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주장, 시평, 논문

사적 복수(私的 復讐) 드라마 열풍

최근 모범택시와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둘다 사적 복수를 통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드라마다.

사람들은 공권력(公權力)이 아닌 초능력적인 힘을 가진 개인이나 사조직(私組織)이 공분을 일으키는 가해자나 범죄조직을 응징하는 데서 쾌감과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사적 복수를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원인이다.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에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지속적으로 주인공과 친구를 괴롭혀서 죽음에 이르게 하였거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철저한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그런데도 보호해야 할 담임교사와 학교는 가해자의 편에 섰고 오히려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 역시 가해자 측의 사회적 지위를 통한 압력에 가해자를 두둔하고 비호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마음 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고 벼르며 성장하여 일정한 힘을 기른 후에 개인적으로 가해자들을 복수하여 가는 과정이 더 글로리의 줄거리다.

시청자들은 주인공 문동은이 가해자 한명 한명에게 복수를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재기 불능의 파멸을 당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모범택시도 시즌 1, 2로 나누어서 각각 12회씩 방영되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두회 분으로 나뉘에 편성되었는 데 주제는 사이비 종교, 사기(詐欺) 조직 조폭 등 범죄조직을 응징하는 내용이다.

가해자인 범죄조직이 힘없고 선량한 피해자들을 착취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지만 공권력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의 수와 피해 정도는 기하급수로 불어나게 된다.

이를 모범택시를 하는 몇 명의 사조직이 범죄를 밝혀서 드러내고 조직원들을 응징하는 내용이다.

범죄 사실과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철저한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조직을 소탕해 나가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자신도 흉악범의 징계에 동참하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주는 것이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단순한 주제이지만 드라마의 발단부터 해결과정과 응징이 시청자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며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1970년 – 1980년대에 중국 무협지와 무협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뛰어난 무술 실력과 장풍을 일으키는 등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평범한 사람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주인공들이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악당들을 소탕하고 응징하는 데서 독자나 관객들이 카타리시스를 느꼈다.

당시 이런 분석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무협지나 무협 영화는 홍콩이나 대만에서 창작되었다.

중국 본토가 아닌 본토 변방의 중화권 지역이다.

10억이 사는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대만이라는 작은 섬이나 한 점밖에 안되는 중국 끝부분에 밀려나서 사는 대륙 출신 중국인들에게 본토회복이나 권토중래(捲土重來)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작은 섬이나 대륙의 한 끝부분으로 밀려나서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며 좌절감 속에서 사는 중화인들에게 무협지는 상상 속에서나마 현실을 초월하는 카타리시스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더 글로리나 모범택시와 같은 사적 복수 드라마의 열풍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돈이 없으면 죄가 되고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된다는 (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공분을 일으키는 파렴치범들이 막강한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여 무죄판결을 받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일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정치적 경제적 비리를 저지른 주로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범죄 규모와 죄질에 비해서 대부분 가벼운 형량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민중들은 법을 불신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죄질이 분명한 범죄자나 가해자들을 즉석에서 시원하게 응징하여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사적 복수 드라마의 열품은 우리 사회에 사법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고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닌 강자의 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