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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물) 서울운동장에서 자유당이 개최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출마 환영대회 쇠락은 번영의 정점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중국 당나라의 쇠락은 당이 가장 번영하였던 현종때, 청나라의 쇠락은 번영의 정점이던 건륭제때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쇠락은 번영의 정점이던 오현제때 시작되었습니다.자유당의 몰락도 자유당의 권세가 정점에 도달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3기 임기때 시작되었습니다. 자유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3.15 정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실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었고 전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은 종말을 고했습니다.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위정자들이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면 윤대통령이 몰락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래는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이 유세하는 영..
60년전(1965년) 고교 1년생 일기(2) 1965년은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다. '65년 2월 강원도 양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큰 꿈을 품고 도청소재지인 춘천으로 유학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아래의 일기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양구에서 춘천으로 이주하고 고교 입학을 전후한 며칠간의 기록이다. ======================================= 1965년 2월 25일(목)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사진관에 들렸으나 사진이 다 안되었다고 한다.2월 28일에 찾아 가기로 하였다.집으로 와서 승균네 집에 가보았더니 승균이는 춘천으로 갔다고 한다.저녁때 오중위가 옛날 이야기를 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책을 나누는 데 복현이가 불평(전체를 교환해주지 않는다고)을 하기에 욕을 하고 한 대 때렸다. ..
의약분쟁을 보며(2000년 6월 20일 네띠앙 게시판에 투고한 글) 새천년이 시작된지도 25년이 되었다. 2000년은 필자는 춘천 중학교에서 두번째 근무를 할 때다.이 해에는 의약분업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며 투쟁을 하였다.그 전에도 의약분업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약국에서도 환자의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약사가 임의 처방을 하여 약을 조제 판매하였고병원에서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조제하여 환자에게 배부하였다.이것을 진료는 의사에게서 하고 이 처방전으로 약은 약사에게 조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이다.일부 농어촌 등 교통 오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의약 분업을 시행하게 되었다.25년 전만 하여도 우리나라에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약하였다.지식과 기술을 유형 재산으로 보는 인식이 빈약하였다.가수의 노래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60년 전(1965년)의 일기(1) 60년 전인 1965년은 필자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다.아래의 일기는 1965년 2월로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고 중학교 졸업식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시기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입학을 기다리는 소년의 심정이 기록되어 있다.입학금을 이웃집에서 빌려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적 환경과 또래의 일상이 기술되어 있다.처음에는 매일같이 충실하게 일기를 썼으나 나중에는 용두사미 격이 되어 기록이 누락된 날이 있고 형식적으로 기록되는 등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원문에 충실하고자 했으나 한자나 표기법이 틀린 것은 바로잡았다.당시 거주하던 곳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창리.///////////////////////////////////////////////////  1965년 2월 15일(월)오늘 일기장을 구입했..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 주장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논쟁이 불붙어 있습니다.윤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미국에 대해서는 사대적 의존을, 일본에 대해서는 친밀감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외교에 있어서 상대국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나타나 보입니다.대통령의 일본인식에 대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뉴라이트 사관이라고 합니다.평가자에 따라 일본을 보는 뉴라이트 사관에 대해 스펙트럼이 다르겠지만 상식적인 견해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일제의 식민통치가 우리나라에 다소의 고통을 주었지만 미개한 나라를 개화시키고 근대화 시키고 근대국가로 발전시키는 순기능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조선왕조를 아주 부정적으로 봅니다. ..
술취한 채 등교하는 학생 지난 '60년대 - 70년대에 우리나라는 가난하였다.농업이 가장 주된 산업이고 시대에 따라 농민의 비율은 감소하였지만 '70년대 초만 하여도 절반 이상이 농민이었다.농업이 주업이었지만 먹을 것이 늘 부족하였다. 쌀을 비롯한 식량 생산은 항상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고 부족분은 수입을 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오는 원조에 의지해야 했다.미국은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는 우리에게 식량원조를 해 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식량원조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의중에 맞게 조종하는 수단이기도 했다.흉년이 들고 미국에서 원조가 순조롭지 않으면 식량부족이 심화되었다.신문에는 절량농가니 춘궁기니 하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굶주린 사람들의 참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오죽하면 삼대 거지라는 말이 돌기도 하였다. '깡통 찬 거지, 승용차 탄 거..
강냉이 죽과 수입 쇠고기 아래의 글은 저의 블로그 친구 비오님의 글입니다.동 시대를 살았던 분이라 저의 경험과 같은 경험을 하였고 내용이 공감이 가서 모셔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인터넷신문에 실었던 칼럼 한 꼭지- 강냉이죽과 수입 쇠고기 지난 한 해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인해 온 나라가 일대 홍역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국력을 소비해야 했다. 처음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점차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본래 외국에서의 촛불시위는 주로 정치나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의 의사 표현 방식으로 활용되며 침묵시위의 형태..
큰 재난 뒤 예외없이 등장하는 음모론 큰 사고 뒤에는 예외없이 음모론이. 등장한다.나는 사고. 직후. 음모론이. 등장할. 것과 어떤 유형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데 적중한 것이 북한 배후설과 좌파 연루설이다. 주가. 조작세력. 복귀하지 않은 블랙요원설도. 있다.대형사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것은 북한. 개입설이다. 세월호때도 이태원 참사때도 등장했다앞의 두 큰 사고 모두 보수정권에서. 일어났고. 이로 인해. 정부가 곤욕을 치르니.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북한이 개입한 것이다. 세월호에서는 전교조가 이태원에서는 민노총이. 이용되었다 이번. 제주 항공의 항공기. 사고가 북한이 개입했다고 하는 증거는. 사고순간을 촬영한 것이다.미리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는 영상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