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학교에는 A 보육원에 있는 학생들이 10여명 이상 재학하고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었는 데 보육원에서 먹고 자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부모가 없이(부모가 돌보지 못해서) 부득이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는 이들에게 교사들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이들을 배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집에서 안보는 책과 과일 등을 싣고 몇번 방문하기도 했다.
원장님과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생활하는 곳을 돌아보며 보육원에서 재학하는 아이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2000년대라 국가에서 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어서 이들의 숙식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식사나 잠자리가 최소 기준에는 맞는다고 해도 부모에게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한 이들에게 시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용 아동과 청소년들이 정말 부모가 없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이 부모의 이혼이나 가정 문제 등으로 인해 부모가 돌볼 수가 없어 수용된 아동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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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다니는 학생들이 특별하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불량한 행위를 하는 일은 내가 재직하는 동안에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착했다.
문제는 너무 내성적이고 활기가 없고 의욕이 부족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표정이 어두웠고 매사에 피동적인 편이었다.
물론 가정에서 다니는 애들보다 학업 성적도 저조한 편이었다.
은영(가명)이는 2학년 학생이었다.
키는 보통이지만 몸은 약간 마른편이었다.
늘 어두운 표정이었고,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일이 없었다.
급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무표정하게 멍하니 초점을 잃는 눈으로 벽이나 천정을 응시하곤 했다.
수업을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 지적을 당할 일도 없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교사의 눈에 띌 일도 없었다.
가끔 수업시간에 학습한 내용을 물어도 대답을 하는 일이 없었다.
질책을 받을 때는 머리를 푹숙이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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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하순경으로 기억이 된다.
학생부 생활지도 담당을 맡고 있는,미술을 가르치는 허선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 동기가 여동생과 같이 학교를 방문했다고 한다.
동생의 딸인 은영이를 찾아 왔다고 했다.
은영이가 조카가 되는 데 어려서 헤어졌다가 14년만에 만났다고 한다.
은영이 아빠가 그의 동생이 되는 데 은영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얼마후 은영이 엄마는 은영이를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은영이를 보육원에 맡겨 버리고 자기 길을 찾아 갔다고 한다.
나중에 이를 안 큰아빠는 은영이를 찾으려 했지만 어느 보육원에 있는지를 알지 못해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은영이가 A보육원에 있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은영이 큰아빠와 고모가 아기때 헤어진 은영이를 만나 가족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큰아빠는 은영이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으나 은영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보육원을 떠나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그대로 있겠다고 하였다.
큰아빠와 고모가 다녀 간 후 은영이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표정이 밝아졌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까불기도 하여 수업시간에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말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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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다는 것이 자라는 과정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절대적인 의지와 힘이 되는 것이다.
비록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갈등을 빚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부모 형제와 함께 산다는 것이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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