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하는 공약이 있다.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고.... "
그러나 정권을 잡고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공기업의 장이나 간부들이 낙하산을 타고 줄줄이 내려와 기관을 점령한다.
정권을 잡은 측에 문제를 제기하면 능력에 따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일 뿐 결코 낙하산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내 정권에서 낙하산에 태워 내려 보내면 능력에 따른 인사이고 다른 정권에서 하면 낙하산인 것이다.
사람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책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전교조가 생겨서 개선된 것 중의 하나가 낙하산 책이 사라진 것이다(필자는 전교조 조합원도 아니었고 전폭적인 지지자도 아니다)
교장실에 가보면 서가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고 모두 나쁜 책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저자가 심혈을 기우려 집필한 상당히 가치가 있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를 홍보하거나 특정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책들도 있었다.
교장실에 비치하는 낙하산 책들은 대부분 서무과에서 학교예산으로 구입한 것으로 교사나 학생들에게 직접 부담을 준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낙하산 책은 학생들에게 강매를 한 저질책들이다.
필자가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한 '70년대 중반은 유신정권이 지배하던 때로 정권옹호를 위한 이데오르기 교육이 강조되던 때였다.
"반공"이나 "안보"라는 말이 들어가면 어떤 이의도 달 수 없었다.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급서로 민주화가 되는가 기대를 했지만 전두환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군정이 연장되었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반공과 안보를 강조하고 친미정책을 펴나갔다.
학교에는 반공과 안보를 강조하며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교육을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리를 추구하려는 자들이 나타났다.
반공영화나 안보영화를 상영한다고 농어촌 지역의 학교를 찾아와 협조공문을 내민다.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주고 순회업자들은 6.25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를 상영한다.
내용은 만화같고 코미디 같기도 한 저질의 영화였다.
무료상영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관람료를 징수하였다. 애들은 보기 싫어도 안볼 수가 없었다.
1년에도 몇차례 이런 반공영화가 상영되었다.
반공도서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강매가 되었다.
어린이가 간첩을 잡는 내용의 책들이나 6.25때 북한의 만행을 알리는 내용인데 책의 제본이나 지질이 엉망이고 내용도 엉성하였다.
'80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반공도서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 명의인지 상급기관의 협조공문도 같이 내려 왔다.
학생들 모두에게 구입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상명하복의 시대적 분위기에 반공을 표방한 책이었으니 일선학교에서는 감히 이의를 달 수가 없었다.
학생 재적수의 과반수가 넘는 책이 낙하산을 타고 왔다.
제목과 저자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책의 지질이 아주 나빴고, 삽화나 인쇄상태도 엉망이었다. 물론 내용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교감선생님은 이책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자들이 반공교육을 말아먹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책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고, 책값을 걷어서 보내야 하는 것을....
담임들은 생활형편이 나은 애들에게 강제로 책을 떠맡길 수밖에 없었다.
몇년후 어느 어너 신문에 문교부에 근무하는 기능직 공무원이 업자와 결탁하고 장관 직인을 도용하여 공문을 내려 보내서 저질 도서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해마다 반공도서의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지시가 위로부터 내려왔다.
담임들은 요령이 생겨 글을 잘쓰는 학생들에게 돌려 가며 독후감을 쓰게 해서 의무 편수를 제출하였다.
춘천시내 어느 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학급 재적수의 80% 이상에게 소년조선일보를 구독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것은 문교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지시는 아니었다.
언론사와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 일종의 보험을 들려는 학교 관리자의 필요와 돈을 벌려는 언론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생긴 합작품이 신문의 강제구독이었다.
신문을 구독하면 신문사측은 학생들이 내는 구독료의 20%정도를 학교 체육기금으로 학교에 돌려 주었다.
당시는 '88올림픽을 유치한 후 학교에서 꿈나무 육성이라고 해서 체육특기생의 육성을 강조하던 때였다.
선수들을 합숙시키고 훈련시키는 데 많은 돈이 들었지만 행정당국의 지원은 미미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선수들은 주로 가난한 집 출신으로 학비 면제 등을 조건으로 운동을 시키던 시절이니 학부모에게 훈련비를 부담시킬 수도 없었다.
선수육성 비용을 학생들에게 부담을 시켜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매 학기마다 쌀을 걷거나 체육 성금을 걷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구독료에서 떼어주는 돈은 학교로서는 큰 매력이었다.
학기초 교감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신문구독의 취지를 잘 설명해서 가능한 많은 학생들이 신문을 구독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학급당 80% 이상의 학생이 구독하도록 독려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반은 구독율이 60%도 못되었다. 나는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다.
그후 나는 조선일보를 정기구독하지 않게 되었다.
신문을 강제 구독하게 하는 경우도 일종의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언론사 간부가 개입된 어학교재 판매 등의 요구가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소개를 하는 수준이었고 완전한 강매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상부의 행정기관의 개입은 없었지마 언론사 간부가 이권이 있기에 학교측에 무리한 요구를 했고, 학교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홍보를 한 경우다.
이러한 낙하산 책은 전교조가 생기고 학교운영이나 의사결정과정이 예전에 비해 민주화되면서 사라졌다.
아마 지금 선생님들 중 낙하산 책을 기억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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