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수학을 가르치셨던 이영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기억된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거창한 꿈을 갖는다고 하셨다.
반세기 전인 중학교 시절 어린이들이나 소년들이 가진 꿈은 오늘날과는 달리 정말 거창한 것들이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겠다거나 육군 대장이 되겠다는 등의 큰 꿈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런 꿈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의 벽에 부딛혀 가며 점점 위축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는 하루하루 사는 데 급급한 보통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가진 꿈을 이루는 사람은 아주 적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 중 어렸을 때의 큰 꿈이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작아진다는 부분만 기억난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에 놀러 온 교장선생님 사모님이(선친이 초등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이야기하면서 어려웠던 제자가 선생님의 격려로 변호사가 되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선생님을 변호한다는 내용을 이야기하셨다.
억울한 사람을 변호한다는 변호사가 멋있어 보였다.
어려서 묻기를 잘하고 이유를 잘따지는 나에게 어떤 사람들은 변호사를 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꿈이 변호사로 바뀌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변호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았다.
생물 선생님이 자기 친구가 공부를 하여 고시에 합격하였으나 공부를 하는 중에 건강을 해쳐서 합격한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선생님은 건강이 최고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으로 되돌아 갔다.
중3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둔 때로 기억된다.
아침에는 맑던 날이 흐려지더니 하교할 무렵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등교한 나는 비를 맞으며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4km나 되는 길을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중에 배낭을 메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몇명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대학생들을 길안내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서울대 상대를 다닌다고 했다.
선생님들 중에 서울대를 졸업한 분도 계셔 서울대가 가장 좋은 대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商大가 무엇을 공부하는지는 몰랐었다.
아마 내가 상대를 졸업하면 취직이 잘되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 학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상대를 가겠다고 희망이 바뀌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商大를 간다는 것은 나에게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인식했다.
필자의 모교에서는 몇년에 한명씩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 서울대 상대에 입학하였는 데 내 실력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내 꿈은 다시 교사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3 때 국어를 가르쳐 주신 박민일 선생님(후에 강원대 사대 교수 역임)을 고등학교때 다시 만났고,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어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 성적이 잘나왔다.
내꿈은 고전문학과 역사를 전공하는 국문학자가 되는 것을 바뀌었다.
물론 중간 목표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 실패를 하고 1년을 방황하면서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선친께서 초등학교 교사였는 데 이 때문에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봉급을 많이 타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CCC에서 홍정길 목사님을(당시 간사) 만나게 되었다.
홍목사님은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다. 비전을 품으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나는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하여 유학도 다녀 오고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지방국립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꿈을 가지고 공부에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는 데 갑자기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양육하는 짐을 떠맡으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돼지를 기르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잔반(음식 찌꺼기)을 모아다가 돼지를 먹이셨다.
나 혼자 공부하겠다고 할 처지도 못되었고, 현실을 극복할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결국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공부를 중단하고 교사로 취업하게 되었다.
나의 꿈은 갈 지(之)자 모양으로 횡보를 거듭하다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어렸을 적의 거창했던 꿈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수렴되어 평범한 소시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태어난 자식들을 양육하며 하루하루의 생활에 갇혀 지내는 이 시대의 보통사람과 같은 소시민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교직에서 퇴임을 하고 농사꾼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거창했던 꿈도 희망도 모두 가슴 속에 묻어둔 채 현재의 삶에 자족하기를 바라고,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평범한 소시민이 된 것이다.
본 블로그에 쓰는 글은 이런 평범한 소시민의 사는 이야기다.
거창하게 무엇을 이룬 사람의 성공담도 아니고, 역사의 격랑 속을 살아간 한 인간의 파노라마도 아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망각되어 갈 아주 작은 한 소시민이 살아가는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한 소시민의 사는 이야기'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길동무들과 공감할 수 있고,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 세대가 살아간 삶의 주변의 일상적인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 줄 수 가 있다면 내가 쓰는 '평범한 소시민의 사는 이야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최초의 주민등록증 (0) | 2015.09.08 |
---|---|
대학입학 자격 예비고사, 수학능력 시험과 대학입시 변천 (0) | 2014.11.13 |
책은 꿈을 키우고 (0) | 2014.04.19 |
벼락공부로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서 (0) | 2013.12.17 |
내 이야기의 시작 (0) | 2013.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