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퇴직을 하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2학년에 편입을 하였다.
일본학과를 택한 것은 현직에 있을 때인 '80년대 중반 일본 문부성 초청 장학생에 응시할 생각으로 일본어 공부를 조금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춘천 운교동에 있는 상아탑 학원에서 양병호 선생님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다.
이덕심씨가 쓴 초급편 교재로 공부를 시작했는 데 6개월쯤 지나서는 중급을 지나 고급까지 공부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응시 자격 연령이 40세 미만에서 35세 미만으로 낮아졌다.
나는 응시자격이 상실되었다. 목표가 상실되니 공부를 할 의욕이 사라졌다. 겨우 8개월 정도 공부를 하고 일본어 공부를 접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공부했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직을 하며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월요일마다 장신대 평생교육원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는 일과 금요일 저녁에 전에 춘천에서 근무할 때 다녔던 청연서당에 가서 四書(맹자) 공부를 하는 일, 방송통신대에 편입학하는 것과 농사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 네가지를 겸하다 보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조금은 실감이 되었다.
위의 배우는 일과 농사를 짓는 일 말고도 중고교 동창들과 각종 모임에서 어울리는 일과 교회에 출석하는 일까지 겹쳐서 한주 한주가 어느 새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모두가 부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매주 월요일에 있는 성경공부에 출석하러 갈 때도 전철에서 성경을 읽거나 전주에 배운 내용을 훑어 보았고
서당에 갈 때는 책가방을 펼치지 않은 채로 그냥 들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밭일을 하다가도 모임에 가기 위해 일을 마치지도 못하고 뒤로 미룬채 돌아와야 했고, 어떤 때는 저녁 예배를 빼먹기도 하였다.
방송통신대 공부는 책을 펼칠 틈도 없었다.
교재를 공부하고 강의를 들어야 하는 데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퇴임을 하던 2011년 가을 화천의 어느 학교가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못해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3개월간 근무를 하는 바람에 2학년 2학기를 휴학하였다.
2012년에 3학년 1학기 수업을 하고 2학년 2학기 수업을 했다.
2학년까지는 예전에 공부했던 밑천이 있어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예전의 밑천으로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금년 1학기에 4학년 1학기 수강을 해야 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금년도 1학기를 쉬고 2학기에 3학년 2학기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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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에는 고구마와 배추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좀 많이 심었다.
그런데 이들이 사겠다고 이야기한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거나 사정상 사지 않겠다고 했다.
진흙밭에 심은 고구마를 캐느라 1주일을 넘게 고생을 했다. 땅이 딱딱하니 삽으로 고구마를 캐야 했다.
밭이 아주 넓다면 장비를 동원했겠지만 몇백 싹을 심은 정도니 장비를 동원할 수가 없었다.
금년 가을에는 유난히 수확이 일로 바빴다.
집에서 모두 자가소비를 할 수 없으니 고구마와 땅콩은 캔 것을 선별해서 판매를 해야 했다.
뒤늦게 영양제를 살포했더니 풋고추가 엄청나게 많이 달렸다.
서리를 맞추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이를 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 데 선별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런저런 일로 수확에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공부를 할 틈이 없었다.
11월 중순에 김장을 하고 나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밭정리.....
날이 추워져서 더 이상 밭에서 일을 할 수 없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내년으로 미루고 나서야 농사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때가 되어서야 겨우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11월 20일경에 출석수업이 있었다.
3일간 출석수업을 받고 1주일 후인 30일에 출석수업에 대한 시험이 있었다.
기말고사가 15일에 있으니 공부할 시간이 보름도 안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벼락공부를 하였던 일이 반복되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어서야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며칠간에 시험범위까지 책을 읽고 외웠다.
벼락공부에는 달란트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시험을 치르면 성적은 그런대로 나왔다.
이 습관은 교사가 되어서도 버리지 못했다.
제자들에게는 평상시 미리미리 공부하고 벼락공부를 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벼락치기로 일을 처리하였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교사였다.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졸업논문을 써야 했다. 그런데 논문의 개요만 구상을 했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여름 방학때까지 자료수집까지는 했는 데 서론조차 쓰지 못했다.
논문 마감이 한달도 남지 않았을 때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퇴근을 한 후 잠을 줄여 가며 논문을 써나갔다.
마감 3일 전에는 하루 1-2시간을 자고 논문을 작성했는 데 밤을 새우고도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하는 강행군을 했다.
겨우 마감 시간 직전에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인쇄가 되어 나온 것을 보니 100쪽이 넘는 분량이었고 참고문헌만도 몇십가지가 되었다.
논문을 잘썼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벼락치기는 일단 성공한 셈이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벼락치기 습관은 그후로도 고치지 못했다.
현장연구논문이나 과학작품 제출을 할 때도 이런 시행착오는 반복되었다.
과학작품 실험을 할 때다.
주제를 정하고 승인을 받았다. 선행연구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다른 분이 나와 똑같은 구상으로 이미 몇년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맥이 풀렸다.
과학작품을 제출하겠다고 신청을 해서 승인까지 난 상태이니 취소를 할 수도 없었다.
그대로 진행을 하면 다른 사람이 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되고 표절이 되는 것이니....
궁하면 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전의 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선행연구 자료를 보내달라고 한다. 선행자료를 복사해서 보냈더니 자신의 전공이 아니어서 전공자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며 선행연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친구는 주말에 하루 시간을 내서 대전에서 춘천까지 와서 내가 실험하는 것을 조언까지 해주었다.
마지막 결과 분석 방법도 종전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실험했던 방법이 아닌 새로운 기기를 사용해서 분석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모교에 가서 부탁을 하니 은사님이 후배들에게 부탁을 해서 최종 분석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분석을 할 샘플은 실험을 해서 준비를 해야 했다.
시약을 만들고 실험을 하면서 측정을 하고 데이터를 기록하고.... 수업시간과 조종례 시간을 빼고는 실험에 매달렸다.
3주간을 과학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실험을 했다.
모교에 샘플을 가지고 가서 분석을 하고 데이터를 구했다.
이것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전시할 자료를 만들고 설명 차트를 작성하고 하는 데 한주가 걸렸다.
한달만에 과학작품을 완성했다.
몇달을 끙끙대다가 한달만에 벼락치기로 완성을 하는 이런 일들이 몇번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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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말고사에서도 이런 일이 또 반복되었다.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어학과목은 사이버 강의를 들었는 데 강의를 듣기 전에 교재를 읽고 모르는 어휘를 공부해야 했다.
지역학(일본의 경제 사회 등)은 책을 읽어야 했다.
다행히 한문 공부를 한 밑천이 있어 독서 속도는 빠른 편이어서 교재를 모두 읽고 워크북까지 풀어 볼 수 있었다.
어학과목 중 한과목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다음 해에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고 뒤로 미루고 나머지 다섯과목을 공부했다.
시험을 이틀 남기고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을 훑어볼 수 있었다.
뒤로 미루어 두었던 한 과목을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기출문제를 읽고, 강의에 나온 부분만 중점적으로 읽어 보았다.
12월 15일에 기말고사가 있었다.
좋은 성적은 기대할 수 없고 유급만 없기를 바라고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와서 답을 맞추어 보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유급은 면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러나 이번 시험을 통해 이제 벼락공부는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공부하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60대 중반에 들다 보니 기억력 등 학습능력이 예전같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졸업까지는 1년이 남았는 데 앞으로는 벼락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번 방송통신대 공부를 끝으로 내 일생에서 공식 과정의 공부는 끝나는 것이 된다.
마지막 남은 1년이라도 수십년간 해왔던 벼락치기의 습관에서 벗어나서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 해방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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