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예전과 다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마을의 모든 집은 이웃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농한기에는 아무때나 이웃집에 가서 "계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마실 간다고 했다.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이라 남자들은 사랑방에 여자들은 안방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주머니들은 주로 6.25때 피난 갔다 온 이야기를, 아저씨들은 일제때 징용 다녀 오거나 6.25때 참전한 이야기들을 주로 했다.
우리집에 이웃집 어른들이 놀러 오면 피할 곳이 없는 나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락거리가 없었고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읽을 책도 없었던 시절에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고 궁금할 때 질문을 하거나 끼어들면 애들이 어른 이야기에 끼어든다고 혼났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의 이야기는 격동의 한 시대를 산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나는대로 기록하려 한다.
비록 들은지가 오래되어 기억이 바래지고 원형이 변형되었다고 해도 이들 이야기들을 기록함으로 대부부 고인이 된 그분들의 체험이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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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로시마 원폭 이야기
선친이 외지에서 근무하실 때 이웃에 살았던 학부형인데 몇번 우리집에 와서 묵은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분인데 '60년대 중반 당시 40대 중반쯤 되었던 것 같다.
이분은 자유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가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일을 한 곳이 하필이면 히로시마였다. 8월 6일인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던 날 이분은 동료들과 같이 산너머에 있는 강으로
뱀장어를 잡으러 갔었다고 한다.
아침나절이었다고 하는 데 공급경보가 울렸는 데 폭격은 없었다고 한다. 얼마가 지난 후 산너머 시내 쪽에서 엄청난 큰 폭발음이 들리며 연기가 솟구쳐 올라왔다고 한다.
일행들은 뱀장어 잡이를 중단하고 시내 쪽으로 갔다고 한다.
아저씨가 목격한 히로시마의 참혹함은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이 터질 때 열기를 직접 쬔 사람들은 재처럼 되어 버렸고,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갈증 때문에 강쪽으로 몰려 가서 강에는 시체가 쌓였다고 한다.
방공호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굴 속에서 몰사하였다고 한다.
건물을 모두 무너져 성한 건물이 없었다고 한다.
약이 없어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선인장을 찧어서 환부에 부쳤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경미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심한 화상을 입은 경우 의료시설이 거의 파괴되고 의료인력도 부족하고 치료제도 없어 그대로 죽어갔을 것이다.
우리집에 오시던 아저씨는 운이 좋와서 산너머의 강으로 뱀장어를 잡으러 갔었기 때문에 피폭당시 현장에 없어서 원폭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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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까이도 말목장
'70년대 초 강원도에서는 화전정리 사업을 했다. 당시 산골에는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생활하던 화전민들이 있었e다. 화전은 나무를 잘라내고 일구기 때문에 산림이 황폐되게 되고 홍수가 나면 토양유실과 산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의 침투와 울진, 삼척 공비사건에서 보듯이 북한 게릴라가 침투해 오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서 안보상 이유로도 산 속에 흩어져 있는 화전민들을 내보낼 필요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가구당 얼마씩 현금을 주고 강제로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이 받은 현금은 춘천 시내에서 단간방을 전세 얻을 정도의 돈이었다.
우리집에도 강촌 골짜기에서 한 집이 이주하여 왔다. 이 가족은 부부와 아들 삼형제와 딸 하나가 있었다.
위의 두 아들은 아직 군에 가지 않은 청년이었고 딸은 중학교에 다닐 나이였으나 학교에 가지 못하였고 막내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대 가장은 최씨 성을 가진 분이었다. 이 가정은 원래부터 산골에 살던 화전민이 아니고 서울에서 살다가 망하여서 화전민이 되었다고 하였다.
최씨 아저씨는 굉장한 술꾼이었다. 술을 마시면 집안에서 술주정을 하여 아주머니와 싸우곤 하였다.
그러나 입담이 좋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였다.
여름에 마루에 앉아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인 강원도 회양 금강산 밑이었다고 한다.
이분은 일제때 강제 징용이 시작되기 전에 돈을 벌러 자유 노동자로 일본에 갔다고 한다.
강제로 징용에 끌려 간 분들과 징용이 실시되기 전에 자유노동자로 가서 자리를 잡은 분들 사이에는 같이 일본에서 일을 하였어도 엄청난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최씨 아저씨는 일본 북해도(호까이도)에까지 갔는 데 목장에서 일본군 군마를 기르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을 길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곳 목장에서는 군마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말들이 떼를 지어 달릴 때는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자유 노동자라 집단 수용을 당하지 않고 마을에서 거주하였던 모양이다.
연어떼가 올라올 때는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연어가 올라올 때 연어를 잡아서 소금에 절여 저장하였다가 먹었다고 한다.
목장에는 여자들도 같이 일을 하였다고 한다.
아가씨들은 최씨를 반도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최씨는 "이년들아 내선일체인데 어째서 반도아저씨라고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최씨가 군마 목장에서 일을 했다는 것과 위의 에피소드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징용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큰 고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좋와하는 최씨는 술때문에 아주머니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갔는 데 3달 동안 집에를 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무척 염려를 했는 데 석달을 넘게 있다가 집으로 왔다.
어디에 다녀 오셨냐고 했더니 술 때문에 집에서 다투고 홧김에 집을 나왔다가 부산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부산에서도 술을 마시고 대합실에서 쓰러져 자다가 어디로 끌려갔는 데 형제원이라는 곳이었다고 한다.
군대식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었는 데 말을 안들으면 욕설과 구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최씨 아저씨는 넌더리를 쳤다.
그래도 이분은 운이 좋왔다. '70년대 말 부산 형제원 사건이 크게 보도된 일이 있다. 이곳에서 부당 감금과 강제 노역 등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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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한 최씨 아저씨
이분은 양구 도촌초등학교에서 기사로 근무했던 분이다. '90년대 초까지 학교의 관리를 하던 용원(지금은 기사로 호칭)은 한 학교에서 평생을 근무했다. 최씨는 필자의 부친과 같이 도촌초등학교에 같이 근무했던 분이다.
최씨는 일제때 강제로 징용이 되어 탄광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해방이 되고 귀국한 분이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60년대 초중반) 이분은 40대 중반쯤 되었다.
최씨 역시 술을 무척 좋와했었다.
이분은 일본 어느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 갔다고 한다.
갱속에 들어가서 심한 중노동을 했는 데 식사는 아주 부실했다고 한다.
아주 적은 양의 밥에 단무지나 된장국이 전부였다고 한다. 항상 배가 고팠고, 작업 능률이 낮으면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최씨의 말로는 탄광 노동자들에게 정량 배급이 되면 배를 곯을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탄광에 검열을 온다고 하면 밥도 많이 나오고 정어리 구이 등 생선도 나왔다고 한다.
탄광의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나오는 급식을 횡령했기 때문에 굶주렸다고 했다.
굶고 맞으며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했다고 한다.
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에 강제로 끌려 가서 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만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일본을 볼 때마다 울분이 끓어 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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