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고 수확을 거두고 나면 밭에는 콩, 옥수수, 고추, 수수, 참깨, 들깨 등의 대궁이 남게 된다.
옥수수나 들깨 등의 대궁은 잘 썩지만 고추와 참깨 등의 대궁은 잘 썩지 않는다.
농작물의 대궁들을 밭에 펼쳐놓은 채로 눈비를 맞게 하고 자연적으로 썩게 하다가 봄에 그래로 갈아엎고 새로운 농작물을 심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잘 썩지 않는 대궁들을 방치하여 놓으면 밭 모양도 어수선하여 보기에도 좋지 않고 갈아엎는다고 해도 멀칭 등 작업을 하는 데 거추장 스럽다는 것이다.
해마다 농작물을 수확한 후 부산물로 남는 대궁들을 모아서 한곳에 쌓아 두어 썩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차지하는 공간도 넓고 고추대 등은 한해가 가도 다 썩지를 않고 줄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불편하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태우는 것이다.
태우면 마른줄기가 차지하는 부피는 거의 0이 된다.
밭도 깨끗해지고 재는 거름이 되니 一石二鳥지만 문제는 함부로 대궁을 태울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산불에 대한 감시가 철저하기 때문에 대궁을 태우다가 적발되면 행정기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아야 하니 번거로운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마다 대궁을 모아다가 쌓아서 썩히는 방법밖에 없었는 데 작년에 이웃 주민이 정해진 날에 대궁들을 태울 수 있다고 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정해진 날에 밭에 가서 농작물 대궁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올해도 이장이 깻대 등을 태우는 날을 알려 주었다.
2월 24일 수요일로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 그날 밭에서 태우면 된다고 했다.
새벽에 바람이 없으니 가능한 한 새벽이나 아침에 태우라고 했다.
오후에는 바람이 강해지니 태우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19일 금요일이 휴무일이라 아내와 같이 수동리 밭에 가서 고추, 수수, 참깨 등의 대궁을 모아 외바퀴 수레에 싣고 소각장소 가까운 곳으로
운반하였다.
24일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방화수로 사용할 20L 물통 세통을 싣고 밭에 도착하니 아침 7시가 조금 못되었다.
아직 완전히 동이 트지 않아 캄캄했다.
나와 아내는 신문지를 불쏘시개로 부드러운 마른 줄기들을 모아다가 불을 붙였다.
불이 타기 시작하자 마른 대궁들을 불위에 던져서 본격적으로 태우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불똥이 튀어서 불이 번질까 두려워서 조금씩 땔감을 넣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마른 줄기라 강한 화염을 내뿜으며 잘탔다.
어렸을 때 불장난하던 생각이 났다.
작은 야산을 넘어 초등학교에 다녀오던 우리 또래들은 골짜기 밭에 쌓아놓은 콩대 등과 밭주위에서 모아온 쑥대 등을 태워 타오르는 불 주위에서 불을 쬐며 놀았다.
불이 활활 맹렬하게 타오르면 "황덕불에 거지 살찐다"라고 외쳤다.
타오르는 불길 위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 등을 계속 집어 넣으며 불을 쬐다가 싫증이 나거나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주의를 들을면 솔가지를 꺾어다가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와 나는 불장난을 하는 소년들처럼 타오르는 불길 위게 계속 마른줄기를 운반하여다가 던져 넣었다.
1시간이 넘도록 태우는 작업을 계속했다.
쌓아놓은 대궁들을 거의 태웠을 때 준비해 온 커피를 마셨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해가 떠서 아침나절이 되었다.
7시쯤 시작된 소각작업은 8시가 넘어서 끝났다.
다음은 뒷정리였다.
먼저 타오르는 불의 열기로 땅이 녹은 곳에서 흙을 퍼다가 잿더미 위를 덮었다,
이 작업이 끝나고 잿더미 위에 가지고 온 물을 부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연기가 점점 잦아져서 불이 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8시 30분쯤 집으로 출발하였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출근하여 일을 하였다.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 왔다.
8시 뉴스를 들으며 TV 앞에서 누워 잠이 들었다가 10시쯤 계속 웅웅대는 TV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불장난을 하면 밤에 오줌을 싼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불장난을 하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정신없이 잠에 곯아 떨어져서 오줌을 싸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비바람을 견디며 태양의 정기를 받아 싹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어 수확을 주던 농작물 대궁은
몇달동안 모아두었던 태양에너지를 순간에 방출하고 재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그위에 다시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맺은 자연의 순환이 이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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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후 잔여물로 남은 참깨, 수수, 들깨, 고추 대궁들
새벽의 어두움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
맹렬한 기세로 솟구치는 불길
위의 사진에서처럼 몇 수레분의 마른 대궁들이 작은 잿더미로 변하였다.
잔불 정리를 할 때 - 흙으로 잿더미를 덮고 물을 부어 불을 완전히 끈 다음 꺼진 불을 또 확인하고 집으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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