근무때에는 친구들의 조카와 아들, 그리고 제자의 아들까지 대를 이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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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3일 옛 웅진초등학교 자리의 학생 야영장에서 열린 중학교 동기회 모습. 연인원 30명 가까이가 모여 하룻밤을 묵으며 옛정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