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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시골학교 졸업식

2월 15일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의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생이라야 모두 12명으로 단출하다.

1명도 빼지 않고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니 예전과 같이 학교교육을 마치는 것도 아니다.

9학년에서 10학년으로 올라가는 수료식과 같은 개념이다.

 

별동 건물에 있는 다목적실에서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식장 앞에는 축 광판중학교 제 35회 졸업식이라는 현수막이 붙고, 졸업생과 재학생, 내빈, 학부모들이 앉을 의자들이 준비되었다.

졸업식 전날 1,2학년 학생들을 동원하여 다목적실을 깨끗이 청소를 하고 예행연습까지 철저히 하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시작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운영위원장, 학부모회장 등은 교장실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시작 시간이 되어 입장하였다.

교무부장의 사회로 식이 시작되었다.

개식선언이 있고, 국민의례가 있었고, 교감선생님의 학사보고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 한사람 한사람에게 졸업장을 직접 전달하였다.

12명밖에 안되는 적은 인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팔봉품제(한자, 줄넘기, 워드, 독서)의 인증서 수여가 있었고 상장수여가 시작되었다. 과거 우등상에 해당하는 종합성적 우수상은 네명이 받았다.

3년 개근상, 정근상, 공로상, 예절상, 협동상, 봉사상, 선행상, 특기상 등이 수여되었는 데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상을 받았다.

이어서 교육장 표창, 동창회장 표창, 국회의원, 지방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 면장, 농협 조합장 등의 표창이 있었다. 본교의 학구는 춘천시 남산면과 홍천군 북방면, 서면에 걸쳐 있어서 세 지역의 사회단체들이 모두 표창을 하니 재학생들보다 표창의 가지수가 훨씬 많아 두개, 세 개씩 표창을 받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어서 장학금 수여가 있었다. 동창회 장학금을 비롯하여 운영위원장 장학금, 부녀회 장학금, 청년회 장학금, 의용소방대 장학금, 번영회 장학금, 심지어는 면직원들이 카풀을 하여 절약한 돈으로 주는 장학금에 이르기까지 재학생 수보다 갑절이 되는 명목의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장학금은 20여가지에 300만원이 되는 금액이 지급되었다.

모두 지역 주민들이 푼돈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이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돈이었다.

여러 학교에서 재직하였지만 본교만큼 지역주민들이 학생들에게 정성을 모은 장학금을 여러 명에게 지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40분 이상이 상장, 표창장, 장학금의 지급에 소요되었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을 하게 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감사하며 학생들에게 밝은 앞날이 있기를 당부하는 회고사가 있었고 졸업생의 사은사가 있었다.

이어 졸업가와 교가 제창이 있었고 졸업식이 끝났다.

 

한 때는 150명이 넘는 인원이 졸업을 했는 데 그 1/10이 안되는 12명이 졸업을 하게 되는 초소형 학교가 되었다.

농촌학교는 이제 다시 예전과 같은 활력을 찾을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계속 인원은 줄 것이고, 경제논리를 우선하는 행정가들은 통폐합을 시킬 것이고, 학교는 문을 닫고 농촌 공동체는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 학교가 몇회 졸업생까지를 배출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학교가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서른 두 번째 졸업생을 내보냈다.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밝은 앞날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2006.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