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세입자들 이야기(1)

춘천시 효자동에 있던 우리집은 1930년대에 건축된 집이었는 데 기와집이기는 했지만 아주 낡은 집이었다.

큰댁에서 사시던 집이었는 데 1965년 춘천에 이사를 오면서 우리가 인수를 하여 수리를 해서 살게 되었다.

집은 우리 명의였지만 대지는 사천 목씨네 문중 땅으로 해마다 일정액의 도지를 내야 했다.

방이 6칸이었지만 안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5칸은 쪽방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방들이었다.

안방과 웃방, 마루 옆에 달린 방 한칸은 우리가 쓰고 나머지 3칸은 세를 주었다.

1965년에 이사를 와서 1990년에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고 1992년 집을 헐 때까지 우리집에 입주해서 살던 세입자들의 삶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쓰고자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낡은 목조와가 주택의 좁은 방에 입주해서 사는 분들의 생활은 대부분 어려운 편이었다.

30년 가까이 사는 동안 많은 분들이 옆방에 입주를 하고 일정 기간동안 거주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길게는 몇년간 짧게는 한두달을 살다가 떠난 이분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인생의 경험과 연륜이 어느정도 쌓인 조금은 철이 든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나는 대부분 하층민이었던 그분들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1. 민이네

  민이네는 우리집이 이사오던 때부터 세들어 살다가 고3때쯤 떠난 집이다.

민이는 남자 아이로 어머니와 단 두식구였다.

당시 민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어린이였는 데 아버지는 함께 살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민이 엄마가 민이를 출산하러 갔을 때 민이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전남 어느곳에선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고 산다고 했다.

민이 엄마는 오직 민이만을 위한 삶을 살았는 데 화장품 행상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민이 엄마는 일이 바빠서 민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민이의 옷차림은 늘 남루했고 단정하지 못하였다.

민이는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동네북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이 또래의 동생이 있었기에 민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가 있었다.

민이네가 우리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이후의 이야기다.

민이가 3학년때인가 동시를 써서 선생님께 낸 것이 전국대회에 출품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시계도 없이 살고 있는 민이는 시계에 대한 생각을 썼는 데 동심의 순수한 표현이 심사위원들에게 높이 평가를 받았던 모양이다.

전체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장을 전달받았고 푸짐한 부상(副賞)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민이는 동네북에서 학급에서 인정받는 아이로 신분이 급상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장이나 반의 공부 잘하는 애들이 민이의 친구가 되었고 활동에 끼어주었다고 한다.

 

그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동료 교사인 강선생의 차에 동승하여 출근을 하는 데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부주의하여 건널목에서 횡단을 하는 청년을 들이받은 사고를 내었다.

사고를 신고하고 경찰이 오고 청년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여 며칠간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찾았는 데 키가 큰 직원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기억이 나지 않아 머뭇대는 데 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화장품 장사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를 해주었다.

그곳에서 민이의 아버지를 처음 보았다. 아들의 결혼식에는 참석을 했던 것이다.

몇년 후 소식을 들으니 딴 살림을 차리고 살던 여자와는 헤어지고 민이네 집에 돌아와서 민이 엄마와 해로하였다고 한다.

민이는 그후 손해 사정사 자격을 취득하여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몇년 전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고 절친했던 대학동기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원주에 갔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 데 민이를 만났다.

어떻게 내 친구를 아느냐고 했더니 같은 노회 소속 장로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민이는 역사가 오랜 시내의 큰 교회 장로가 되어 있었다.

큰 교회에서 40대에 장로직분을 받기가 어려운 데 민이는 40대에 장로 임직을 받았다.

나는 순간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민이의 삶에 있어서 변곡점은 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 동시를 잘써서 받은 큰 상일 것이다.

민이네 집의 생활이 어려운 사실상 편모 슬하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옷이 남루했고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성적도 저조해서 주변에서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재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아니였다.

동시(童詩)를 잘써서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받고 이를 계기로 주위의 인정을 받게 되고 그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회 장로로 세움을 받은 것으로 볼 때 그의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이 인정을 받을 수준임을 알 수가 있다. 

 

이제 인생을 회고하는 시기에 이르러 민이의 일을 돌아보면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40년 가까이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지만 잠재능력을 가진 많은 제자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대부분 지나쳤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