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셔온 글들

주말농장에 얽힌 슬픈 이야기

글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고 마음이 아파서 옮겨 왔습니다.



강마루 | 조회 278 |추천 0 | 2016.01.26. 12:13

* 제가 6년전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이별하기 까지 얘기를 각색한 글입니다.

몇 년전 우리 카페에 요약분을 올렸었는데 요즈음처럼 농한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다시 올려봅니다.

시간 나실때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글은 3년전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상을 받았답니다.


어느 상록수의 꿈

 

내가 그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봄 직장에서 퇴직하고 용인에서 주말농장을 하고 부터이다.

가까운 친척 한 분으로 부터 용인에 밭 200평이 있는데 관리를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농사를 한번 지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였던 것이다.

농사도 농사지만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은근히 마누라의 눈치를 보게 되어 뭔가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말농장은 좋은 피난처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에게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며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해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에 들어갔다. 퇴직하고 일종의 무력감에 빠져 있었는데 희망이 보이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작물을 경작하여 시장에 팔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작물을 재배하기로 하고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옥수수, 감자, 고구마, 토란, 콩, 들깨, 배추, 호박 등을 재배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품목별로 재배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물을 재배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파종시기와 병충해 예방법 그리고 작물이 잘 클 수 있도록 거름을 주는 일이었다.

나는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갈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농사원칙을 정했다.

 

첫째 제초제는 사용치 않고 잡초는 손으로 직접 뽑는다.

둘째 벌레가 좀 먹더라도 살충제나 살균제는 최대한 적게 쓴다.

마지막으로 화학비료 보다는 퇴비나 부엽토 등을 거름으로 쓴다.

 

한마디로 친환경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몰론 이렇게 농사지으려면 힘이 드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젊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른 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밭 근처에 야산이 있어서 낙엽 썩은 부엽토를 큰 바구니에 담아 부지런히 날랐다. 옛날에는 낙엽이나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여 부엽토가 없었지만 지금은 산 어디를 들어가도 썩은 낙엽이 한 뼘 넘게 수북이 쌓여 있어 비교적 손쉽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밭이 200평이나 되어 부엽토를 두렁에 뿌리는데 꼬박 3일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근처 소 키우는 농장에서 우분을 한 경운기 분량 구입 했다. 농장 주인은 한사코 그냥 가져가라 하는데 운반할 도구도 없어서 경운기 기름 값이나 하라며 3만원을 놓고 왔다.

 

거름을 충분히 투여한 후 제일 먼저 심은 것은 감자와 상추 그리고 시금치 등이었다. 밭가 언덕에는 백일홍, 코스모스, 분꽃, 봉숭아 등 꽃씨를 뿌리고 호박도 심었다. 4월 들어 날씨가 풀려 농사일이 많아지자 자연히 농장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떤 날에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난 고추를 심을 두렁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있었다.

 

“감자가 잘 크고 있네요, 농사일은 많이 해 보셨어요?”

 

한참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난 직감적으로 농장 근처 마을에 사는 주민이겠구나 생각하고 “아 예, 농사일은 처음이라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농사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내 짐작대로 그 친구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 적은 40대 후반이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보니 시집오겠다는 처녀가 없어 총각으로 살고 있었다.

 

농장을 자주 가면서 근처 마을 주민들을 자연스럽게 많이 알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자주 찾아와 얘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는데 자식들이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어 적적한지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다.

 

“자식을 6남매 두었는데 다 대학까지 나오고 서울에서 잘 살고 있어”

 

“지난겨울에 첫째 사위랑 일본에 여행 가서 온천 목욕을 실컷 하고 왔다우”

 

“논과 밭이 모두 5천 평 가량 되는데 나이가 들어서 임대해 주었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땅 부자였다. 근처 땅값이 평당 200만원 정도 되니 수십억에서 수백억 부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생활상은 보통 농민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농촌마을과 다른 것은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뻔질나게 부모를 찾아다닌다는 점이다. 휴일이면 고급 차량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워 주차난이 심각할 정도였다. 아마도 부모에게 잘 보여서 유산을 많이 상속 받으려는 속셈이 깔려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평일에는 나이 든 주민들은 딱히 할 일이 없어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얘기 상대가 눈에 띄면 다가가서 자랑거리를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다. 나는 외지인이라 현지주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맞장구도 쳐 주곤 했더니 찾아오는 노인들이 꽤 많았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그 친구에게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산이며 들로 나다니기를 좋아했다. 그 친구와 조금 가까워지자 농장에 올 때마다 고사리며 다슬기, 취나물 등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주곤 했다.

 

“ 이형, 힘들게 다슬기 잡아서 집에서 해먹지 왜 나에게 몽땅 주는거요?”

 

“ 우리 집에서는 같이 살고 있는 형수가 이런 걸 갖고 가면 귀찮게 생각한다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가지고 가서 맛있게 드세요”

 

그 친구는 결혼을 못해 형님 집에 얹혀살며 형님의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바쁜 농사철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일은 하지 않고 산으로 들로 나가 버리니 형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고추를 다 심고 난 5월 중순 어느 날, 밭에서 일을 끝내고 차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그 친구가 헐레벌떡 나에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 조금만 늦었으면 못 만날 뻔 했네요, 일 다 끝냈어요?”

 

“ 일이 끝이 있겠습니까? 배고파서 조금 일찍 집에 가려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친구는 다음날 읍 주민 체육대회가 있는데 축구선수가 부족하다면서 나에게 같이 운동을 하자고 다짜고짜 부탁을 했다.

 

“ 이 형, 나는 외지사람인데 자격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축구도 잘 하지 못합니다.”

 

“ 아니 자격은 문제없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잖습니까? 만약 시비를 걸면 우리 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난 응낙을 하고 말았다. 학교 다닐 때에는 반 축구선수로 뛸 정도로 운동을 꽤 좋아 했으나 직장에 다니면서 운동을 제대로 안하여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은 잔치기분이 완연했다. 학교 입구에 플래카드도 걸리고 아침부터 농악대가 농악놀이를 하면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기분이 났다.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손자 손을 잡고 속속 운동장에 모였다. 객지에 나가있는 출향인사들이 찬조금을 듬뿍 내어서 읍사무소에서 돼지를 2마리나 잡고 술과 과일, 떡 등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장만했다고 했다. 객지에 나가 돈을 모은 사람들은 이럴 때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읍장이 인사말을 하면서 찬조금을 낸 사람들을 일일이 알리고 참석자들과 함께 힘찬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 친구 마을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축구경기에 나갔다. 리 대항전인데 젊은 사람들이 적어서 60대 이상 할아버지가 선수로 뛰는 경우도 있었다. 그 친구는 펄펄 날았다. 평소 산타기를 좋아하더니 유감없이 실력을 보여 주었다. 우리 팀은 승승장구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 박 형, 축구하는 걸 보니 옛날에 한 가락 한 것 같더만요. 같이 축구하자고 안했으면 서운하게 생각했겠어요. 하하 ”

 

물고기가 모처럼 물을 만난 것처럼 그 친구는 무척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시합 전에 선수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일일이 지시했다. 예상대로 결승전 상대는 강했다. 악착같이 뛰었으나 전반전에 우리팀이 1골을 먹은 채로 끝났다. 쉬는 시간에 그 친구는 나에게 함께 공격을 하자고 했다. 상대팀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많아 지쳐있어서 체력전으로 밀어붙이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 예상은 적중했다. 후반전에 접어들자 상대팀 선수들의 발이 눈에 뜨이게 둔해졌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공을 잡으면 무조건 그 친구에게 패스했다. 그 친구는 내가 차준 공을 잡아 연속으로 2골을 성공시켰다. 경기는 결국 우리가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경기가 끝나자 마을 주민들이 그 친구를 헹가래 치며 기쁨을 함께 했다. 그날 그 친구와 나는 학교 운동장 텐트 안에서 주민들과 함께 밤늦게 까지 술을 마셨다. 운동장 한 가운데서는 주민 노래자랑이 열리고 우린 그 노랫가락을 반주삼아 실컷 마셨다.

 

시골마을 담벼락을 빨갛게 물들였던 장미가 지고 녹음이 짙어가던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낮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농장에 나가 잡초를 정신없이 뽑고 있는데 “ 오랜만입니다. 작물들이 아주 싱싱하네요.” 라며 그 친구가 쭈그리고 앉아있는 나에게 등 뒤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 어휴, 이 형 무더위에 잘 지내셨어요.”

 

나도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은 막걸리와 과자 봉지 등 안주류가 손에 들려있었다.

 

“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 아니요, 박 형과 오랜만에 술 한 잔 하려고 놀러 왔습니다. 오늘은 일 하루 쉬시고 계곡에서 물놀이 하며 놉시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 입에서 술 냄새가 제법 났다. 아침부터 어디서 해장술을 한 잔 하고 온 것 같았다.

 

“ 그럽시다. 잡초 뽑는 것 질렸는데 잘 되었네요, 이 놈의 잡초는 정말 생명력이 강해요. 얼마 전에 뿌리까지 전부 뽑았는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무성하게 자랐어요.”

 

“ 그러게요, 박 형이 아무리 해도 잡초는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대충 함께 살아가세요. 하하 ”

 

내가 놀러가자는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서인지 그 친구는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았다. 그 친구를 따라 20여분 산 오솔길을 걸으니 정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다.

 

“ 이곳은 제가 자주 찾아오는 아지트중 하나입니다. 제가 박 형에게 몇 번 드린 다슬기와 가재는 여기에서 잡은 겁니다.”

 

“ 아 도시 근처에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니 정말 별천지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 마을 사람들은 이런 좋은 자연을 사랑할 줄 몰라요, 땅값이 오르니까 돈 버는 데만 정신이 없어요. 여기도 몇 년 전에 산주인이 길을 내고 음식점을 만들어 팔려고 하다가 제가 동네 사람들을 어렵게 설득해서 몇 개월에 걸쳐 반대 투쟁을 벌려 지켜낸 곳입니다. 트랙터로 길을 내려는 것을 길바닥에 누워서 막았더니 업무집행을 방해 했다고 경찰서에서 몇 번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 곳은 내 눈으로 보기에도 음식점을 내면 대박이 날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옛날에 벼락에 맞았다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앞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서 음식점 허가만 받는다면 아줌마 부대가 줄을 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저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요새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게 아닙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그저 똑 같은 공산품을 만들어 내다 팔고 있는 것 뿐 입니다. 화학비료를 듬뿍 넣고 시도 때도 없이 농약을 뿌려대어 작물을 보기 좋게 만들어 중간상인에게 넘기면 끝납니다. 작물이 신선하게 보이도록 마지막까지 농약을 쳐 대고 있으니…… 그 걸 사먹는 도시 사람들 참 불쌍합니다.”

 

그 친구 형 되는 분도 비닐하우스 20개동을 짓고 상추며 시금치, 파, 샐러드 등 각종 야채를 1년 내내 경작하여 내다 팔고 있었다. 농촌에 일 할 사람이 없어 불법체류 외국인을 5명 고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고용된 외국인들이 3~ 5년 하우스에서 일하고 귀국할 때는 농약에 중독되어 평생 고생할 거라는 말도 했다.

 

“ 농약을 치라고 하면 제가 형 모르게 농약은 땅에 묻어 버리고 물만 뿌리는 경우도 있어요. 몇 번 형에게 들켜 된 통 혼이 났지만…… 정부당국에서 잔류농약 검사를 철저히 해서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잔류농약이 있는 작물은 못 팔게 해야 농민들도 농약을 적게 쓸 겁니다. 난 박 형이 제초제를 쓰지 않고 화학비료 대신 우분과 부엽토를 거름으로 쓰는 걸 보고 농사꾼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 진정한 농사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일반 농민들의 관행적인 고추농사 방법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문제점을 얘기했다.

 

“ 고추는 재배해 봐서 아시겠지만 재배하기가 무척 까다롭지요. 탄저병, 역병, 무름병, 담배다방, 진딧물, 총채벌레 등 각종 병균과 해충이 수없이 발생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고추농사를 망치기 일쑤죠. 때문에 고추를 시장에 팔기위해 재배하는 농민들은 한마디로 농약통 속에서 고추를 재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해 농약치는 횟수가 평균 26회 된다고 하니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는 6월부터 수확이 끝나는 10월까지 5개월 동안 5~7일에 한번 씩 농약을 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훨씬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제초제를 고추 고랑에 마구 쓴다는 것 입니다. 박 형처럼 호미나 손으로 풀을 뽑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제초제를 뭐하고 부르는지 박 형 아십니까? ”

 

난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열띤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갑자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 그라목손 말인가요? ”

 

“ 예, 그라목손을 ‘녹색의 악마’라 부른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1,700명이상이 이 농약으로 인한 중독이나 음독자살 등으로 사망하는 치명적인 농약이지요. 이렇게 고랑에 뿌려댄 제초제가 사방으로 퍼져있는 고추뿌리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고추에 흡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중독성(重毒性) 농약은 증발도 잘 되지 않아서 5년 정도 지나야 완전히 소멸된다고 하니 제초제 자주 사용하는 밭을 파보면 지렁이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어요. 또한 고추가 꽃 피우기를 멈추는 10월이 되면 일부 농민들은 열려있는 푸른 고추를 빨리 수확해서 팔기 위해 고추에 농도를 진하게 한 제초제와 빨간 착색약을 섞어서 뿌려 댑니다. 이렇게 해서 10여일 지나면 고추대는 말라 죽어있고 푸른 고추는 빨갛게 익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로운 고추가 중간상인 등을 통해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니 정말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아니 그런 고추들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입니까? 정부에서는 이런 것을 모르고 있나요? 단속을 안 하고 뒷짐이나 지고 있습니까? ”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주면서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 관계 당국에서도 이런 실태를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FTA다 뭐다 해서 농민들의 불만이 큰데 이런 것까지 단속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농민들을 자극시킬까 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친구 말대로 관계 당국에서 이런 고추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면 큰 문제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고 돌을 들춰가며 가재도 잡다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 이 형,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내려갑시다. 놀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 아 배고프세요, 저는 막걸리를 많이 마셔서 인지 배가 고프지 않네요, 박 형 라면 좋아하시면 제가 라면으로 점심 대접할게요.”

 

그리고 그 친구는 근처 바위 밑으로 가서 휴대용 가스버너와 라면, 그리고 묵은 김치통을 가지고 왔다. 그 곳에 비상식량을 숨겨놓고 산에서 자주 끼니를 때우곤 한다고 했다. 김치와 막 잡은 가재를 넣고 익숙한 솜씨로 라면을 끓였는데 맛이 환상적이었다.

 

“ 아 라면 맛이 죽여주네요, 빨갛게 익은 가재가 입맛을 북돋아 주는 것 같습니다.”

 

“ 예, 가재를 넣고 끓이면 국물이 우러나와 맛이 참 좋습니다. 많이 드세요.”

 

생전 처음으로 가재탕 라면을 먹고 1회용 커피를 마시며 그 친구는 맛있는 칡과 몸에 좋은 영지버섯이 벼락바위 뒤편에서 자라고 있다면서 칡즙을 자주 마시냐고 나에게 대뜸 물었다.

 

평소에는 별로 마시지 않지만 등산 갔다가 내려오면서 길거리에서 종종 마신다고 대답해 주었다.

 

“ 박 형, 길거리 칡차는 다리통 보다 굵은 칡을 즉석에서 갈아주는데 그 다리통보다 굵은 칡이 어떻게 채취되는지 모르시죠? 그런 굵은 칡은 길옆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대개 깊은 산속에 있는데 그런 곳에 포크레인 같은 중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럼 사람이 곡괭이나 다른 도구로 직접 캐야 하는데 그런 굵은 칡 캐려면 무척 힘들어서 일당 벌기가 쉽지 않답니다. 그래서 심산유곡에서 굵은 칡을 발견하면 캐기 어려우니까 제초제를 줄기에 발라놓습니다. 그러면 얼마 못가서 칡은 죽고 칡뿌리는 수분이 증발되고 조직이 파괴되어 조금 얇아지면 체인불럭(chain block)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가서 잡아당기면 손쉽게 캘 수 있습니다. 물론 길거리에서 파는 모든 칡이 이렇게 채취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칡은 마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 친구말을 들으니 정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었다.

종종 뉴스를 통해 가성소다를 먹는 음식에 사용하고 가축용 사료를 수입해서 음식으로 사용하다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까지 우리 먹거리가 위험수위에 와 있을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벼락바위 뒤편에 있는 칡을 채취하러 가자고 했으나 다음에 꼭 갈 것을 약속하고 그냥 내려왔다. 막걸리를 많이 마신 탓으로 술기운이 돌았기 때문이다.

 

길가 가로수 마다 매미들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여름이 되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 뒤에서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아마도 농사짓는 사람들은 여름에 제일 고생을 많이 할 것이다. 땡볕에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고추며 오이, 가지, 토마토, 옥수수 등 많은 작물들이 여름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인을 부른다. 전날 밤 친구들과 어울려 마신 술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았으나 빨갛게 익은 고추며 토실토실 익은 토마토, 오이 등을 생각하면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밭에 왔다간 지가 1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든 작물들이 키 크기 경쟁이라도 하듯 그 사이 엄청 자라 있었다. 이제 작물들의 이파리며 잡초들로 인해 땅바닥이 안 보일 정도가 되었다. 우선 두렁의 잡초부터 뽑기 시작했다. 제초제를 쓰지 않아서 그냥 두면 온 밭을 점령해 버릴 기세였다. 겨우 한 두렁 잡초를 뽑고 나자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었다. 오늘은 첫고추를 따야하므로 한낮이 되기 전에 빨리 잡초뽑기를 끝마쳐야 했다. 한참 일하다가 목에 두른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일어서는데 현기증이 심하게 왔다. 물을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밭가 그늘에 놓아둔 물통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하늘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신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산소호흡기와 링게르 주사기를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뉘어져 있었다. 옆에는 예쁘장한 간호사와 그 친구가 서 있었다.

 

“ 아니 이 형, 여기가 어딥니까?”

 

“ 이제 정신이 좀 드십니까?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밭에 놀러 갔더니 박 형이 밭 한 가운데 쓰러져 있어서 들쳐 메고 그냥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얼마나 놀랬는지…… ”

 

그 친구는 밭가에 세워둔 내 차를 멀리서 보고 밭으로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안보여 이상하다 생각하며 담배 한 대를 피우다가 우연히 고춧대 사이에 쓰러져 있는 날 발견하고 1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읍내 병원으로 업고 뛰어 왔던 것이다.

 

“ 내가 운전만 할 줄 알았어도 박 형 차를 몰고 쉽게 왔을텐데…… 박 형을 들쳐 메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었지요. 근대 박 형 살 좀 빼야 되겠어요. 얼마나 무거운지 내가 아주 짜부라진 줄 알았다니깐요, 하하 ”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난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몰랐다. 무성한 작물들 속에 쓰러져 있어서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일하던 농민이 일사병으로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특히 한여름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어떤 해에는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폭락에 판로난까지 겹쳐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하루빨리 우리 농민들이 판로나 가격 걱정 없이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되는 농정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 그 친구는 생명의 은인이 되어 내 가슴속 깊이 소중한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버렸다. 난 며칠 후 멋진 등산화 한 켤레와 모자를 사서 그 친구에게 선물했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다 “ 등산화 신고 산을 타면 박 형과 동행하는 기분이 들것 같다”며 기꺼이 내 성의를 받아 주었다.

 

농장 근처 야산의 상수리나무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이 되었다. 활엽수들은 노랗고 빨간 이파리들을 대부분 떨쳐내어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는 반면 소나무 전나무 등 칩엽수들은 여전히 푸른 산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밭에도 고추며 가지, 오이, 들깨 등 모든 작물은 수확이 끝나고 서리를 맞으며 익는다는 검은콩과 김장배추만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농사를 지었지만 거름을 잘 써서인지 작물들이 실하게 자라주어 꽤 알찬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친구말로는 이 근처에서는 제일 농사를 잘 지은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병충해에 약한 고추는 농약을 적게 써서인지 탄저병에 걸려 2번만 빨간 고추를 따고 모두 뽑아내야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정성 드려 키운 작물이 병에 걸려 시들해 질 때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반면에 싱싱하게 자라서 토실토실한 열매를 선물해 줄 때는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었다. 작물은 주인의 땀방울을 먹고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람이 불지 않은 맑은 날씨여서 수확이 끝난 작물들을 태우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마른 고춧대며 옥수숫대, 들깨대 등을 밭 한가운데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이파리가 조금 남아있는 검은콩 사이로 낯선 비료포대가 살짝 보였다. 분명 내가 놓아둔 것은 아니기에 의아하게 생각하며 비료포대를 꺼내는데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비료포대 속을 들어다보는 순간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곳에는 팔뚝보다 굵은 칡뿌리 3개와 영지버섯 20여개가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난 그 친구가 생각났다. 지난 초여름에 계곡으로 놀러가서 칡과 영지버섯을 채취 하러 함께 가자고 굳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를 만난 것이 꽤 오래 된 것 같았다. 딱히 농장에 일이 없었기에 한 보름정도 밭에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누구에게 구속되기 싫다며 핸드폰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기에 내 차를 보고 곧 나타나겠지 생각하며 마른 작물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작물들이 바짝 말라서 인지 금방 불꽃이 일어나며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낙엽 태울 때와 비슷한 구수한 냄새가 참 좋았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뛰놀며 불장난 하던 생각도 났다. “ 산불 안 나게 조심해야 돼 ” 자주 놀러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불꽃을 보시고 환하게 웃으시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 잘 계셨어요, 할머니! 자제분들은 잘 찾아오나요?”

 

“ 그럼 지난 주말에도 두 째 내외가 겨울 옷가지랑 쇠고기를 사가지고 손자들을 데리고 왔다갔지. 고추랑 고구마랑 농사지은 것들을 트렁크에 듬뿍 실어 보냈어.”

 

모닥불 옆에서 난 할머니와 둘이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자식자랑 손자자랑에다가 젊어서 고생하면서 살림살이 늘린 얘기에 정신이 없었다.

 

“ 내가 이 마을에 시집올 때는 사람들이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다우, 일제시대라 농사지은 곡식을 왜놈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지만 겨울이면 노름으로 살림살이 다 말아먹기 일쑤였어. 새마을운동 하면서 내가 부녀회장으로 뽑히고 나서부터 우리 마을이 변하기 시작했지. 나는 마을 아낙들과 함께 돼지와 토끼, 닭 등 가축을 공동으로 키우기 시작했어. 마을 옆에 산이 있으니 칡넝쿨이며 각종 풀들이 많으니까 사료를 사서 먹이지 않고도 가축들을 잘 키울 수 있었어. 가축을 팔아 모은 돈으로 농기계를 하나씩 구입해서 공동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 아낙들이 부지런히 일하니까 남자들도 변하더라구, 산을 개간해서 약초도 심고 뽕나무를 많이 심어 누에를 키워서 많은 소득을 올렸다오, 무엇보다도 농한기에 노름을 않게 되어 서로 화합하는 부자마을이 되었다우. 이래봬도 장관상은 물론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야 내가 ”

 

얘기를 듣고 보니 참 자랑스러운 할머니였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 우리 농민들이 얼마나 고생 많이 했는가? 쌀밥은 명절 때나 구경할 수 있고 깡보리밥도 없어서 소나무 껍질이며 풀뿌리 등을 캐먹던 가슴시린 추억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농촌에서 태어나 그런 시절을 겪기는 했지만 할머니가 겪었을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라.

 

“ 그런데 요즘 애들은 큰일이야. 손자들도 우리 집에 오면 밥은 잘 안 먹어, 뭐 피자다 치킨이다 해서 며느리들이 싸가지고 와서 애들에게 밥 대신 그걸 먹이더라고, 나한테 혼나고 나서 좀 고쳐졌지만 식성이 좀 까다로워야지, 이 땅에 태어났으면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어야지 외국에서 사온 거 먹어 건강해지겠어?”

 

그러나 내가 기다리는 그 친구는 산기슭에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 할머니, 같은 마을 사는 이 상구씨 요새 잘 지내나요?”

 

나는 할머니에게서 그 친구 안부나 전해 들을까 해서 넌지시 물어 보았다. 순간 시종 밝게 웃던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왜요 할머니, 이 상구씨 무슨 일 있나요?” 나는 다급하게 재차 물어 보았다.

 

“ 상구 갸 무슨 일 있었는지 몰라? 죽었어.”

 

“ 예? 상구씨가 죽었다구요?”

 

난 한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젊고 건강한 그 친구가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할머니로부터 그 친구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도 그 친구는 작물에 농약을 치는 문제로 형과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다음 날 출하될 상추가 생기 있게 보이도록 형은 농약을 하라고했으나 그 친구는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못하도록 말리다가 형으로부터 손찌검까지 당하며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길로 집을 뛰쳐나갔다가 이틀 만에 벼락바위 밑 계곡에서 등산객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신 옆에는 술병과 농약병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먹다 남은 라면도 있었다고 한다.

“ 할머니 상구씨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어요?”

 

“ 초상 치룬지 아마 1주일쯤 되었지, 농약 먹고 죽어서 경찰이 부검까지 해서 늦었어. 화장해서 죽은 계곡 옆에 뿌렸다고 하더구먼.”

 

나는 시들해 지는 모닥불을 흙을 덮어 끄고는 밀려오는 어둠을 뚫고 계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친구와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 친구는 나를 생각하며 어렵게 칡뿌리를 캐고 영지버섯을 따서 이렇게 어둠이 깔린 시간에 밭에 갖다 놓지 않았겠는가. 희미하게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뿌연 동공 속으로 그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자연을 벗 삼아 들판을 뛰노는 사슴처럼 살다간 친구,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 산새처럼 훨훨 나르며 자유롭게 살다 간 친구…… 낙엽이 지지 않은 아름드리 상록수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둥근달이 빛났다. 저 멀리 보이는 벼락바위도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끝

 


출처 : http://cafe.daum.net/sansamtkdgh/Dzx0/15188?q=%C5%F0%C1%F7%C8%C4%20%C1%D6%B8%BB%B3%F3%C0%E5&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