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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퇴직후의 나의 삶의 모습

필자가 어렸을 때인 ‘60년대 초반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10대 초반의 어렸을 때 40세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 어른으로 생각했다.

마흔살이 되면 마을에서 원로 대우를 받았다.

50세면 대부분이 손주를 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50세가 되면 힘든 농사일에서 벗어나 모내기때 쟁기질, 못줄 잡는 일, 모를 찌는 일 등 힘이 덜드는 전문적인 일을 했다.

여자들은 손주를 돌보는 일 등 가사일을 하였다.

이 시대에는 50대가 되면 힘든 농사일과 노동에서 한발 물러나 자식들의 부양을 받는 노후생활에 들어갔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환갑을 넘긴 분들은 드물었다.

환갑잔치는 결혼식 피로연 못지 않은 큰 행사였다.

古稀를 넘기면 장수(長壽)했다고 하였다.

평균수명이 늘고 노인들의 비율이 높아진 것은 누구나 체감하는 현실이다.

1970년 60세도 못되던 평균수명(남녀평균)이 2010년에는 80세를 넘어섰다.

불과 40년 사이에 평균수명이 20년이나 증가하였다.

이는 2년마다 1년씩 평균수명이 늘어난 셈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급격한 수명의 증가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비율이 7%를 넘어서는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것이 2000년이고 2017년에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에 도달하는 시간이 프랑스가 115년, 영국이 46년, 미국이 72년, 일본이 24년이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9988124”라는 건배구호가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정도 앓다가 떠나자는 것을 의미하는 구호라고 한다.

올해에 60세에 도달하는 사람이 앞으로 더살 수 있는 기대여명은 남자가 23년 여자가 28년이라고 한다. 이들 통계를 보면 위의 구호가 단순히 축배때 쓰는 덕담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오래사는 것을 큰 복으로 여겨왔다.

베개에는 복받는 것과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에서 福자와 목숨 수자(壽)가 수놓여 있었고,

五福에서 첫 번째 복이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인 것에서 보듯이 장수는 인간이 꿈꾸고 바라던 가장 큰 복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과연 오래사는 것을 축복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장수는 복이 아닌 재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래사는 데에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이다.

무병장수(無病長壽)가 되어야 오래사는 것이 자신에게나 가족들이나 공동체에 축복이 되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에게서 건강체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장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경우 무병장수(無病長壽)는 단순한 꿈일 뿐이다.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만으로 복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육체적 정신적 기능이 퇴화되기 때문에 젊은시절처럼 의욕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문제는 은퇴후의 시간이다.

평균수명이 60세가 안되었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후에 생존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후의 생활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노년기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60세에 퇴직한다고 할 때 적어도 20-30년간의 은퇴후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필자가 30-40대 시절 퇴임하는 선배들께 퇴직후의 계획을 물으면 대부분이 취미생활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취미생활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는 데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계획이 없는 은퇴와 오랜 기간동안 특별한 계획이 없이 맞이하는 무료한 시간보내기의 생활은 비록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0여년전 퇴직을 5년정도 남겨 놓았을 때의 이야기다.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문병하러 갔다가 우연히 몇 년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필자에게 퇴직후의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조언을 하였다.

그분은 철저한 퇴임후의 준비를 한 분으로 동기생들에게 소문이 나있었다.

생물교사로 재직하였었는 데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하였다.

명퇴를 한 후 전문대학 안경학과에 입학을 하여 젊은이들과 같이 공부를 하였다.

안경사 자격을 취득하여 안경점을 개업하였고, 모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였다.

50세가 넘으면서부터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 같던 퇴직과 노후 생활이 바로 앞에 닥친 나의 일이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60세가 넘어서 퇴직하였기에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으로 한창 일할 장년세대도 직장을 떠나는 현실에서 은퇴후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퇴임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 없었다.

 

퇴임후의 할 일로 생각한 것이 농사였다.

아내가 농사짓는 것을 좋와하였고 50세가 넘으면서부터는 아내를 도와 일을 하였기 때문에 전업농은 아니지만 주말농장 이상의 규모로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하였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퇴직때 찾으려고 공제회에 저축했던 돈을 찾아서 농토를 마련하였다.

봉사활동을 계획하였는 데 평생 가르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자와 기초 한문을 가르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한자공부를 시작해서 2년만에 국가공인 한자 1급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부전공 연수기회가 있어서 한문교사 부전공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정년을 1년반 남기고 2011년 2월에 명퇴를 하였다.

농토를 준비하여 아내와 같이 주 4-5일간 밭에 가서 일을 했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퇴임을 하며 방송통신대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학생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는 경험하지도 못했던 F학점도 맞아보고, 사정때문에 휴학을 하기도 하면서 4년반만인 지난 8월에 졸업을 하였다. 

또 5년째 월요일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가서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있다.

덕분에 현직에 있을 때 못지 않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블로그를 개설하여 살면서 생각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틈틈이 글로 써서 올리는 활동도 하고 있다.

비록 계획하고 준비하였던 봉사활동은 기회를 얻지 못해 실천하지 못하였지만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퇴직을 하였고 다행히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이 있기 때문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대형 포털업체의 계열회사에서 55세 이상의 시니어 사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원서를 제출하고 응시하였는 데 운좋게 합격하였다. 하루 4시간 반을 근무하는 데 오전과 오후 중 선택하여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년이 없고 性, 學歷, 年齡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7월 1일부터 연수를 시작하여 3개월간 수습을 마치고 근무 중이다.  

이곳에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게시물 관련 권리침해 민원처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 오는 권리침해에 대한 내용들은 이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우리는 업무처리를 통해 세상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업무를 처리하는 근무강도나 내용이 시니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을 한만큼 보수가 있다.

판단 기준에 따라 액수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지만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과 상응하는 수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후반이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밭에 가서 일을 한다.

밭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해서 출근을 한다.

동료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직장동료들이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도 공통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한다.

내가 다시 취업한 것을 아는 친구들은 잘된 일이라고 축하 인사를 한다.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도 보다 떳떳해지는 것 같다.

개인사업을 하거나 자영을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제외하고 우리 나이에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젊어서부터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여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터가 있는 필자는 선택받은 소수라고 할 수도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사는 것이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 되고, 국가적으로는 노년층에게 적합한 일자를 제공하여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부양비를 줄여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고령자와 국가 사회가 윈-윈하는 정책이 필요할 때다.

앞으로 국가와 기업이 고령자들에게 적합한 업종을 찾아내어 일터를 제공해주는 것이 복지를 실현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퇴직을 앞둔 직장인들은 퇴직후의 제 3의 인생에 대한 구상을 미리부터 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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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근무했던 직장에서 2018년 2월 28일자로 퇴사를 했습니다.

32개월동안 나이가 든 후에도 일을 할 수 있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직장에 근무할 수 있다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오전에 농사를 짓고 오후에 회사 근무를 하는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전업농으로 일하기로 하고

회사를 사임하였습니다.

퇴사후에는 아내와 같이 자연 속에서 농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고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며 전업농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