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지 3년이 되는 해다.
이때 고3 학생들은 휴전되는 다음해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피난지에서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하고 졸업을 하였고
피난지의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귀향하여 대부분 파괴된 학교 건물이 파괴가 되어 천막이나 가교사 등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의 모교인 춘천고의 경우 1957년에 졸업한 선배들은 1954년에 교사 건축을 착공하여 1955년 완공될 때까지 학교 건축에 직접
참석하여 구슬땀을 흘렸다
1955년 2학기부터 가교사가 아닌 신축교사에서 수업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전쟁 중과 전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세대의 강한 교육열에 의해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이 된다.
이때에는 휴전 직후의 시기라 반공교육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6.25를 상기하고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며 반공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교육과 각종 행사가 이어졌다.
이 시기 반공 관련 등 학교행사에 대하여 모교 앨범에서 발췌한 사진을 게재한다.
1주일간의 조회 계획 '80년대까지 요일별 계획에 의해 조회를 실시하였다. 보통 2-3회의 실외조회가 실시되었다.
현충일과 6.25 기념행사. 위는 학교교사가 건축되기 전이고 아래는 건축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6.25 상기 궐기대회의 모습, 춘천공설운동장(당시 춘고운동장)에 군중을 동원하여 궐기대회를 열었다.
유엔의 날과 반공 반쏘 궐기대회. '60년대-'80년대에는 반공관련 각종 궐기대회가 많이 열렸다.
사열, 매주 교련조회시 사열을 하였다. 이 주간 행사는 교련이 폐지되었던 '60년대 중반기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69년 교련이 부활된 후 '80년대까지 계속 실시되었다.
사열에 이어지는 분열의 모습
월요일마다 실시된 조회, 교련이 실시되지 않던 초중학교에서는 애국조회라고도 했다.
학생의 날 행사와 유엔가입을 촉구하는 궐기대회
1958년 교육계획서의 행사계획, 6.25, 학생의 날, 유엔의 날, 행군, 웅변대회 등 반공관련 행사들이 눈에 띈다.
학생회를 대체하여 설치된 학도호국단 간부들의 모습. 학도호국단은 5.16후 재건학생회로, 그후 학생회로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교련이 부활되면서 '70년대 중반 학도호국단이 부활되었다가 '80년대에 다시 학생회로 환원되었다.
전쟁으로 교사가 전소되어 임시교사에서 수업하였는 데 '54년에 교사신축을 시작하여 '55년에 준공하였다. '54-'55년에 재학하였던
선배들은 소양강가에서 자갈을 채취하여 군트럭으로 운반하여 학교를 짓는 데 힘을 보태었다.
기공식의 한 장면, 맨 왼쪽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는 분이 당시 춘고교장 김병로 선생님.
교장선생님은 1924년 개교당시 유일한 조선인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52년에 교장으로 부임하여 1960년까지 재임하셨다.
교장선생님은 평생을 춘천고등학교를 위해 헌신하셨으며 1960년 참의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골조공사의 모습 - 철근을 촘촘히 넣은 모습이 설계대로 튼튼하게 지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이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서 2000년대 후반 신교사가 건축될 때까지 반세기를 넘도록 사용하였다.
모습을 드러낸 건물.
완공된 모교의 모습(1955년) 그후 이 건물은 2007년 신축교사 건축으로 철거될 때까지 반세기를 넘게 3만명 가까운 인재들의 배움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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