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 시작된지도 25년이 되었다. 2000년은 필자는 춘천 중학교에서 두번째 근무를 할 때다.
이 해에는 의약분업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며 투쟁을 하였다.
그 전에도 의약분업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약국에서도 환자의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약사가 임의 처방을 하여 약을 조제 판매하였고
병원에서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조제하여 환자에게 배부하였다.
이것을 진료는 의사에게서 하고 이 처방전으로 약은 약사에게 조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이다.
일부 농어촌 등 교통 오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의약 분업을 시행하게 되었다.
25년 전만 하여도 우리나라에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약하였다.
지식과 기술을 유형 재산으로 보는 인식이 빈약하였다.
가수의 노래를 무단으로 사용하여도, 도서를 무단 복제하여 사용하여도, 특허를 불법 사용하여도 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진찰을 하고 약을 처방하여 주지 않고 진료비를 받았다고 하면 대부분의 환자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돈을 지급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에 의한 댓가가 아닌 약값으로 지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국민적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때에 의사는 처방전만 발행하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한다면 환자들이 의사의 의료행위에 댓가를 지불하는 것에 불만을 갖게 된다.
병원은 환자에게 투약을 하는 데서 운영 경비를 충당하였는 데 상당부분 수입이 상실되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전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였던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파동이 수습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면 지금은 의약분업 제도가 정착되어 시스템이 잘 작동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작년부터 의대 증원문제로 다시 의료대란이 발생하여 의대생들이 2년째 수업을 거부하고 전공의들 대부분이 현장을 이탈하고 대형병원이 의사 부족으로 운영이 파행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해당 병원은 물론 의대생 교육과 의사의 수련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과는 원인과 전개 양상이 다르지만 25년전 의료에 문외한이고 비전문가인 필자가 보고 느낀 견해를 당시 포털인 네띠앙의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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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 분쟁을 보며
오늘부터 병원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할 때 자신이나 보호자가 느끼게 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격한 감정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내 자신 어렸을 때인 60년대에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갈 형편이 됮 못하였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춘천의 성골룸반의원이다.
그곳에서는 값싸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며 몇 시간을 기다려 몇 분간 진료를 받았지만 그 병원이 있기에 어려운 시절 의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그곳에서 일하시던 수녀님이 양로원의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어버이 날 꽃을 판매하기 위해 필자가 근무하던 직장을 방문하셨을 때 나는 수녀님께 30년 전의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들 드린 일이 있다.
대학 다닐 때 눈이 아파 안과에 갔다가 진료비가 모자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되돌아 설 때 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뒤 의료보험이 생기고 아직 병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의료 혜택을 많이 받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 예전의 의사를 생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는 특권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제적인 지위에서 일반 국민들보다 평균 이상이겠지만 적어도 한 세대 전보다는 의사, 약사 모두 경제적인 부와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의약분업은 그 목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감정적으로 문제를 대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의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 지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적 재산에 대한 대가의 지불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만약 어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 데 투약도 하지 않고 쉬라는 처방을 내리고 진료비를 받는다면 대부분은 이를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약을 투약하고 여기서 대부분 의료 수가를 충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의약 분업으로 병원 경영의 중요한 축을 이루던 병원투약으로 인한 수입이 격감된 상황에서 의사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제기한 문제를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갈 것이 아니고 그들의 주장에 근거가 있는 것을 찾아서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작년에 교사들의 정년을 3년을 한꺼번에 단축하였다.
그 전에 촌지 문제 등으로 교사집단을 매도한 후 정년을 단축하였다.
정년의 단축에 대하여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할 수도 있지만 고령교사 = 무능교사로 캠페인을 벌리고 교사들의 정년을 단축한 결과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사기가 떨어진 교사들에게서 과연 질높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일까?
우리가 의사들의 파업과 그간의 행동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다.
물론, 환자를 볼모로 잡은 행동을 칭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집단을 매도하고 난도질하고 그들에게 경제적인 유인을 포기시키고 무한 봉사만을 요구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허준과 같은 의사를 페스탈로찌같은 스승을 대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헌신적인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제도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면 어차피 의사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물론, 파업이 주는 불편은 크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최소한 의사들의 사기를 꺾지 않고 그들에게서 질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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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게시판에 올렸고 뒤에 클릭하여 보니 추천이 40여건의 조회에 추천이 7건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자정 무렵 다시 “동네북이 된 의사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개업의로 병원을 운영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견디지 못해 병원을 폐원한 친구의 예를 들어서 올렸는 데 대다수는 허준과 같은 의사를 바라며 그들의 권익에는 인색하고 파업에는 비난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6월 21일
네띠앙 게시판을 조회하여 보니 평소의 몇 배나 되는 근 300건이 넘는 의견이 올라와 공방을 벌리는 데 의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 많았다. 물론, 비난 받을 행동도 되지만 너무 선정적으로 비난한다. 국민 여론과 언론이 이렇게 정부 시책에 호응한 적이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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