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으로만 TV를 시청했는 데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제한되어 있어 케이블 TV로 시청하려고
통신사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주차 실력이 부족하여 확실히 아는 곳이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내버스로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몇 정거장 갔을 때 한 청년이 버스에 탔는 데 많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가 중2때 내가 담임을 했던 녀석이었다.
이름을 불렀더니 그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내 앞에 앉으라고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했더니 음악 학원에서 드럼을 가르치는 강사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 저것 다른 일을 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려 한다고 한다.
나는 내가 담임했던 제자들 중에 궁금했던 몇몇의 소식을 물어 보았다.
주로 말썽을 부렸던 녀석들인데 대부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말썽을 부려 신경을 쓰게 했었다.
어머니가 가출을 한 상태여서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고 생활도 어려운 편이엇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학교에 다닐 때 마음이 아픈 곳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고.."
"그리고 한 때의 성장통을 잘 극복하고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서 기쁘다고"
제자 녀석은 "제가 그때 어리고 철이 없어 선생님 속을 많이 썩혀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어떻게 여러 아이들의 이름과 신상을 십년이 넘었는 데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담임을 했으니까 그렇지. 담임은 제자들 하나하나에 대해 관심이 있어야 하니까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하는 것이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지만 당시 40명이나 되는(더 오래전에 많을 때는 70명 가까이) 학생들을 하나하나 모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제자는 10년이 훨씬 넘어서도 자기의 이름뿐 아니라 학교 다닐 때의 상황까지 기억해 주는 데 대해 감격하는 표정이었다.
끝으로 제자에게 "젊었을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삶을 살으라"는 말을 해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시내에서 길을 걷는 데 어떤 아가씨가 인사를 한다.
제자인 것은 틀림이 없는 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자 제자들은 학교를 떠나면 복장이나 머리 모양이 너무 변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이름을 묻자 아무개라고 대답을 한다.
이름을 듣고 나니 곧 그의 신상에 대하여 입력된 정보가 떠올랐다.
나는 "너의 오빠는 지금 어느 학교에 근무하시니? 아마 이름이 00였지?"라고 묻자 제자는 너무 좋와서 어쩔 줄을 모른다.
10년도 넘었는 데 저를 기억해 주셔서 너무 기쁘다고 하였다.
내 친구 중에는 고등학교에 주로 근무했던 친구가 있다.
졸업 20주년이나 30주년 행사들을 많이 한다.
그 친구는 해마다 이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간다.
그런데 그 친구는 행사에 가기 전에 예전에 기록했던 교무수첩을 꼼꼼이 읽고 간다고 한다.
거기에는 제자들과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을 만났을 때 학교다닐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그렇게들 좋와한다고 한다.
지금의 세태는 자기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고 남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덕목이 된 시대가 되다 보니
어느 집에 숫가락이 몇개라는 것까지 알았던 과거 농경사회와는 달리 철저히 개인적인 사회가 되었다.
남의 사생활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간섭을 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는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이 살아가는 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은 철저히 타인에게서 소외된 외로운 개체가 되었다.
누구와 속 마음을 나눌 사람도 없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곳도 없게 되었다.
내가 타인의 일에 무관심해야 하다 보니 나에게 관심을 갖는 타인도 없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군중 속에서 고독한 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기를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격을 하게 된다.
오랜 친구나 지인을 만났을 때 그에 관한 기억을 말하면 모두 좋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바쁜 세상 속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나 감격하게 되는 것이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된
시대의 모순이라 생각된다.
201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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