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란 우리 세대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우리 또래는 교과서외의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자랐다.
휴전이 되고 3년이 채 못된 1956년도 초등학교 입학생인 우리 또래들은 그래도 지붕 밑에서 공부할 수 있어 피난지 학교에서 천막이나 나무 밑에서 공부를 했다는 선배들보다는 호강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루도 깔리지 않고 책걸상도 없는 교실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공부를 하였으니 학교에 실험 기자재나 책이 있을리가 없었다.
시골이라 어떤 학기에는 교과서도 늦게 공급되어 교과서가 없이 한두달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교과서외의 책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방학책이었다.
방학책에는 교과서 문제말고도 재미있는 동화가 소개되기도 하였는 데 이것을 몇번씩 되풀이 읽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친구 형이나 누나가 배우는 교과서가 읽을거리였다.
국어나 사회책을 뜻도 모르면서 읽었는 데 이것이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의 거의 전부였다.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서 어느 동화작가가 책이 없었던 시절 지역 출신의 실업가가 모교에 도서관과 도서를 기증하여 주어서
책속에 파묻혀 살았고 그분은 돌아가셨지만 그때 도서관에서 꿈을 키운 자신은 동화작가가 되었다는 글을 읽고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선친을 따라 전전하다 보니 네번째 학교인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 있는 원당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6학년도 거의 끝날 무렵 학교 이웃의 부대인 연대장님께서 학원사에서 발행된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읽을 수 있는 문고판 책을 한질 기증하여 주셨다.
이책은 빈 교실의 서가에 꽂히게 되었고 나는 그곳의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게 되었고 버스로 한시간이나 가야 하는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선친이 근무하시는 학교라 그 빽을 이용하여 일요일이면 학교에 가서 책을 읽었다.
당시는 공휴일에도 학교에는 일직교사가 있어 문을 열었고, 졸업생이기는 하지만 막강한 빽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때 읽은 책들 중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15소년의 표류기', '해저 2만리', '솔로몬의 동굴', '타잔', '암굴왕(몽테크리스트 백작)' 등인데 이 책들을 통하여 나는 다른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주 졸업한 학교를 찾아간다는 것도 멋쩍고 해서 몇달동안 책을 읽으러 가다가 발길을 끊게 되었다.
다음해에는 선친의 전근으로 읍내에서 가까운 남면 창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해서 더 이상 모교에 책을 읽으러 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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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교과서 이외의 다른 책을 읽을 기회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초등학교때와 조금 다른 것은 급우들 중에 더러 책을 읽는 녀석들도 있어 그들이 다 읽을 때를 기다려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검은 별', '루팡'등의 탐정 소설과 '얄개전'이라는 명랑소설, 가끔씩 학원이라는 잡지를 어깨 너머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다섯명의 동생들과 같이 생활하던 형편이라 다른 책을 살 형편은 되지 못하였고 친구들이 읽는 책을 어깨너머로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큰 결단으로 고등학교를 춘천으로 진학하면서 춘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큰댁이 사시던 집이었는 데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계시던 사촌형님은 문학에 뜻을 두고 계셨기 때문에 책을 많이 가지고 계셨다.
형님이 집을 구하지 못하셔서 책을 그대로 두고 가셨는 데 형님의 책꽂이에는 현대문학과 자유문학이 거의 창간호부터 꽂혀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있었는 데 책을 좋와하던 나는 물을 만난 고기와 같았다.
형님이 보시던 현대문학에 있는 단편소설 등을 의미도 모르면서 읽었다.
아직 지적인 성숙이 덜되었던 때라 전부를 읽을 수 없었고 조금 쉽다고 생각되는 단편소설 등을 읽었다.
그러나, 이 좋은 시절은 여름방학을 할 무렵 형님이 집을 구하셔서 책을 가지고 가시면서 끝이 났다.
당시에도 대입 경쟁은 있었던 때라 입시공부에 시달리면서 고교 시절에는 자연히 다른 책을 읽는 일은 힘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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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외의 책을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뒤늦게나마 연대장님의 덕분에 책들을 접할 수 있었고
사촌형님의 덕분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대문학 등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책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학교 도서실에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많은 책들이 있고, 교육 관련 서적이나 각종 단체에서 발간하는 책들이 오지만 미쳐 읽을 수가 없다. 서점에 가면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책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읽을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를 수가 없어서, 시간이 부족하여 책을 읽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어렸을 때 책에 대한 갈망때문인지 몰라도 집에는 제법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욕심으로 사다 놓았을 뿐, 읽지 못한 책이 절반은 된다.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서점에 가면 책을 한보따리씩 사들고 오게 된다.
책을 꽂은 공간이 없어 오래 전의 책은 상자에 넣어 베란다에 야적을 해놓고 있다.
나는 우리 또래들 중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기는 하지만 연대장님이 기증하여 준 책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형님이 보시던 책으로 문학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나를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동화작가는 초등학교때 도서관을 짓고 책을 기증하여 준 선배님께 뒤늦게 감사를 표하였다.
나역시 뒤늦게 책을 기증하여 준 연대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40년도 넘는 오랜 시간 전이라 아마 지금은 작고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분이 기증하여 준 100여권의 책은 시골 초등학교의
한 소년의 꿈을 키워 주었고, 생각을 넓혀 주었고, 보다 넓은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하였던 것이다.
연대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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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 '98년 방산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일직을 하던 날 어느 여자분이 전화를 했다.
부친이 연대장을 역임하셨는 데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방산에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그 학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중학교가 설립되며 고등공민학교는 자연스럽게 폐교되었고 역사가 승계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통화를 하는 중에 이 연대장님이 동면 원당리에도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연대장께서 필자의 모교에 학원사가 발행한 문고를 기증해 주신 것이다.
연대장님 따님의 연락처를 알아두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쉽게 생각된다.
2005년에 작성한 글로 '느릿느릿'사이트가 폐쇄되어 글이 사라졌으나 김효석님이 카페에 올리신 것을 발견하여 다시 싣게 됨
이 글을 보관하여 주셨던 김효석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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